[페스카테리언] 차별 주의
몇 년 전 어느 날 시드니 시내를 걷고 있다가 동물 복지를 위해 시위를 하는 사람들을 지나치게 되었다. 어느 영화에서 보았던 콧수염이 난 남자 얼굴의 가면을 쓴 사람들이 도축장 내부를 몰래 촬영한 영상이 나오는 모니터를 하나씩 들고 있었다. 아무 말 없이 무거운 모니터를 들고 서 있는 사람들 앞에서 나도 모르게 발걸음을 멈추고 영상을 보기 시작했다. 익히 알고 있는 내용이었지만 직접 화면으로 보니 그 잔인함이 심장에 비수같이 꽂혀버렸다.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던 나에게 시위대의 일원 한 명이 다가와 팸플릿을 하나 건네주었다. 이 세상을 당장 바꿀 수는 없지만 최소한 잘못된 행동에 가담하지 않겠노라 선택할 수는 있다는 그녀의 말에 그 자리에서 바로 결심했다. 이제부터 고기를 먹지 않겠노라고.
정확하게 말하면 나는 모든 동물성 음식이나 제품을 소비하지 않는 비건은 아닌, 고기, 달걀, 유제품은 먹지 않되 해산물과 야채만 섭취하는 페스카테리언이 되었다. 내가 고기를 먹지 않게 된 이후로 가장 불편을 겪고 있는 사람들은 부모님과 남동생 부부인데, 가족 모임이 있을 때마다 메뉴 선정이 까다로워졌기 때문이다. 삼겹살과 삼계탕, 순대와 제육볶음을 좋아했던 내가 고기를 안 먹고 채소와 해산물만 먹기로 했다고 알렸을 때 남동생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왜 물고기는 차별하는 거야? 물고기는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고 생각해?'
말문이 막혔다. 부드러운 털이 났고, 소리를 내고, 약간의 의사소통이 되는 동물들은 불쌍한데, 소리를 못 내고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물고기들은 친밀감이 느껴지지 않아서 그런가? 찾아보니 물고기도 고통을 느끼고 감정을 느낀다는 연구 결과가 있었다. 하지만 내 안에는 아직도 해산물을 먹는 것에 대한 죄책감이 그리 크지는 않다. 오랜 시간 고민한 끝에 자신을 납득시키기 위해서 만들어낸 나만의 규칙은 이렇다. 무인도에서 혼자 살아남아야 하는 상황에 부닥쳤을 때 어쩔 수 없이 생존을 위해서 내 손으로 죽여서 먹을 수 있는 것이라면 먹어도 괜찮다. 내 생명을 위해 다른 생명을 빼앗아야 한다면 그 고통의 순간을 마주하고 괴로워하는 대가를 치르는 것이 정당한 것 같다. 아무리 배가 고프다고 해도 토끼나 사슴을 사냥해서 먹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지만, 물고기라면 큰 고민 없이 바로 낚시해서 구워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이게 무슨 모순인가? 그저 떡볶이에 들어가는 어묵과 젓갈이 들어간 김치를 먹지 못하는 것은 참지 못해서 이런 궤변을 늘어놓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물속에 사는 생물들과는 거리감이 느껴져서 그런 것이라고 쳐도, 부끄럽게도 나의 비논리적인 차별은 육지의 다른 생명체에게도 적용된다. 비가 오고 난 후 인도를 가로지르는 달팽이들은 보일 때마다 부지런히 한쪽으로 옮겨주지만, 바퀴벌레나 날파리, 모기가 보이면 바로 살생의 충동에 사로잡힌다. 모기는 내 피부에 침투해서 피를 탈취하는 공격을 하기에 정당방위라고 할 수 있을 것도 같다. 하지만 나에게 아무 해를 끼치지 않고 우연히 내 시야에 들어온 날파리는 무슨 죄인가? 나는 왜 반사적으로 손뼉을 쳐가며 그 작은 생명체를 제거하려고 하는 것일까? 최근에야 이런 무의식적인 습관을 자각했는데, 아직도 박수를 몇 번 치고 나서야 실수를 깨닫는다. 나의 무논리적인 차별의 가장 큰 희생양은 단연코 바퀴벌레이다. 나방이나 벌이 집 안에 들으면 어떻게 해서든 바깥에 내보내고, 거미줄을 여기저기 쳐놓는 거미들은 모기를 잡아주는 고마운 존재라며 화단에 조심스럽게 놓아둔다. 심지어 맹독으로 유명한 레드백 스파이더조차도 차고의 구석에서 자리를 잡고 있으면 모르는 체하고 지나간다. 결국에는 지저분해지지만, 다양한 모양의 거미줄이 마치 예술 작품 같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거미는 멋지다고 생각한다. 단지 바퀴벌레에게만은 도저히 일말의 동정심도 느끼지 못하고 있다. 병균을 옮기는 해충이라고는 해도 내게 직접적인 생명의 위협을 가하지 않을뿐더러 심지어 나를 보면 도망을 간다. 그런데 왜 바퀴벌레만 보면 내 안에 잠재된 폭력성이 발현되는 것일까? 가끔 나의 잔인함이 섬뜩하게 느껴진다. 내가 이 갈색의 작은 생명체를 차별하는 이유는 아무리 생각해도 단 한 가지이다. 바퀴벌레는 귀엽지 않다. 길다란 두 더듬이와 반들거리는 갈색 등껍질이 도대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느리지만 열심인 달팽이는 애처롭고, 나방과 벌은 신기하고, 거미는 멋지다. 하지만 바퀴벌레는 못생겼다. 아, 그렇구나. 난 그저 귀엽지 않은 생명체는 차별하는 외모 차별주의자였네. 대외적으로는 건강과 환경을 생각해서 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핑계를 대지만 사실은 내가 귀여워하는 동물만 먹지 않는 편식 주의자일 뿐이다. 이렇게 난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멋지지 않은 내 진짜 모습과 마주하게 된다. 나도 인종 차별을 당해보았으면서, 나는 왜 다른 생명체를 차별하는가? 생각해보면 모든 차별은 논리의 부재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내게도 이유없이 싫어하는 대상이 있다는 사실이 심하게 불편하다. 우리 모두 차별 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