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념들

우리 아빠는 맥가이버

쌓기2 2025. 5. 31. 21:10

 

아빠와 나의 관계는 꽤 복잡하다. 어렸을 때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라는 식의 작문 숙제가 있었는데, 그때는 아빠가 재밌어서 좋다고 썼던 것 같다. (엄마 미안) 중학교 때까지는 출퇴근 시간이 길어서 주말에만 가끔 보던 아빠라서, 아빠와 많은 시간을 보낸 기억이 없다. 해외여행은커녕, 온 가족이 바닷가에 간 적이 한 번, 강가에 간 적이 한 번 정도 있었나? 유치원 때는 일요일마다 예배가 끝나면 미술관이나 인형극 극장에 같이 갔던 기억은 있다. 아빠와 많은 시간을 보내기 시작한 것은, 중학교 2학년 때 뉴질랜드로 이민을 간 이후이다. 이민을 가는 비행기가 가족의 첫 해외여행이었다. 이민 1세대로서 고생을 하시면서도, 낙천적이시고, 사교적이신 아빠의 모습을 쭉 지켜본 나로서는 아빠가 참 자랑스럽고, 닮고 싶다.

 

하지만, 우리가 대화를 하기 시작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정치적 성향도 반대이고, 종교적인 관점도 많이 다르다. 타인과 대화를 피해야 하는 주제 두 가지가 정치와 종교인게 괜한 말이 아니다.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이상하게도 주제가 이 둘 중 하나로 좁혀드는데, 그럴 때마다 상당히 언짢은 결말을 맞이하게 된다. 전에는 언성을 높인 적도 꽤 많았고, 그럴 때마다 빨리 독립을 해서 집을 나가고 싶다는 마음이 커졌다. 아빠를 존경하지만, 아빠의 신념과 사상과는 동의하기가 어렵다. 그렇다면 난 아빠를 사랑하지 않는 것일까?

 

지금은 독립해 나와서 산지 몇 년이 되었지만 일주일에 한 번은 본가에 들른다. 그때마다 나는 보통 엄마와 수다를 떨고, 아빠는 일부러 거리를 두시는 듯 우리에게 식탁을 내어주시고는 방에 들어가신다. 솔직하지만 불쾌한 대화를 나누는 것보다 차라리 거리를 두는 것을 택하시는 것이다. 아빠와는 친밀한 대화를 나누지 못한 지 꽤 된 것 같다. 하지만 내가 아빠에게 도움을 요청할 때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어떤 문제가 생겨도 우리 아빠는 해결책을 찾으실 수 있다는 확신 비슷한 것이 있다. 자전거가 고장 나고, 차에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기고, 집에 수리할 곳이 생기면 염치 불고하고 아빠부터 찾는다. 얼마 전에는 차의 트렁크가 갑자기 열리지 않았다. 작년 즘에 차의 트렁크를 여는 부분의 고무가 부식되어서, 인터넷에서 부품을 구입하고, 아빠에게 도움을 요청한 적이 있다.

아빠가 트렁크의 안쪽을 뜯어내셨다.
차 안에서 아빠를 구경하고 있었다. 뭘 하시는지 봐도 이해가 안됐다
고무 부분은 괜찮은데 접촉 불량인 전기선이 있었다
아빠는 테이프를 이용해서 트렁크 문을 고치셨다

 

공대출신이시라고는 하지만, 우리 아빠같이 여러 분야의 기계를 다 고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보지 못했다. 아빠의 임기응변과 사고의 유연성은 어렸을 때 봤던 TV 프로그램에 나오는 맥가이버 수준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안타깝게도 남동생과 나에게는 아빠의 재능이 유전되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아빠가 문제를 해결하시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조금은 똑똑해진 것 같은 착각이 든다. 문제가 생겼을 때, 바로 포기하지 않고 어떻게 해서든 해결하려고 진취적으로 사고하시는 아빠의 모습이 최고로 멋있고, 그 모습만은 꼭 닮고 싶다. 비록 아빠와 여러 가지 신념적으로는 맞지 않는다고 해도, 아빠를 존경하고, 아빠의 딸로 살 수 있는 게 행운이라고 생각하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