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념들

잘 쉬려면

쌓기2 2025. 5. 10. 20:58

최근 과한 노동량에 시달리고 있는 지인에게 어떻게 쉬는 것을 좋아하냐고 물어봤더니 그냥 가만히 앉아서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나 자신에게 같은 질문을 해보니 (그 사람은 나에게 예의상 같은 질문을 되풀이할 기운도 없는 듯했다) 나는 가만히 있는 것을 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만 해도 몸은 피곤했지만 여러 잡생각으로 머릿속이 복잡했기에 아침에 출근하기 전에 10분 동네 한 바퀴를 돌고, 저녁때 집에 돌아와서는 45분 정도 6km를 뛰었다. 내가 이렇게 뛴다는 것은 생각할 거리가 많다는 것이다. (사실 한화가 11연승에 도전하는 야구 경기 중계를 중간중간 확인하기는 했다. 그리고 11연승 달성!) 아쉽게도 달리기를 해도 쉽사리 상쾌한 기분을 느끼지는 못했다. 그래서 잔뜩 먹었고, 또 악기 연습을 하며 현실을 도피했다. 가만히 앉아서 아무 생각 없이 쉴 수 있다면, 불필요한 체력소모 없이 마음의 배터리가 재충전되지 않을까? 한 번 시도해 봐야겠다.

 

생각나서 나열해 보는 내가 쉴 때 주로 하는 것들:

 

[하루 종일 시간이 나면]

- 블루 마운틴으로 하이킹

- 당일치기 기차여행 (기차 안에서 밀린 독서)

 

[오전에 몇 시간 시간이 날 때]

- 이불속에서 고양이들하고 시간 보내기

- 호숫가 공원에 산책이나 조깅 가기

 

[오후 몇 시간 시간이 날 때]

- 도서관에서 책 안 빌리고 읽고 오기 (몇 번 해보진 못해지만 마음이 차분해짐)

- 5km 이상 달리기

- 악기 연습

- 영화 한 편 집중해서 보기

- 일본 애니 찾아보기

- 본가에 가서 피아노 치기

 

[밤에 한두 시간 여유가 있을 때]

- 일기 쓰기

- 블로그 쓰기

- 좋은 책 읽고 필사하기

- 가사를 음미하며 노래 부르기

 

목록들을 보니 혼자서 하는 활동들 뿐이다. 보드게임과 마작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나랑 놀아줄 친구들이나 지인들을 찾는 것은 쉽지 않다. 나에게 친구와 만나는 것은 일상의 휴식이라기보다는 특별한 행사이다. 즐겁지만 자주 있는 일이 아니기에 기대도 하고 긴장도 하고, 또 실망도 한다. 혼자서 시간을 보내야 부수적인 스트레스가 생기지 않아서 휴식이 된다.

 

저녁때 잠깐 짬이 날 때면 뒷마당에 앉아서 노을을 바라보는 것도 좋아한다. 그때 고양이들이 곁에 있어주면 세상에서 이보다 더 뭘 바랄 수 있을까 싶게 행복하다. 내가 조기 은퇴를 꿈꾸는 이유도 이런 것들을 하는 시간을 늘리고 맘 껏 쉬고 싶기 때문이다. 은퇴하는 그날까지, 되도록이면 내 몸과 마음을 재충전할 수 있는 소소한 일들만으로 내 일상을 더 촘촘히 채워가야겠다. 그러려면 휴식이 되지 않는 일들은 과감히 배제할 수 있는 강단이 필요하다. 잘 쉬며 사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