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미쳤나 보다. 며칠째 어쿠스틱 베이스 동영상을 보면서 온라인 쇼핑 사이트를 헤매고 있다. 아주 먼 옛날, 대학 시절 때 밴드를 했었을 데 베이스에 미쳐있었던 시기가 있었다. 그 후 해외로 나가면서 악기와 앰프를 정리했는데, 요새 다시 베이스가 사고 싶어졌다. 베이스를 사면 앰프도 사야 한다는 고정관념 때문에 지금까지는 잘 버티고 있었다. 그 무거운 앰프가 먼지를 뒤집어쓴 채 집 한 구석을 차지하고 앉아있는 모습을 상상하면, 볼 때마다 마음도 무거워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앰프가 없어도 연습을 할 수 있는 어쿠스틱 베이스의 존재를 알아버리고 말았다. 엄청난 시간을 검색에 소비한 한 결과, 내 마음에 쏙 드는 어쿠스틱 베이스를 찾고 말았다.
보라, 이 미니멀한 디자인! 거기다 내가 좋아하는 검은색이란 말이지. 어쿠스틱이라서 집에서는 앰프 없이 연습할 수 있다. 앰프레 전원을 켜고 케이블을 꼽을 필요도 없다. 하지만 만약 필요하다면 픽업이 있어서 앰프에 연결할 수 있다. 소리도 나쁘지 않은데, 여러 연주 동영상을 보다가 바로 이 동영상을 보고 마음을 굳혔다.
기타를 사면 바로 이 곡부터 카피해야겠다고 생각하며 반복 재생 중이다. 가격이 가장 저렴한 곳을 찾아놓았고 이제 결제만 하면 된다.
그런데, 난 미니멀리스트다. 아직도 갈 길이 멀지만 내 인생과 소유물을 꾸준하게 편집하면서 간결하게 살고 싶다. 이런 내가 베이스를 사도 될까? 며칠째 고민을 하다가 오늘 마침 악기점에서 전화를 받은 김에 생각을 정리하려고 이 글을 쓰는 중이다.
사야 할 이유
- 베이스를 칠 때 행복하다.
- 베이스를 더 잘 치고 싶다. 그러려면 연습을 해야 한다.
- 어쿠스틱이라서 앰프를 안 사도 된다.
- 마음에 쏙 드는 디자인이다.
- 평생 취미로 하고 싶다. 베이스 치는 노인이 되고 싶다.
사지 말아야 할 이유
- 과연 내가 계속 열심히 연습할까? 한 달 후에는 구석에 처박아 놓는 건 아닐까?
- 가격이 싸지 않다. $439. 이런 비싼 소비를 할 가치가 있나? 이 돈으로 더 큰 행복을 살 수 있지 않을까?
- 하나를 사면 하나를 비워야 균형이 맞는다. 베이스를 들이면 시간적이나 물건/공간적으로 뭘 포기할 것인가?
- 추가로 케이스와 스탠드도 사야 한다.
- 갑자기 왜 사고 싶어 졌지? 나의 어떤 결핍을 채우려고 하는 거지? 다른 방법으로 채울 수는 없나?
오래전에 인터넷에서 발견한 글에서 모든 소비는 결핍과 연결되어 있다는 내용을 접했었다. 물건을 사기 전에 자신 안의 어떤 결핍을 채우려고 하는지 확인해 보라는 내용이었다.
배우자와 자녀는 없고, 다른 가족들과의 관계는 아주 좋음. 아마도, 나만의 가족이 없는 독신으로서의 외로움을 채우려고 베이스를 입양(?)하려는 것일 수도 있겠다.
다행히 죄책감은 없지만 자격지심은 있다. 내가 부족해서 독신이라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된다. 베이스를 잘 치면 멋지지 않은가? 더 나은, 매력적인 사람이 되고 싶은 갈망이 있다는 걸 인정한다.
약간? 내 베이스가 생기면 혹시 새로운 사람들과 교류하게 되지 않을까? 작은 희망을 가져보지만 큰 기대는 없다.
이 글을 괜히 썼나 싶다. 분명 쓰기 시작하기 전에는 베이스를 살 마음이 굴뚝같았는데, 내 안의 결핍들이 나의 소비욕구에 작용했다는 사실이 문서화되어서 내 눈에 보이니 나 자신이 지질하게 느껴진다. 미니멀리스트라고 자부하면서도, 결국 내 결핍을 돈으로, 물건으로 해소하려고 했구나. 아, 근데 왜 아직도 사고 싶지? 이렇게 고민만 하고 있는 시간이 아깝다. 그냥 사버릴까 보다.
P.S. 20230731 결국 사버렸다. 계속 고민하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기도 했고, 나에게 베이스만큼 순수한 기쁨을 주는 것이 내 인생에서 몇 개 없다고 깨달았기 때문이다. 미니멀리즘이 무소유는 아니다. 결제 버튼을 누르고 나서 이유모를 뿌듯함과 안도감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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