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리즘 외길 인생 어연 십여 년 (응?) 하지만 도저히 간단해지지 않는 내 생활의 몇 가지 영역이 있다. 그중 옷장이 상당히 문제적인데, 꽤 여유 있는 크기의 옷장을 혼자 쓰고 있으면서도 늘 정리가 안되고 옷이 너무 많다. 휴가만 되면 이걸 언제 다 뒤집어엎어서 치워야지 하면서도 늘 미루기 일쑤. 역시나 4월에 있던 이주 휴가 동안에도 옷장 정리를 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감기에 걸려 병가를 내고 일요일과 월요일 이틀 동안 집에 있으면서 일을 벌이고 말았다.
서랍이 없어서 다 쓴 티슈곽에 속옷 및 옷걸이에 걸기 애매한 옷들을 수납하고 있다. 우연히도 옷장의 폭과 티슈곽 여섯 개의 길이가 비슷해서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티슈곽이 잘 움직여서 그런지 늘 삐뚤빼뚤 어수선하다. 계절이 지나면 안 입는 옷을 옷장의 윗부분에 올려놓는데 역시 서랍이 없기 때문에 신발 상자나 티슈곽을 이용한다. 일 년에 두 번 정도 계절옷을 정리하는 게 생각보다 참 번거롭다. 아무튼 어제는 우선 정리가 되어있지 않은 물건들을 일단 다 방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설마 내가 이 상태로 계속 살지는 못하겠지 하며, 미래의 나에게 일을 떠넘겼다. 일은 벌여놨지만 막막한 기분에 한동안 옷들을 여기저기로 옮겨보기만 하다가 인터넷 검색에 들어갔다. 검색어는 미니멀리즘 옷정리 팁. 내가 전에 블로그에 올렸던 글도 복습하고 여러 페이지들을 섭렵해서 얻은 꿀팁 몇 가지:
1. 옷장 안을 세밀히 파악할 것
- 옷장 안의 옷을 다 꺼내본다.
- 옷 목록을 작성해 본다. 이거 해보고 싶었는데 까먹고 못함. 엑셀 파일로 만들어보고 싶다.
- 세 가지 카테고리로 분류하기: 기부/판매/입을 옷
- 입을 옷은 다용도로 활용가능하고, 입어서 보기 좋고, 기분 좋은 옷만 남길 것
2. 자신의 스타일을 확립할 것.
- 입어서 가장 나답게 느끼는 스타일의 옷만 소유하기. '각. 간지. 간단'이라고 내 스타일을 정해보았다. 각 잡힌 정장 스타일이나 개성적인 옷, 아니면 미니멀한 디자인의 옷이 나다운 듯.
- 자신만의 스타일을 찾는데 도움 되는 몇 가지 질문들:
1) 어떤 소재의 천이 가장 편하게 느껴지는가? 무조건 가벼운 옷이 편하다.
2) 어떤 색과 패턴, 액세서리가 가장 나다움을 표현해 주는가? 검정, 베이지, 녹색, 파랑이 나다운 색 같고, 패턴이나 로고가 없는 무지, 심플한 액세서리가 좋다.
3. 제일 좋아하는 다섯 개의 착장을 추려볼 것.
- 그 다섯 착장만 돌려 입거나 응용해도 충분하다. 이건 아직 못해봄. 하지만 다섯 벌이라는 한계치가 생겨서 좋다.
4. 현재 안 맞고, 불편하고, 잘 안 어울리는 것은 다 처분할 것.
- 한 사이즈만 남기고 지금 당장 맞지 않는 옷들은 처분할 것. 이걸 보고 한 사이즈 작은 스키니진을 처분하기로 결정!
5. 부정적인 감정을 조금이라도 들게 하는 옷들은 옷장에서 뺄 것.
- 죄책감, 슬픔, 불쾌함을 조금이라도 느끼게 하는 옷은 처분할 것. 편하지만 낡은 옷들이 많았는데 내가 나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옷들은 처분하기로 했다.
6. 모든 옷을 한 곳에 보관할 것.
- 계절마다 정리할 필요가 없도록 모든 옷을 한눈에 보이게 할 것. 이건 아직 실행하지 못했다. 결국 여름옷은 상자에 넣어서 옷장 위에 올려놓음. 언제쯤 전계절 옷을 옷장 밑에 다 수납할 수 있을는지.
7. 색상을 두세 가지로 제한할 것. 네 가지로 제한했다. 검정, 베이지/갈색계열, 어두운 녹색계열, 파란색계열.
8. 종류별로 한 두 가지만 남길 것
- 예를 들어 검정 청바지는 한 두 벌만 남기고 나머지는 처분할 것. 한동안 중고가계에서 검은색 청바지만 사고 돌아다녔다. 거기다가 오래된 청바지도 아직 가지고 있다. 처분할 수는 있지만 팔거나 기부하기에는 낡아서 내가 끝까지 입고 처분하기로 함. 더는 안 사야지.
9. 액세서리는 다 처분하거나 하나만 남기고 다 처분할 것. 이거 힘들다. 목도리랑 모자가 넘치게 많다.
10. 전체 옷 개수를 옷장 사이즈에 맞출 것. 옷장의 70%만 채워진 상태를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지금은 80%?
이렇게 검색한 내용을 정리를 한 후에 그것에 성취감을 느껴버려서 어제는 그냥 이 상태로 내버려 두었다. 오늘 오후까지 미루고 미루다가 도저히 이렇게 두고는 못 살 것 같아서 (어제의 내가 옳았다 ㅎㅎ)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배경음악으로 정리에 관한 유튜브 비디오를 틀어두었다. 검색해서 배운 내용을 다 실천하지는 못했지만 꽤 많은 양의 옷을 처분하기로 마음먹고 큰 비닐봉지에 담았다.
중간에 화장품을 두는 칸은 여전히 지저분한 게 눈에 띄지만 그 밑의 두 칸은 현저하게 깔끔해졌다. 원래 미니멀리즘의 상징 같은 빈칸을 갖기 위해서 한 칸은 비워두었는데 무리였던 것 같다. 큰 비닐봉지에는 엄마가 주신 이불도 들어있는데 이불 몇 개를 옷장에서 뺐더니 공간이 많이 비었다. 이불 생각은 미처 못했네.
걸을 수 없는 여름옷 몇 벌은 신발 상자에 담아서 맨 위칸 왼쪽에 올려놓았다. 그 옆에는 빈 티슈곽들을 놓았는데 지금 사용하는 티슈곽들이 못쓰게 되면 교환할 용으로 남겨두었다.
지금 다시 비포/애프터 사진을 보니 뭐 별로 대단하게 바뀐 게 없어서 좀 멋쩍다. 포스팅할 정도는 아니었나 싶지만, 큰 비닐봉지 속에 들어있는 한 무더기의 옷들과 이불을 보니 속이 시원하다. 내가 왜 이것들을 끌어안고 살고 있었을까? 옷장 정리가 처음은 아니기 때문에 나는 잘 알고 있다. 지금의 상태가 오래가봤자 겨우 일이 주 유지되고 다시 또 붕괴될 것이라는 것을. 하지만 최소한 다음 휴가까지는 옷장 정리를 할 짬이 나지 않을 것 같다. 그리고 계속 이렇게 정리만 하면서 살고 싶진 않다고! 그래서 간구한 대책 몇 가지:
- 각각의 티슈곽에 거기에 들어갈 옷을 써 놓는다. 모든 옷에 '집'을 정해준다.
- 한 번이라도 입었다가 벗고 다른 옷으로 갈아입은 옷은 메모해 뒀다가 처분한다. 뭔가 하나라도 찜찜한 옷은 처분하자.
- 최애 착장 다섯 벌 정해보고 거기에 포함되지 않는 옷들은 처분을 고려하자.
- 일주일에 한 아이템씩 처분하기: 토요일 오후에 낡은 양말이나 속옷부터.
- 당분간 쇼핑 금지!
- 옷 선물은 거절하기. 옷장 속에 걸려있는 옷 중에 의외로 선물로 받은 옷이 꽤 많았다. 마음은 너무 고맙지만 부드럽게 거절해야 한다.
다음 옷장 정리는 과연 언제 하게 되려나? 언젠가 반쯤 홀쭉해진 옷장 사진을 블로그에 올리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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