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 교사분 중에 인도 교민단체에서 리더로 활동하시는 분이 있다. 학교 행사에서 그녀가 인도 노래를 부를 때 바이올린으로 반주를 한 일을 계기로 친해졌는데, 그녀에 인도 지인들이 하는 음악 모임에 몇 번 초대를 받았다. 악기를 하는 사람들과 노래를 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즉흥 공연을 하는, 내게는 생소한 방식의 모임이었다. 인도 음악을 몇 곡 알지는 못하지만 그저 호기심으로 한 번 참여를 했었고 거기서 만난 사람들이 Diwali (디발리) 행사 때 야외무대에서 공연을 하는데 얼렁뚱땅 참여를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동료분이 노래하는 단 두 곡만 연습해서 가려고 아주 가벼운 마음으로 한다고 했는데, 전자드럼, 키보드, 기타밖에 없는 단출한 밴드라서 다른 곡에도 약간씩만 연주를 하기로 했다. 이거 이거, 점점 스트레스가 쌓여갔다. 내가 왜 한다고 했지? 2곡에서 5곡으로 늘어나고, 모르는 노래의 바이올린 파트를 옮겨 적는데 시간도 많이 걸릴 테고, 내가 또 바이올린을 막 엄청 잘하는 건 아니라서, 실수할까 봐 걱정도 되었다. 거기다가 리허설을 한 번밖에 참석하지 못해서 불안한 마음도 있었다. 교회나 대학에서 리허설을 할 때는 악보에 모든 지시사항을 꼼꼼히 기록한 후 숙지하는데, 이 밴드는 나 빼고 다 곡들을 잘 알고 있는 관계로 악보를 만들지 않는 것이 최고의 불안요소였다. 하지만 유튜브로 음악을 찾아들으면서 곡을 익히는 동안, 이런 대부분의 불평이 다 사라졌다. 곡들이 다들 너무 좋아서 자꾸 듣고 싶고, 연주도 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그렇게 연습을 하고 어제 오후 Rouse Hill Town Centre 앞에 마련된 작은 야외무대에서 공연을 마치고 왔다. 물론 완벽하고 전문적인 공연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기분 좋게 연주하고 웃으면서 헤어질 수 있어서 내게는 참 행복한 시간이었다. 기록의 차원에서 이번 행사에서 공연했던 곡들을 정리해 본다:
행사의 첫 곡은 내가 동료분과 학교에서도 공연하고 이번 행사에서도 같이 연주했던 Ek Pyar Ka Naghma Hai (에크 피야 카 나그마 해이)였다.
https://www.youtube.com/watch?v=H2BTCPW3Hw8
처음부터 바이올린으로 시작해서 그런지, 처음 들었을 때부터 맘에 들었다. 가사도 로맨틱하고, 오케스트라 편곡도 잘 되어있어서 듣는 재미가 있다. 팝송이나 한국 가요와는 구조가 다른데, 특히 보통 2번 반복할 것 같은 구간에서 3번을 반복하는 점이 신선했다. 내가 가진 음악적 고정관념이 깨지는 느낌을 받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aNcxgxHcGYg
발리우드 영화에서 자주 보이는 Shah Rukh Khan (샤루칸)이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어린 여자주인공과 연애를 하는 내용의 뮤직 비디오라서 처음에는 좀 거부감이 들었다. 이 양반 연세가 좀 되시는데, 아무리 대스타라도 너무 한 것 아닌가? 근데 또 노래가 좋아서 이런 불만은 금세 잊어졌다. 바이올린 파트는 따로 없어서 중간에 노래가 쉬는 부분에 멜로디를 연주했다. 여러 나라의 민속음악에 등장하는 음을 잇고 또 잇고 있는 멜로디라인을 팝 스타일의 곡에 접목한 점이 맘에 든다. 역시 이번에도 로맨틱한 가사인데, 이 곡을 불렀던 분이 목소리가 여성스럽고 예뻐서 곡에 잘 어울렸다.
https://youtu.be/tOSDRojm63 o? si=sQHE1 QYziNgtGyJS
이 곡은 처음 듣고 나서 최면에 걸린듯한 느낌을 받았는데 4분의 7박 자라는 현대음악에서 주로 쓰이는 어려운 리듬이 반복되는 곡이어서 그런 것 같다. 이 곡의 박자를 어떻게 연주할까 걱정이 되었는데 전자 드럼을 치시는 분은 곡을 한 번 듣고 바로 맞추셨다! 인도 음악에서는 자주 쓰이는 박자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한 번 듣고도 기억에 남을 만큼 중독성이 있는 곡이다. 역시 이 곡의 가사도 엄청 낭만적인데, 너 없으면 못 살겠다는 내용이었던 것 같다. 난 중간에 플루트 파트를 바이올린으로 잠깐 연주했다.
https://youtu.be/HDbi7 nP8 RV8? si=ETv_SqyillWFhVPn
뮤직 비디오만 봐도 상당히 오래된 곡이다. 아마도 영화 속의 한 장면인 듯한데, 악기를 연주하는 남성을 뜨거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여주인공의 눈화장이 인상적이다. 이 곡은 아무리 듣고도 악보를 다 따지 못해서 첫 부분만 몇 번 반복했다. 아쉬움이 남는다.
https://youtu.be/jE9 yNAUjcwI? si=1 a0 V3 WnUt3 N4 oK4 E
한 번 듣고 너무 좋아서 웃음이 터져 나왔던 곡이다. 뭐 이런 신비하고 오묘한 곡이 다 있지? 처음 듣고 이 곡은 무조건 연주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20세기 초반의 인도 국민들이 이런 곡들을 좋아했다니, 음악적 수준이 엄청 높은 것 같다. 화성학적으로도 간단하지 않고, 멜로디도 따라 부르기에는 수월하지 않은 곡이지만, 청취자의 입장에서는 귀가 너무도 즐거워지는 곡이다. 이 곡은 악보를 옮기고 연습을 했는데 나중에 키를 반음 낮추는 바람에 자신 있게 연주하지 못해서 아쉬움이 남는다. 연습 부족이다 ㅠㅠ
https://youtu.be/XV--2 ysknlk? si=xm-SYcPj2 LNdnK-w
행사의 마지막을 장식한 Jutti Meri라는 곡이다. 힌디어는 아니고 푼자비어로 된 곡인데, 내가 추천해서 포함된 곡이다. 내가 추천하기 전에는 다들 모르는 곡이었던 것 같은데 곡이 워낙 쉬어서 다들 금세 익혔다. 한국의 오렌지 캐러멜의 '까딸레나'에 샘플링이 되어서 찾아보게 된 곡인데, 가사가 참 특이하다. 결혼식을 앞둔 신부에게, 오라는 신랑은 안 오고, 처음에는 시동생이, 그다음에는 시아버지가 신부를 데리러 간다는 내용. 맨 마지막 절에는 결국 새신랑이 신부를 맞이하러 가서 신부가 행복해하며 노래가 끝이 난다. 관중의 박수를 유도하며 흥겹게 연주를 하며 행사를 마치기에 좋은 곡이었다.
다른 문화권의 행사에 처음 참여하고 느낀 점 몇 가지:
- 모르는 곡을 배우고 연습하는 과정이 시간이 걸려서 괜히 했나 후회가 되었는데, 행사가 끝나고 보니 참여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그 시간에 연습을 안 했으면 평범한 일상을 보냈겠지. 이렇게 특별한 경험을 할 기회가 그리 자주 있지는 않다. 나의 음악적 데이터베이스가 조금이나마 확장될 수 있어서 즐거웠다.
- 내가 거절을 잘 못한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처음부터 확실히 2곡만 하겠다고 못을 박을 수도 있었는데 어영부영 곡이 늘어나고, 부탁을 받을 때 확실히 내 의사를 표현하지 못했다. 결과적으로는 새로운 곡을 알게 되어서 좋았지만, 나에게는 거절이라는 선택지가 있다는 사실을 앞으로는 꼭 기억하기로 다짐했다.
- 더 좋은 공연을 하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을 다 해보자. 악보와 코드를 정리해서 기타와 키보드 연주자들과 공유했으면 훨씬 더 좋았을 것이다. 약간의 투자로 더 좋은 추억을 만들 수 있었을 것 같다. 다음에 기회가 생기면 꼭 해보고 싶다.
- 인도에서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나라이다. 내가 사는 지역에도 많은 인도 출신의 사람들, 인도 문화권의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다. 음악을 통해서 그들을 조금 더 이해하고, 막연히 가지고 있던 거리감을 좁혀갈 수 있어서 뜻깊은 경험이었다.
- 음악 하는 사람들과 같이하는 시간이 참 좋다. 공연 전의 긴장감을 오랜만에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여러 사람들이 각자의 역할을 통해서 하나의 행사를 치르는 그 과정이 내게 소속감과 성취감을 느끼게 해 주었다. 내가 언제 행복한지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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