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드니

축구는 어려워

몇 시간 전 네 번째 축구 경기를 마치고 돌아왔다. 오늘도 역시 하루 종일 긴장을 한 상태였다. 이틀 전 유튜브에서 본 공차는 연습 동작을 무리해서 따라 하다가 왼쪽 허리와 엉덩이 근육을 다치고 말았다. 연습한 직후에는 몰랐는데 자다가 새벽에 깨서 화장실에 가려는데 어마어마한 통증을 느끼고 한참을 일어나지 못하고 무릎을 꿇은 자세로 있어야 했다. 간신히 일어나서 집 안을 돌아다니니 조금 나아졌지만 허리를 굽히는 동작을 할 때마다 통증을 느꼈다. 슬렁슬렁 연습했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처음 해보는 동작이다 보니 무리가 간 것이다. 경기가 이틀 후이고, 게다가 팀 멤버들 몇 명이 경기에 참여를 못하는 상태라 내가 꼭 가야 했다. 계속 마사지를 하고, 근육통을 위한 약을 바르고, 반신욕을 하고 계속 스트레칭을 해서 기적처럼 경기 전에 90% 정도 회보를 할 수 있었다.

 

지난 세 번의 경기를 연패하고 11명 중 4명이 자리를 비워서 팀의 분위기는 그리 활기찬 편은 아니었다. 0:4, 1:4 그리고 지난 경기는 0:5. 그나마 지난 경기의 후반에 무실점을 한 것이 한 자락 희망의 빛이 되어 주었다. 나는 여전히 팀의 최약체이고, 헛발짓을 반복하고, 공을 몇 번 만져보지도 못한다. 그저 상대편이 공을 못 차도록 얼씬거리며 뛰어다닐 뿐이다. 코치가 나의 달리기가 아주 조금 빠른 것에 기대를 걸었으나 경기 시작 후 5분이 지나지 않아, 나는 공격수에서 수비수로 돌아오게 되었다. 오늘 나 자신에 대한 기대는 아주 아주 낮았다. 경기에 참여한 것만으로도 내 할 일을 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번에 경기한 상대팀은 코치의 말로는 우리와 전적이 비슷해서 이길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막상 경기가 시작하고 보니 그렇지도 않았다. 왜 이리 공을 뻥 소리 나도록 힘차게 차는지, 에너지가 엄청났다. 단지 드리블이 우리 팀만큼 서툴러서 공을 금방 뺏을 수는 있었지만, 우리 팀의 공격수들이 공을 찰 때면 또 잘도 막아냈다. 난 늘 골키퍼 주변에서 상대 공격수가 올 때까지 에너지를 아끼다가, 공이 다가오면 수비를 시작했다. 오늘도 역시 헛발짓의 연속이었다. 내가 부상을 입어가면서 연습한 왼발골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공을 뺏다 보면 내가 오른발로 차는지 왼발로 차는지 생각할 겨를도 없기 때문이다. 공을 한 번 차 보려는 열심히 앞서서 나대다가, 공을 오른쪽 눈에 맞았다. 그리고는 뒤로 그대로 자빠졌다. 어, 내가 누워있네?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우리 팀 선수의 얼굴이 시야에 들어왔다. 다행히 아드레날린이 폭발 중이어서 그랬는지 전혀 통증을 느끼지 못했다. 약간 시야가 흐릿해졌지만 이내 괜찮아졌다. 부끄러워서 얼른 일어났다. 그러던 중에 0:0으로 전반이 끝났다. 우리 팀은 첫 승리를 거두고 싶은 마음에 코치의 새 작전을 들으면서 다시 필드에 나갔다. 새로운 작전이란, 골키퍼가 골킥으로 공을 멀리 주면 우리 팀 공격수가 속공으로 골을 넣는 것. 몇 번의 시도가 있었지만 상대편의 공격도 만만치 않았다. 난 다시 한번 공을 가슴 한가운데에 맞았다. 턱 숨이 막히고 눈물이 찔끔 나왔지만, 사람들의 괜찮다는 질문에, 괜찮다며 아무렇지도 않은 척했다. 솔직히 이번에는 좀 아팠다. 하지만 다시 경기에 집중하다 보니 아픈 게 사라졌다. 후반에 여러 번의 기회가 있었지만 아쉽게도 득점으로는 이어지지 않았고 0:0으로 경기가 끝났다. 처음으로 지지 않은 경기였다!

 

축구 경기를 시작한 지 한 달이 되고 느낀 점 몇 가지:

- 경기 전에는 커피나 바카스를 한 사발 들이킨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피곤하기도 하고 안절부절못하기도 하지만 경기장에 도착하면 다시 차분해진다. 이런 긴장감이 싫지는 않다. 경기가 끝나고도 흥분이 남아 있어서 잠을 쉽게 못 이루는 게 단점이긴 하다.

- 난 축구를 못한다. 운동신경이 없어서 공을 못 차고 경기의 흐름도 파악하지 못한다. 이건 팩트. 인정하는 수밖에 없다.

- 내 체력이 내 생각만큼 좋지 않다. 조그만 달려도 금세 숨이 찬다. 믿는 것은 체력밖에 없었는데 망했다.

- 아마추어 축구를 하는 여성팀들이 진짜 많다. 우리 지역만 있는 게 아니라 다른 지역들에도 더 있다고 생각하니 생활체육 인구가 엄청난 것 같다. 난 그중에 속하지 않은 채로 몇십 년을 살아왔구나 생각하니 참 아쉽다.

- 비기기만 해도 기분이 좋다. 경기에서 자꾸 지니까 재미가 없어진다.

- 유튜브로 훈련 동작 동영상을 보고 연습을 하지만, 혼자 하니까 전혀 늘지 않는다. 잘 못 연습하다가 이번처럼 다치느니, 그냥 달리기로  체력만 보충해야 하나보다.

- 축구 잘하는 모든 사람이 존경스럽다. 체력과 뛰어난 순간 판단력을 겸비한 축복받은 사람들이다.

 

앞으로 9번의 경기가 남았다. 오늘의 무승부로 우리 팀은 승점 1점을 간신히 얻었다. 토너먼트식이어서 승점을 총합으로 우승을 가리는 것 같다. 벌써 3패를 했기 때문에 우승과는 거리가 한 참 멀지만, 제발 꼴찌는 면하고 싶다. 가능하면 기적이 일어나서 내가 한 골을 넣어봤으면 좋겠다. 인터벌 달리기를 꾸준히 연습해서, 골킥을 받아서 막 달려서 바로 골! 그때 골키퍼가 자리를 비우는 기적이 일어난다면 가능할지도? 가능성이 너무 희박하구나. 일단 매 경기마다 헛발질 횟수를 줄이고, 공에 좀 더 닿아보는 것으로 목표를 잡아보자. 재미로 하는 축구인데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노력해도 안 되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너무 잘 알아서 새삼 또 깨달을 필요가 없는데 말이지. 축구는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