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오후 4시, 시드니 웨스트라이드 광장에서 탄핵 집회에 참가했다. 8년 전 시드니 시내에서 열린 박근혜 탄핵집회 이후 두 번째로 참가하는 촛불 집회이다. 12월 3일, 계엄령에 대한 뉴스를 접한 이후로 계속 어이없음과 끓어오르는 화를 주체 못 하는 나날들이 계속되고 있었다. 뭐라도 하고 싶고, 해야만 해서 꼭 참여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한국이 아닌 해외에서 집회를 한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겠냐는 생각이 안 드는 것은 아니었지만, 해외에서도 윤석열의 만행을 규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데 작은 목소리라도 보태고 싶었다. (근데 나 목소리가 꽤 큰 편이긴 함 ㅋㅋ
지난주 토요일이었던 12월 7일은 전부터 일정이 잡혀있어서 참여하지 못했는데, 인터넷에서 언뜻 본 봐로는 집회의 규모가 생각보다 많이 작았다. 그리 많은 인원이 모이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을 하고 장소에 도착했는데, 역시나 소수의 인원이 광장 한 편에 모여있었다. 이번 사태에 관심을 보이던 두 명의 지인에게 같이 가자고 이야기를 꺼냈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아서, 혼자서 참여하게 되었다. 광장에 도착하고 약간 뻘쭘하게 모인 사람들 무리 근처로 다가갔다. 박근혜 탄핵 시위 때도 혼자 갔었던 경험치가 있어서, 혼자라는 것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건 알고 있었다. 4시가 넘었지만 사람들이 더 모일 때까지 기다렸다가 조금 늦게 시작했다.
주로 어르신 분들이 많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는 2030 세대도 조금 눈에 띄었다. 대부분은 4050 여성분이었다. 알고 보니 시드니 촛불행동이라는 시민 단체에서 주최한 집회였다.
관계자이신 분이 사람들에게 노래 가사와 집회 순서가 적힌 종이를 나눠주셨는데 나는 못 보고 지나쳐 가셨다. 근처에 있는 분께 부탁을 해서 사진을 찍었다. 기존의 곡의 가사를 현 상황에 맞게 바꾼 것이 너무 적절하고 재미있었다.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하는지라 신나게 따라 불렀다.
흥겹게 부르다 보니 문득 역적들이 너무 많은 것이 서글퍼졌다. 이 사람들은 자신의 이름이 이런 식으로 역사에 기록된다는 것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아무 생각이 없는 걸까?
집회가 그냥 구호만 외치다가 해산하는 모임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노래도 부르고, 연설도 듣고, 구호 제창도 한다. 사람들이 지치지 않도록 다양한 순서가 준비되어 있었다. 제목만 들어본 곡들을 실제로 불러볼 수 있던 것도 좋은 경험이었다.
시드니 촛불행동의 노현무 회장님이 대회사를 하셨다. 열심히 듣고 고개도 끄덕였는데 한국에서 중요한 인물들과 만났던 경험담이었던 것 같다.
천주교 세례명을 쓰시는 분이 연대사를 하셨다.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소속되어 한 마음으로 촛불 시위에 참여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이 분은 속 시원하게 구호를 외치셔서 멋지셨다. 시위에 시아버지도 같이 참여하시는 걸로 보아 멋진 집안인 듯!
함성중창단과 함께 '탄핵이 다비다'를 불렀다. 크리스마스 캐럴인 Feliz Navidad를 재밌게 개사해서 부르는데 신이 났다.
이 분은 '나 어떡해'라는 곡을 현 시국에 맞게 개사해서 윤석열에게 헌정(?)하셨다. 모두들 유쾌하게 따라 불렀다. 그다음에는 자유발언 순서가 있었는데 꽤 많은 분들이 용기 있게 마이크를 잡고 발언을 했다.
어르신이 맨 처음 나오셔서 발언을 하셨다. 우리 엄마보다 연배가 있으신 분이신데 소신 있게 발언하시는 모습이 너무 멋졌다. 사실 부모님과 정치성향이 달라서 탄핵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수가 없는데, 내 주변에도 탄핵에 찬성하는 어른들이 계시다면 얼마나 좋을지 부러웠다.
11살이었나? 어린이가 나와서 영어와 한국어를 섞어가며 자유발언을 했는데 정말 기백이 넘쳤다. 윤석열의 탄핵 사유는 이런 어린애한테도 이해가 될 만큼 명확하다고! 나중에 이 어린이의 아버지도 나와서 발언을 하셨는데, 멋지고 용감한 부자였다.
우리 집회에서도 아이돌 응원봉을 가지고 집회에 참여한 젊은이가 있었다. 워킹 홀리데이로 호주에 와있는 여성 청년인데, 집회에 참여하기 위해 오는 길에 기차에서 쓴 내용이라고 하는데 정말 조리 있고 호소력 있는 발언이었다. 대한민국의 미래가 참 밝다.
해병대 모임의 회장님이신 것 같은데, 바카스를 후원해 주신 바로 그분이다! 해병대 출신답게 카리스마와 에너지가 넘치시는 분이었다.
목사님이라고 신분을 밝히신 분의 발언이 참 인상적이었다. 주변에서 목사가 왜 정치에 참여하냐고 만류를 하신다고 하는데 이분의 생각은 확고했다. 미친 사람이 버스를 운전하고 있으면 그 운전자를 끌어내는 게 당연하지, 그게 종교와 무슨 상관이 있냐는 것이었다. 평소에 한국 교회에서 환경이나 정치 같은 사회정의에 관련한 이슈에 참여도가 낮은 것에 불만이 있었는데, 이런 목사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마음이 조금 놓였다. 이 목사님이 어느 교회에서 시무하시즌지 궁금하다.
원래는 캠핑을 갈 계획이었는데 윤석열 때문에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면서 화가 잔뜩 난 분이 마지막 구호제창을 맡으셨다. 엄청난 성량과 분노가 합쳐져서 과장의 보태서 화산 폭발급의 데시벨로 구호를 제창해 주셨다. 이 분 아마 며칠은 목소리가 안 나오지 싶다.
규모는 크지 않았지만 그 열기와 진지함만큼은 광화문 광장 앞에 지지 않았던 시위였던 것 같다. 다들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고자 한 자리에 모여서 영문을 모른 체 우리를 쳐다보던 사람들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마음과 목소리를 한데 모았다. 그 덕분일까? 시위가 끝나고 한 시간 후쯤 탄핵소추한이 가결되었다는 뉴스를 접했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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