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 대부터 일본 만화와 애니를 보기 시작하고, 이십 대에는 일드와 일본 음악에 빠져서 유학까지 다녀왔다. 그 후에도 계속 일드와 애니를 봐왔지만 최근 몇 년, 점점 일드와 애니가 재미가 없어지기 시작했다. 세계적으로 한국 드라마와 음악이 유행하기 시작하고, 우연인지 필연인지, 상대적으로 일본 문화가 힘을 잃어가기 시작했다고 생각하는 건 나뿐일까. 분기마다 보던 애니의 숫자가 점점 줄어들어서 2021년 4분기에는 매주 챙겨보는 애니가 단 한 편이었던 것 같다. 내가 나이가 먹어서 인 것도 분명히 있지만, 이세계물, 판타지물이 유행을 하면서, 내 취향에 맞는 작품이 별로 없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던 내가 오늘 한 줄기 희망의 빛을 보았다. 그래, 할머니가 되고서도, 애니를 보며 즐기는 감수성을 유지하고 싶다는 나의 꿈을 지켜주는 희망의 빛. 넷플릭스에서 우연히 보기 시작한 '비스타즈'가 바로 그것이다.
이 작품의 제목을 처음 접한 건, 커뮤니티 게시판에서 본 작가와 작가의 아버지에 관한 포스트에서였다. '비스타스'의 작가가 '바키'의 작가의 딸이라는 내용에, 좋은 유전자를 물려받아서 부럽다는 생각을 했었다. 유전자뿐 아니라, 전혀 가부장적이지 않은 아버지 덕분에, 창의적인 사고를 하며 유년기를 보낸 작가가 엄청 운이 좋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본인의 노력도 엄청나겠지만 말이다.
https://www.fmkorea.com/index.php?document_srl=2193612030&cpage=1
만화 바키 작가의 딸 근황.jpg
바키 작가의 딸(이라고 공식 확인된) 이타가키 파루. 신비주의 컨셉으로 소년 점프에 만화를 연재하기 시작하는데그게 바로 비스타즈.2017년 이 만화가 대단하다 부문 2위, 2018년 일본 만화대상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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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묘한 질투(?) 때문일까? 볼 기회가 몇 차례 있었음에도 지나쳐버리고 말았다. 거기다가 비슷한 수인류(?)의 BNA가 생각나기도 했다. 처음에는 재미있게 보다가 나중에는 기억나지 않는 이유로 김이 빠져서 실망을 했던 기억에, 뭐 '비스타즈'도 대충 비슷하겠거니 했다.
BNA는 미래를 배경으로 하고, 귀여운 캐릭터들이 꽤 철학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괜찮은 작품이지만, 내 흥미를 계속 유지시키기에는 스토리 전개가 평이했던 것 같다. 그것에 반에 '비스타즈'는 내 예상을 다 뛰어넘는다. 대충 줄거리는 주인공인 늑대소년 '레고시'가 자신 안에서 점점 깨어나는 육식에 대한 욕망을 억누르며 초식동물들에 둘러싸여서 학교생활을 하는 사춘기 성장물인데, 사전 지식이 없이 보기 시작한 나에게 이 작품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비스타즈'가 날 놀래킨 점들:
- 학원물이다! 주인공들이 고등학생이라니 포스터에서는 전혀 그런 느낌이 없었는데.
- 육식동물과 초식동물이 같은 학교에 다닌다. 디즈니의 '주토피아'와 비슷한 설정인데 전개는 전혀 다르다. '주토피아'의 육식동물들은 육식에 대한 욕구가 전혀 없는 것에 반해, '비스타즈'의 육식동물들은 육식성을 법으로 금지당했을 뿐, 육식에의 욕망을 의지로 억누르며 살아가고 있다. 마치 '덱스터'에서 연쇄 살인마가
-그러고 보니 주디와 닉같이 '비스타즈'도 늑대와 토끼가 주인공이네.
- 세계관을 설명하는 부분이 거의 없이 바로 이야기가 시작한다.
- 캐릭터들이 입체적이다. 외모로 판단하는 건 절대 금물! 바로 이점이 이 애니의 주제인지도.
- 19금? 아니 15금? 귀여운 동물 캐릭터가 나오는데 야한 내용도 있을 줄이야.
- 등장인물들의 관계성이 강자와 약자로 나누어지는 사회의 각개 계층의 비유가 된다. 흑수저/금수서, 남/여, 범인/사이코패스 등
여러 그룹의 관계성을 대입할 수가 있다.
- 주인공의 내적 갈등도 비슷한 이유로 여러 욕망에 대한 비유가 될 수 있다. 정복욕, 성욕, 물욕에 대한 인간의 욕망으로 대치해도 말이 된다.
- 가끔 인간 세계라고 생각하면 섬뜩한 장면이 나오는데, 그게 또 재밌다. 예를 들어, 자신이 낳은 알을 학교 매점에 파는 닭 학생이라든지.
'바스타즈'에서도 보이는 일본 만화/애니의 고질적인(?) 단점들:
- 캐릭터들의 이름이 일본스럽지 않은 것으로 보아서 딱히 일본이 배경인 것 같지는 않은데 다들 너무 일본인스럽게 행동한다. 선배한테는 존댓말을 해야 하는 주인공, 교내 동아리에서 보이는 선후배 관계 등이 너무 일본스럽다. 좀 더 보편적인 세계관, 문화, 에티켓을 적용할 수는 없는 걸까? 존댓말, 이름에 대한 강박 (성만 부르다가 이름을 부르는 것이 관계성의 발전을 의미하는 등) 같은 설정은, 왜 빠질 수 없는 것일까?
- 주인공이 일본 만화와 애니에서 흔하게 보이는 사춘기 소년이다. 내성적이고, 정체성에 대해서 고민하고, 좋아하는 여자애에게 용기를 내지 못하고, 하지만 사실 엄청난 힘을 소유하고 있다. 외모가 키 크고 잘생긴(?) 늑대인 것을 제외하고는, 대충 아무 작품에서 남자 주인공을 찍어서 비교해도 비슷하다. 예를 들어서 '에반게리온' 신지와 비교해보자. 연약한 외모만 빼면 계속 독백하는 것도 그렇고 별반 다르지 않다고.
- 전개가 될수록 이야기의 긴장감을 폭력성과 선정성으로 유지한다. 스토리의 반전과 세계관의 확장, 새로운 캐릭터와의 관계성 등 다른 방법도 있을 텐데, 에피소드를 하나씩 끝낼수록 그 수위가 조금씩 올라가고 있다.
오랜만에 정주행 하고 싶은 작품을 만나서 흥분해서 포스팅을 써내려 나갔다. 제발 이 작품 끝까지 재미있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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