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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멀리즘

기내수화물 7kg로 한국 다녀온 썰

작년 9월 저가항공으로 한국 가는 항공권을 예매할 때 실험정신이 발동했다. 돈도 절약하고 미니멀리즘도 실천해 보는 거야! 기내반입가능한 7킬로의 짐만 가져가기로 한 것이다. 23킬로까지 짐을 실으려면 추가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데, 어쩐지 가볍게 여행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노트북은 과감하게 생략하고, 손빨래하기 쉬운 옷들, 작은 노트 하나와 세면도구 등을 챙겼더니 5킬로를 넘지 않았다. 돌아오는 길에는 이모가 엄마에게 전달해 주시는 짐이 있다고 해서 여유가 있어야 했다. 짐이 마침 겨울 옷이라서 무게를 초과할 경우 옷을 껴입을 생각이었다.

 

큰 걱정을 하지 않고 있다가 출국 며칠 전 변수가 생겼다. 내가 인턴에 도착하는 날의 기온이 6도로 확 떨어진다는 예보를 본 것이다. 어떡하지? 겨울옷을 챙겨야 하나? 하지만 며칠 후 온도는 따뜻한 봄날에 맞게 올라가는 것 같았다. 고민 끝에 가벼운 옷을 여러 겹 껴입기로 했다. 공항에서 내린 후 잠시 추워도 공항버스에 바로 타면 괜찮을 것 같았다.

 

배낭여행용 가방을 새로 구입해서 짐을 한 가방에 다 몰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번 실험은 대성공이었다. 공항에 도착한 날에도 옷을 6-7겹을 껴입었더니 그리 춥지 않았다.

 

거의 사용하지 않은 물건도 있었다

 

짐이 단출해서 좋았던 점 몇 가지:

- 외갓집에서 내 짐을 관리하는 것이 수월했다. 가방이 자리를 많이 차지하지 않았고 개수가 적은 만큼 한눈에 내 소지품을 파악할 수 있었다. 집 안에서 물건을 자주 잃어버리는 나에게는 스트레스를 줄여주는 좋은 방법이었다. 

- 짐의 무게가 한정되어있다 보니, 한국에서 쇼핑을 해서 물건을 가져간다는 발상자체가 없었다. 여행하는 동안 쇼핑을 하지 않아서 시간이 절약되었고, 친척분들이 내게 선물을 사주시지 못(?) 하시는 좋은 구실이 되었다.

- 짐이 간단하니 공항에서 따로 짐을 부칠 일이 없어서 출국 수속이 간편해졌다.

- 등에 짊어진 배낭이 생각보다 가벼워서 양손을 자유롭게 휘저으며 이동하기에 좋았다.

 

해외여행의 필수품인 변압기를 챙겨갔는데, 외삼촌의 삼성폰 충전기에 내가 가져간 아이폰용 충전기 USB를 꽂으면 되어서 쓸 일이 없었다. 그 외 집에서 자주 쓰던 집게핀도 거의 안 쓰고 챙겨갔던 철분약도 바빠서 챙겨 먹지 못했다. 그 밖에 공항에서 심심하면 읽으려던 작은 책자도 한 번 밖에 보지 않았고 비행기 안에서 시끄러우면 쓰려던 고무 귀마개도 감사하게도 쓸 일이 없었다.

 

물론 이건 다 내가 외갓집에서 머물렀기 때문에 수건이나 기타 다른 생활용품을 챙겨가지 않아도 괜찮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뭔가가 필요하면 사면된다는 미니멀리즘 와 상반되는 대책을 세우고 있었다. 하지만 다음에 숙박시설을 이용하는 여행을 할 때도 다시 도전해 볼 의향이 있다. 물론 짐이 적어서 늘 편했던 것만은 아니다.

 

짐이 적어서 불편했던 점 몇 가지:

- 내 사정을 모르시던 삼촌이 맛있는 아귀포를 내가 공항으로 떠나기 한 시간 전 사들고 오셨다. 간신히 가방에 넣기는 했는데 아슬아슬했다.

- 매일 손빨래를 해야 했다. 다행히 날씨가 좋아서 바로 건조되었지만, 날씨가 좋지 않았다면 불편했을 듯하다. 속옷과 양말을 두 벌씩만 챙겼기 때문이다.

- 결혼식이 있었는데 격식에 맞는 옷을 챙겨 오질 못했다. 결혼식에 가지 못하는 핑계가 되긴 했지만 삼촌이 서운해하셔서 죄송했다.

 

다음번에 최소한의 짐으로 여행할 때 기억할 점:

- 두꺼운 옷보다는 얇고 잘 마르는 소재의 옷을 챙길 것

- 비닐봉지를 몇 개 챙기자. 짐을 소분해서 종류별로 가방 속에 넣었다면 더 편할 듯

- 물병은 작은 생수병을 사고서 재활용하자. 가져갔던 플라스틱 물병이 생각보다 자리를 많이 차지했고, 비행기 안에서는 화장실을 자주 못 가기 때문에 물을 그리 많이 마시지 않았다. 

- 가져가길 잘 한 물건들: 유선 이어폰 (충전기를 따로 챙기지 않아도 됨), 소형 빨래건조대 (손빨래한 속옷과 양말을 방 안에서 말릴 용도), A5사이즈의 노트가 들어가는 천으로 된 크로스백 (여권과 전화기를 넣고 빼기 편했다)

- 공항에서 가방의 부피를 길이로 환산해 주는 저울이 있는데 무게는 괜찮은데 부피가 넘치는 것 같아서 이래저래 짐을 넣다 뺏다 하느라고 사촌동생과 시간을 낭비했다. 카운터에서는 무게만 재기 때문에 고생할 필요가 없었다.

 

이번 한국 방문의 일정이 열흘밖에 되지 않아서 가능한 도전이기도 했다. 하지만 일정이 더 길어져도 솔직히 두둑한 지갑과 약간의 융통성만 있다면 더 가볍게 여행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가벼운 여행가방이 이번 여행을 더 특별하게 만들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