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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시드니

2025 Archibald 전시회 후기 (스압주의)

매년 NSW주립 미술관에서 주최하는 Archibald 초상화전이 있다. 일등에게 $100,000의 상금이 수여되는 큰 규모의 공모전이기도 하고, 호주의 각 지역사회에서 뛰어난 인물들이 주로 초상화의 모델이 되기 때문에 호주에 사는 사람이라면 흥미롭게 즐길 수 있는 전시회이기도 하다. 초상화 말고도, 풍경화와 사물화 부문이 따로 있어서 전시회를 꼼꼼히 다 돌아보려면 최소한 2-3시간이 필요할 정도로 전시된 작품수가 많다. 약간 무기력한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는데 여러 작품을 보면서 동기부여를 받았고, 소소하지만 확실한 영감을 받았다. 

오늘 다녀와서 써보는 따끈따끈한 리뷰:

 

자신만의 신화를 상상해서 그렸다는 작품

 

선과 악의 공존을 나타낸 것 같은데 보통 선을 상징하는 흰색의 생물체가 악해보여서 흥미로웠다. 명품 브랜드를 연상시키는 문양도 재밌음. 자신만의 세계관을 구축하려는 작가들이 참 멋지다. 

 

눈사람 - 그림은 평범한데 설명은 비범했음

 

문헌의 기록에 눈사람이 처음 등장한 것이 1300년대라고 하는데 그에 반해서 눈사람의 존재를 실증해주는 증거가 남아있지 않은 점이 의심스럽다라고 써져있는 작품설명이 맘에 들었다. 이런 유머감각에 더해서, 그림 실력도 뛰어났다. 단순한 붓칠들이 모여서 이렇게 정감있고 사랑스러운 눈사람이 될 수도 있구나. 

작품은 난해한데 작품 설명이 맘에 쏙 들었다

 

러시아/동유럽의 설화를 바탕으로 그렸다는데, 한 여인이 여러 모험을 통해서 통찰력과 강한 정신력을 얻게 된다는 내용이라고 한다. 그림만 보면 내 부족한 상상력으로는 전혀 연관시킬 수 없는 내용이다. 작품 설명 읽는 것을 좋아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작품에 대해 조금 알고 나면 그 작품이 조금 다르게 보이고, 좋아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친구인 화가를 모델로 한 작품

 

친구이자 동료 화가를 모델로 그린 초상화들이 참 많았다. 아치볼드 전시회를 올 때마다 생각하는 것이지만, 누가 나를 그리고 싶어하는 마음을 갖게된다는게 얼마나 멋진 일인가? 내 인생에서 나의 초상화를 그리고 싶다고 말해주는 화가를 만난다면, 잘 산 인생이라고 말 할 수 있을 것 같다. 나의 모습에서,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서 표현해내고 싶은 것을 발견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나의 살아온 궤적에 대한 최고의 찬사이지 않을까. 

 

사물화 부분인 Sulman 상의 수상작

처음에는 캔버스의 크기에 압도당해서 그저 강렬한 그림으로만 느껴졌는데 작품 설명을 읽고 다시 그림을 보니, 숲 속에 있는 나무와 풀들의 아름다움을 오색찬란하게 표현한 작가의 의도가 이해되었다. 자연에서 아름다움과 자유함을 느끼는 작가가 초록이 만연한 숲에서 느끼는 가슴벅찬 환희를 상상할 수 있었다. 당장이라도 블루 마운틴으로 하이킹을 가고 싶게 만드는 작품. 

 

 

실수에서 시작되었다는 작품

 

실수라는 단어와 개념에 남다른 애착을 느끼는 나에게, 실수에서 시작되었다는 이 작품은 특별하게 느껴질 수 밖에 없었다. 실수를 가리기 위해서 파란색으로 덧칠을 하다보니 파란 바탕이 마치 이젤같은 화폭이 되어 그림 속의 그림으로 완성되었다고 한다. 달 빛 아래에서 배를 타면서 물 위에 반짝이는 윤슬을 바라보는 두 사람. 실수에서도 이렇게 아름다운 장면이 탄생할 수 있는 것이다.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변호하는 일을 한다는 모델

 

약자들을 위해 싸우려면 강인한 몸과 정신이 필요한 것이 당연하다. 그래서 이 초상화의 주인공은 사회정의를 구현하는 일을 하면서 울트라 마라톤을 완주할 정도로 체력단련에 힘을 쏟는다고 한다. 달리기를 좋아하는 나에게 롤 모델을 제시해주는 그림이었다. 

 

 

Daniel Kim이라는 한국계 작가의 작품

 

작품 설명을 읽다보면 Studio A라는 공간에서 작업을 하는 여러명의 아티스트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Daniel Kim이 모델로 삼은 Thom Roberts라는 분도 이번 전시회에 그림이 선정된 동료 아티스트이다. 서로를 그려준 작품이 선정되면 얼마나 기쁠까? 작가가 궁금해서 찾아보니 자폐 스펙트럼 장애가 있지만 다행히 좋은 동료들과 작업을 하고 있는 것 같다. 

 

 

호주의 유명 라디오 진행자 Jackie O

 

아는 사람이 모델인 초상화를 보는 것은 흥미롭다. 오랫동안 호주의 유명 라디오 방송의 진행을 맡고 있는 그녀를 아름답게 표현한 작품. 솔직히, 아름답게만 표현해서 좀 아쉬웠다. 화려한 그녀의 외면은 모두 다 알고 있는데, 감추어진 그녀의 내면의 다양함을 표현했으면 어땠을까? 본인은 아주 맘에 들어했을 것 같은 작품이긴 하다. 

 

 

미술관 직원들이 뽑는 인기상의 수상작

 

설명을 읽어보니 아주 괴짜인 인물인 것 같다. 얼굴 주변에 총천연색으로 된 새들이 날라다니고 있다. 

아버지가 그린 아들의 초상화

 

스탠업 코미니언으로 미국에 진출한 중국계 호주인 아들을, 화가인 아버지가 그려낸 작품. 아들 자랑을 예술로 승화시켰다. 이런 자랑은 대환영. 

 

니콜 키드만 자매의 초상화

작년에 돌아가신 어머니의 소원이 두 자매의 초상화를 제작하는 일이었다고 한다. 아쉽게도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 완성된 작품. 

 

 

킹 딩고 - 자화상

 

호주 원주민 아티스트들의 작품들이 여러 점 전시되어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과거에 수상 경력이 있는 작가의 자화상이 내 눈길을 끌었다. 바로 귀여운 야생개 딩고 때문이다. 동물이 나오는 작품은 애정이 느껴져서인지 보고 있으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사진같았던 작품

 

작년에 작품이 나란히 전시된 것을 계기로 친구가 되었다는 화가와 모델. 그들의 우정의 시작을 '전시회 이웃'이라고 표현한 것이 재밌었다. 

 

초상화전의 우승작

 

육아와 일, 그리고 작품활동을 병행하는 워킹맘의 고단한 삶을 나타내었다는 작품이 올해의 우승작이었다. 처음에는 우승작인지 모르고 바라보다가, 가운데 떠있는 사람보다도 배경에 그려진 여러가지 마네킹들의 동작이 오묘해서 한참 눈을 뗄 수 없었다. 우승작이라는 사실을 바로 납득할 수 있는 엄청난 상상력과 노력이다. 

 

고양이로 가득한 자화상이라니!

 

태국 출신의 작가인데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자화상에 키우고 있는 두마리의 고양이를 가득 채운 것이 너무 사랑스러웠다. 애묘인이라면 좋아할 수 밖에 없는 작품이다. 

 

고양이가 등장하는 작품이 또 있다

 

작가의 성이 Park이라서 한국계인 줄 알았는데 검색해보니 아니었다. 동료 화가를 모델로 세라믹 타일 위에 그린 작품. 

 

작가의 노력의 흔적이 보이는 자화상

 

자신의 진짜 실력은 바로 전 작품이라는 메세지를 담은 작품이다. 쨍한 주황색 배경에 페인트가 뭍은 검은 작업복을 입은 작가의 모습이 조화롭게 보인다. 옷에 뭍은 페인트 자국들이 예쁜 은하수처럼 빛나고 있다. 더 좋은 작품을 만드려는 작가의 노력의 흔적은 얼룩이 아닌 예술이라고 말하려는 것 같기도. 

호주 가수 Katie Noonan의 초상화

 

George라는 밴드의 보컬로 유명해진 가수이다. 아쉽게도 초상화가 그녀의 투명한 목소리를 잘 표현한 것 같지는 않지만 덕분에 오랜만에 그녀의 목소리를 다시 찾아듣게 되었다. 

 

바이올린을 켜는 화가

 

동료화가이자 같이 밴드 활동을 하고 있는 멤버를 그린 초상화이다. 아니 그림도 잘 그리는데 음악도 잘 한다고? 아쉽게도 재능은 골고루 주어지지 않고 소수에게 몰려있는 것 같다. 어떤 음악을 하는지 궁금하다. 

 

 

자화상에 고양이가 또 등장!

 

고양이도 화가도 아름다운 작품. 유화인데 모래를 섞어서 오돌토돌한 질감의 그림이다. 우아하고 고급스러운 분위기가 작가의 높은 자존감을 짐작하게 한다. 작품 설명에 보니 몇 년 전 전시회에서 우승을 했던 작가라고 한다. 그래서 자존감이 넘치는구나

나도 자신을 저렇게 아름답고 여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건 실물로 꼭 봐야하는 작품

 

초상화의 모델은 청각장애를 가진 호주 원주민 화가이다. 식탐이 많은 개라서 개 이름은 'Pig'라고 한다. 그림을 둘러싼 동그란 모형들이 다 찰흙으로 만들어진 호주 서부 지방을 나타내는 상징들이라고 한다. 낙천적인 에너지가 넘친다는 모델처럼, 보고 있으면 작가가 얼마나 즐겁게 작업했는지 느껴지는 행복한 작품. 아이들이 특히 재미있어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