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인터넷에서 FIRE란 약어를 자주 접하게 된다. 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 경제적 자립, 조기 은퇴의 영어 약자인 FIRE는 아주 매력적인 개념이다. 몇 년 전, 남동생이 알려준 블로그에서 처음 접해서 내 인생을 많이 바꾸어 놓았다. 동생은 그때부터 FIRE를 목표로 주식을 하기 시작했고 귀가 얇은 나도 금방 설득당해서 시작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아주 감사한 일이다. 서른이 넘어서 뒤늦게 경제활동을 하게 된 나는 늘 뒤처져있다는 생각에 괴로웠다. 경제적 자립을 해서 내 시간을 온전히 내가 원하는 대로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그게 과연 가능할까?
내가 여기서 FIRE를 이루었다고 말할 수 있다면 참 좋겠지만 아직은 거리가 멀다. 작년 말에 무언가에 쫓기듯 첫 집을 장만했고 매달 대출을 갚고 있는 상태이다. 대출상환 기간은 무려 30년! 물론 그전에 갚아야 하겠지만, 대출을 다 갚지 전까지는 조기 은퇴는 하기 어렵게 되었다. 하지만 혹시 또 모르잖아? 지금까지 나에게 수없는 커브볼을 던져줬던 인생이다. 그래서 가끔 로토도 사고, 코인도 사보고 (ㅠㅠ), 주식도 계속하고 있다. 또 다른 무언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계속 고민한다. 시간과 돈의 여유가 있는 삶을 꿈꾸는 것은 멈출 수가 없다.
휴가 때가 되면 이게 내가 은퇴하고 나서의 삶의 예고편이구나 싶다. 늦잠을 자도 되지만 일찍 눈이 떠진다. 상쾌한 기분에 커튼을 열고, 날씨가 좋은 날이면 산책을 한다. 요리, 청소, 목욕같이 규칙적인 일들 사이에 영화나 드라마도 본다. 다음날 일을 안 해도 되니 부담 없이 늦게까지 볼 수도 있고 일찍 잘 수도 있다 (하지만 절대 일찍 자진 않는다 ㅎㅎ) 그러다가 며칠 후부터는 늦게 일어나고 약간의 무기력감에 사로잡히게 된다. 그러다가 드라마나 영화를 계속 보면서 피로감이 쌓이기 시작한다. 휴가가 되면 하려고 했던 개인적 프로젝트들 (작곡이나 글쓰기)는 조금 깨작거리다가 말아버린다. 난 역시 재능이 없다는 걸 느끼면서 약간의 우울감을 느끼다가 어느덧 휴가가 며칠 안 남았음을 깨닫는다. 중간에 친구를 만나거나 해외에 있는 친구와 연락을 하기도 하지만 몇 명 되지 않고, 그나마 오랜만에 외출을 하면 피곤해진다. 그러다가 휴가가 하루 남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후회가 밀려와서 우울해지고 다시 일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러다가 꾸역꾸역 다시 일을 시작하면 또 며칠이 지나면 언제 휴가를 보냈던가 싶게 일하는 모드로 전환되어있다. 그리고는 그다음 휴가를 기다린다. 이게 뭐야!
이게 내가 은퇴하면 겪게 될 모습일까? 휴가의 끝이라는 압박감이 없으면 상황이 달라질 수도 있을 것 같지만, 특별한 목적이나 프로젝트를 진행하지 않는 이상, 게으름과 무기력의 늪에 빠져들 것만 같다. 하지만, 그게 무서워서 조기 은퇴를 하지 않는 것도 말이 되지 않는다. 앞으로 몇 년간은 은퇴를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동안 휴가를 보내면서 은퇴 시뮬레이션을 하며 준비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당장 생각나는 몇 가지:
- 하루 일과를 정하고 지킬 것: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아침 일찍 일어나 글을 쓰고 오후에는 운동을 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아침 일찍 기상하는 게 아주 중요한데, 늦잠을 자면 하루를 망친 것 같은 기분으로 하루를 시작하게 된다. 이왕 늦은 거 오늘은 놀지 뭐, 이런 식으로.
- 단기 프로젝트를 진행할 것: 아주 약간의 스트레스가 꼭 필요하다. 아무 스트레스도 없으면 너무 늘어지고 삶에 활력이 떨어진다. 이왕이면 부수입으로 연결되는 프로젝트가 좋겠지만, 글을 써서 출판을 한다거나, 일주일에 한 곡씩 작곡을 해서 유튜브에 올리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창작하며 사는 삶을 늘 동경해왔다.
- 프로젝트와 비슷하지만, 뭔가 목표가 있어야 한다. 체중 관리나 근육을 키우고, 운동량의 수치를 늘리는 등 숫자화 할 수 있는 목표가 꼭 필요하다. 하루 만보를 걷는다던지 10킬로를 완주한다던지, 목표를 정하고, 그 결과에 성취감을 느낄 수 있어야 제대로 사는 것 같다.
- 운동, 청소, 목욕: 인터넷 어딘가에서 접한 후, 좌우명 비슷하게 마음에 품고 있는 세 단어이다. 이 세 가지를 꼭 해야지 무기력해지지 않는다. 우울감은 수용성이라고 하던데, 땀을 흘리고, 물로 몸을 씻어내야 우울을 떨쳐버릴 수 있다는 말, 진짜다. 소소한 것 같지만 며칠 안 하면 폐인이 된다.
아무튼, 내가 지금 은퇴해도 아주 조기 은퇴는 아닌 나이가 되어버렸지만, 60세가 넘어서까지 일을 하고 싶지는 않다. 가능하면 50세가 되기 전에 꼭 은퇴를 하고 싶다. 은퇴 후의 삶에 대한 준비보다 더 중요한 게 은퇴자금의 준비인데, 순서가 바뀐 걱정을 하고 있구나. 비록 조기 은퇴를 원하는 시기에 하지 못한다고 해도, 하루하루 은퇴 후의 삶을 그려보며 최대한 비슷하게 살아가다 보면 어느덧 그 시점에 도달해있지 않을까 소망해본다.
*2021. 8. 19. 19:23 작성
네이버 블로그에서 옮겨옴. 이게 뭐라고 비공개로 해놨는지 모르겠다. 1년 넘게 시간이 지났지만 생각도 환경도 비슷하게 머물러 있다. 발전이 없는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아 서글퍼진다. 에잇! 잠깐 산책이라도 다녀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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