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를 처음 왔을 때는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록다운이 되고 나서 시간의 여유가 생기니 집 주변에 신경 쓰이는 것들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했다. 그중에 하나가 뒷마당 담장 밑에 수북이 쌓인 오래된 나뭇가지 더미였다. 아빠가 가지치기를 해주신 것도 좀 있지만 전에 살던 사람들이 쌓아 놓은 것이 대부분이었다. 뒷집과의 경계가 조금 특이한 모기장 같은 담장으로 되어있는데 아마도 서로 보이지 말라고 담장을 가려둔 것 같다. 뒷집에서 우리 집이 다 보이는 건 원치 않았기에 몇 달은 그대로 두었는데 록다운이 되니 그게 다 쓰레기로 보였다. 뭔가 순환이 되지 않는, 꽉 막혀있는 느낌이 들었다. 최근에 미니멀리즘 관련 팟캐스트를 계속 들어서 그런가? 필요 없는 것이 자리와 시선을 차지하고 있다면 버려야 하지 않나? 잘은 모르지만 풍수지리적으로도, 무의식적으로도 좋지 않아 보여서 다 치우기로 마음을 먹었다.
우리 동네는 일 년에 12번 시청에 대형 쓰레기 수거를 신청할 수 있는데 이사 오고 나서 한 번도 신청한 적이 없어서 몇 번에 걸쳐서 나뭇가지를 내놓기로 했다. 처음엔 한 번에 다 되겠지 했는데 웬걸! 택도 없어서 4번을 더 신청했다. 게다가 한 번 신청하고 나서 며칠 지나서 다시 신청하려고 보니 한 달을 더 기다려야 했다. 한 달 동안이나 저 나뭇가지 더미를 더 보아야 한다는 게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시청 홈페이지에 나온 대로 나뭇가지를 모아서 끈으로 묶고, 다 합쳐서 2m x 2m 이상은 내놓지 않도록 부피를 조절해야 했다. 가시 많은 가지도 안된다고 해서 뾰족하게 튀어나온 가지들은 자르고 다듬었다. 장갑을 끼고 본격적으로 정리를 하기 시작하면 한 시간은 후딱 지나갔다. 해가 져서 깜깜해져서 어쩔 수 없이 중간에 멈춰야 할 때면 아쉬움이 밀려왔다. 나무를 옮기고, 길이를 맞추고, 묶고 나르는 작업이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다 묶어놓은 나무 다발들을 내려다보면 뿌듯함이 밀려왔다. 문득, 이거 땔감으로 써도 되는데 아쉽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만약 조선시대나 그전에 태어났더라면 난 나무꾼을 했으면 적성에 잘 맞았겠다 싶었다. 처음에는 팟캐스트를 들으며 작업을 했는데 점차 일에 익숙해지면서, 귀에 아무것도 들리지 않아도 무념무상으로 몸을 움직일 수 있었다. 그렇게 (조금) 땀을 흘리고, 깨끗해지는 마당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졌다. 그런데 진진하게 생각해보니 나무꾼이 나뭇가지를 모으는 쉬운 작업만 하는 건 아니구나. 도끼질도 해야 하고 지게도 져야 하는 군. 나무꾼 조수 정도는 할 수도 있을 것도 같다.
이제 다음 주면 예약해둔 마지막 수거일이 돌아온다. 몇 주에 걸쳐 거의 다 정리해서 이제는 잔가지들만 내놓으면 되는 게 아쉽다. 마당을 샅샅이 뒤져서 최대한 큰 나무더미를 꾸려봐야겠다. 뒷집과의 담장 앞이 휑해져서 모기장 사이로 뒷집이 다 보이는 게 살짝 신경 쓰이긴 하지만, 속은 시원해지고 시야도 즐거워졌다. 그 공간에 죽은 가지들을 방치하는 것보다는 다른 식물을 심어서 새 생명을 키워보고 싶다. 그 생명들이 키가 클 때까지 뒷집 사람들과 민망하게 시선이 마주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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