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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념들

잔잔한 일상속의 천국과 지옥

주말에 문득 내가 자주 입는 검정 카디건이 안 보여서 온 집안을 뒤졌는데 나오질 않았다. 아마 직장에 놓고 왔겠거니 하고 월요일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책상 주변을 찾아보고, 짐작되는 곳을 가보았지만 아무 데도 없었다. 그러다 문득, 금요일에 자전거를 타고 집에 와보니 가방이 열려있었던 것이 기억났다. 지퍼가 고장 나서 고쳤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열렸던 것이었다. 그때는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고 다시 가방을 닫았는데, 아마도 신나게 자전거를 타고 집에 가는라 가방에서 카디건이 흘러나오는지도 몰랐나 보다. 거의 사흘동안 옷이 길거리에 떨어져 있을 리가 없다. 누군가가 벌써 쓰레기통에 넣었겠지. 무난한 검은색이고 얇아서 여름에 입기 참 좋았는데, 물론 비슷한 걸 다시 사면되지만, 멀쩡한 카디건이 누군가에게는 쓰레기로밖에 보이지 않았을 것을 생각하니 아깝고 속상했다. 에잇, 잊어버리자. 가방 속에 있던 더 아까운 물건을 흘리지 않은 게 얼마나 다행인가? (거의 희박한 확률이지만) 누군가가 혹시 주어서 잘 입을 수도 있잖아? 돈으로 해결할 수 있고, 내 건강과 관련이 없는 실수나 사고는 아무것도 아닌 것 잘 알잖아? 나이가 들수록 이런 여유가 생기는 건 참 좋은 일이다. 하지만 머리로는 이렇게 결론을 지어놓고도, 난 왜 이리 칠칠맞은가로 시작된 우울감이 아침부터 오후까지 계속되었다. 평소 자전거로 타고 돌아오는 퇴근길에서는 없을 줄 알면서도 혹시나 검은색인 무언가가 어딘가에 떨어져 있지 않은지 살펴보게 되었다. 에잇, 에잇. 이 카디건이 없었을 때도 난 잘만 살았잖아? 이거 말고 좀 더 두껍지만 회색 카디건이 있어. 그걸 입으면 되겠네. 집에 돌아와서 회색 카디건을 찾을 겸 옷장을 정리하는데, 구석에 뒤집어져 있던 다른 옷 속에서 바로 그 검정 카디건을 발견했다. 아!! 그제야 알았다. 난 지옥에 있었구나. 왜냐하면 그 카디건을 다시 두 손에 들게 되자 마치 천국에 온 것 같은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이게 뭐라고, 이 천조각이 나에게 뭐 그리 소중하다고 이렇게 기쁜 걸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하루였는데, 지옥에서 천국으로 먼 길을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