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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념들

인생이 재미없을 때 - 기쁨의 유효기간에 관하여

요새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힘든 일을 겪고 있다. 처음으로 느껴보는 직장에서의 인간관계 문제가 내 행복을 좀먹고 있다. 지금까지 당한 것도 억울한데 내 일상까지 방해받기는 싫어서, 아무에게도 이 걱정을 털어놓지 않고 그냥 이 시기가 지나가기를, 빨리 내년이 되기만을 바라고 있다. 뭘 하면 기분이 나아질 수 있을까? 자전거로 퇴근을 하다가 횡단보도에서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며 생각에 잠겼다. 자전거로 출퇴근을 하면서 시원한 바람을 느끼는 순간은 순도가 높은 기쁨이지만, 무척 빨리 지나간다. 아주 잠시, 오감을 집중하면 느낄 수 있지만 금방 사라진다. 집에 도착해서 자전거에서 내려 현관으로 걸어 들어가며 집을 둘러보았다. 벌써 이 집으로 이사 온 지 4년이 다 되어가다니 믿을 수가 없다. 이사를 온 첫날부터,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장만한 이 집에 강한 애착을 느끼고 있다. 낡고 오래된 집이고, 인테리어도 구식이지만, 오롯이 나만의 집이다. 집을 둘러보기만 해도 뱃속 깊은 곳에서부터 행복이 잔잔하게 차오른다. 어렸을 때는 직업적으로 성공하고 큰돈을 벌어야지 행복해지는 줄 알았는데, 경제적으로 홀로서기를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주는 행복이 생각보다 커서 놀라고 있다. 일을 해서 번 돈으로 주택 대출을 갚아갈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나 자신이 대견하고, 이 정도로도 충분히 만족한다. 함께 사는 고양이 두 마리가 집에서 뛰어놀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도 큰 행복이다. 고양이들이 안심하고 추위와 더위를 피할 수 있고, 밥을 먹으러 밤마다 돌아올 수 있는 장소를 내어줄 수 있다는 사실이 뿌듯하다. 일상이 힘들고 마음이 고단한 지금은, 기분 전환을 위해서 어디 멀리 여행을 가고 싶지도 않고, 근사한 곳에서 맛있는 요리를 먹고 싶은 마음도 없다. 만나고 싶은 사람도 없고, 딱히 사고싶은 물건도 없다. 멋진 옷을 사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는다. 나한테 어울리지 않아서도 그렇고, 물건이 주는 기쁨이 오래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의 나를 버티도록 지탱해 주는 행복의 이유들은 그런 단발적인 것들이 아니다. 직장이 있다는 사실, 내 집이 있다는 사실, 내 돌봄이 필요한 고양이들, 라디오에서 우연히 들은 멋진 음악, 시원한 바람, 마음을 울리는 책의 어느 글귀, 달리기를 마치고 샤워를 할 때 느끼는 따뜻한 물의 기분 좋은 느낌같이 지극히 일상적인 것들이다. 내가 오랫동안 쌓아 올린 노력의 산물들이 일상이 되고, 그 일상 속에서 수없이 마주치는 의도치 않은 작은 기쁨들이 오랫동안 휘발되지 않고 나를 지탱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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