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두 마리와 살고 있어서 그런지 일상 속에서 마주치는 동물들에게도 친근감을 느끼는 편이다. 요 며칠 나와 찰나의 인연이 닿았던 동물 친구들을 소개하고 싶다.
길을 가는데 목줄도 반려인도 없이 혼자 서있는 작은 개를 보았다. 길을 잃어버렸나 싶어서 얼른 사진부터 찍었다. 나중에 개를 찾는다는 전단지라도 보게 되면 같은 개인지 확인하고 싶어서였다. 나의 착각일 수 도 있지만 약간 당황한 듯한 자세로 엉거주춤하게 잔디밭에 있었는데 내가 다가가자 날 경계하고는 조금 걸어서 바로 옆 집으로 들어가 버렸다. 길을 잃은 게 아니라서 정말 다행이었다.
지난주, 어떤 남학생이 공책에 그림을 그려놓은 것을 보고 너무 귀여워서 칭찬을 해주었다. 고양이 그림이었는데 생각해서 그렸나고 물어보니 그건 아니고 따라 그렸다고 했다. 따라 그리는 것도 쉽지 않기도 하고, 공부보다는 축구를 더 좋아하는 동적인 아이라고 생각했는데 차분히 귀여운 그림을 그리는 취미도 있다는 게 뜻밖이어서 조금 호들갑을 떨며 나중에 내게 고양이 그림을 그려달라고 부탁을 했었다.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 그 학생이 말없이 종이 한 장을 내밀었는데, 바로 윗 사진의 이 귀여운 동물 친구들이었다. 내 말을 기억해 주고 주말 동안 그려주다니, 너무 고마워서 교실 탁자 바로 옆에 붙여 놓았다. 오랫동안 볼 때마다 마음이 따뜻해질 것 같다. 너무 귀여워!
퇴근하고 집에 가는 길에 어느 교실 앞에 뭔가 길쭉한 것이 떨어져 있었다. 뭐지? 넥타이인가?
본가에 벌써 몇 대째 살고 있는 블루텅 도마뱀 가족이 있어서 친근감을 느끼고 가까이 다가가서 사진을 찍었다. 본가에 있던 도마뱀은 내가 만져도 가만히 있고, 블루텅은 이빨이 날카롭지 않고 사람을 물지 않기 때문에 전혀 무섭지 않았다. 근데! 이 사진을 찍고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려는데 도마뱀이 갑자기 입을 벌리고 푸르뎅뎅한 혓바닥을 내밀며 나에게 돌진했다! 아니 얘가 왜 이래? 머리로는 이 도마뱀에게 물리거나 공격을 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갑자기 혓바닥을 내밀고 빠르게 다가오니 깜짝 놀라서 뒤로 한걸음 물러났다. 도마뱀은 나를 몇 초간 뚫어져라 쳐다보고는 교실 밑으로 사라졌다. 정말 짧은 순간이었는데 허를 찌르는 위협이었다. 문득, 파란 혓바닥이 천적을 위협하기 위해서 이용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덩치가 몇 배나 더 큰 나도 순간 움찔했는데 다른 동물들도 색맹이 아니라면 갑작스러운 강렬한 색의 등장에 도망갈 것 같다. 도마뱀이 사라지고 나서 한 동안 멍하게 그 자리에 서있었다. 덩치 큰 내가 너의 휴식을 방해해서 너도 놀라고 무서웠겠구나. 난, 너의 그런 마음도 헤아리지 못하고 사진을 찍으며 너에게 다가갔고, 너는 당연히 화가 났겠지. 정말 미안하다. 나의 배려심의 부족함을 이렇게 또 깨닫게 된다.
저녁때 잠깐 달리기를 하려고 집을 나서는데 집 앞에 까만 고양이가 앉아있다. 우리 달빛이가 아닌 옆 집 고양이 루시이다. 오늘은 최고기온이 34도로 꽤 더운 날이어서 아스팔트가 따뜻하게 달궈진 모양이었다. 루시는 내가 옆을 지나가도 물끄러미 쳐다보기만 하고 움직이질 않는다. 'Hi, Lucy.' 내가 인사를 하자, 루시가 야옹하고 대답을 하지만, 뭔가 불안하다. 루시는 나를 싫어하는데 웬일로 대답을 하지? 이 루시라는 고양이는 옆 집 Carmen을 정말 좋아해서 졸졸 따라다니는 개냥이인데, Carmen과 내가 같이 있으면 나에게 온갖 친한 척은 다하다가 나랑 둘만 있을 때는 나에게 '히익'하고 뱀 소리를 내며 짜증을 낸다. 한두 번은 앞 발에 맞은 적도 있는 것도 같다. 이 두 얼굴의 고양이는 우리 햇살이랑 달빛이와도 사이가 좋지 않은데, 가끔 뒷문이 열려있을 때 부엌에 들어와서 우리 고양이 밥을 훔쳐 먹기도 한다. 고양이가 하는 짓이라 옆 집에 말을 해봐도 소용이 없어서 그냥 대면대면 지내는 중이다. 우리 고양이들이랑 사이만 좋아도 덜 얄미울 텐데, 루시랑 마주친 햇살이와 달빛이가 꼼짝도 못 하고 그 자리에 얼어붙은 장면을 몇 번 목격한 걸로 보아, 루시가 더 힘이 센 모양이다.
이렇게 글을 쓰고 보니 내 일상에 동물들이 차지하는 지분이 꽤 크구나. 가끔은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힘들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럴 때 말없이 곁을 내어주는 나의 고양이들이 큰 위로가 되어주고, 잠깐이나마 나를 미소 짓게 해주는 동물 친구들이 있어서 참 다행이다. 작은 위로들이 모여서 일상의 바퀴가 힘겹게 굴러갈 때 힘을 보태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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