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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념들

목소리를 잃은 하루

일 년에 한 번씩은 목감기가 걸려서 목이 쉬곤 하는데 올해 두 번째로 목이 쉬고 말았다. 목감기에 걸린 것같이 목 안이 따끔해서 서둘러 소금물로 가글링을 했지만 그다음 날 하루 종일 목이 아팠다. 아, 목감기인가 보다 했는데, 놀랍게도 목의 통증은 그다음 날 싹 사라지고, 그 대신 목소리만 쉬고 말았다. 교사로 일하면서 큰 목소리를 많이 내고 매일 말을 많이 하지만, 많은 교사들은 나처럼 매년 목이 쉬지는 않는 것으로 보아, 내 발성법이 잘못되었거나, 목이 특별히 약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요 며칠 교실에서 에어컨을 틀어서 그런가? 아무튼 학교에 가서 학생들에게 손짓으로 인사를 하면서 목을 가리키면서, 목소리가 안 나온다고 입모양으로 말을 했다. 그랬더니 어떤 학생들은 내 목소리에 맞춰서 작게 말을 하고, 내가 속삭이면 큰 목소리로 내 말을 반복해서 반 전체가 들을 수 있도록 해주기도 했다. 아이들의 귀여운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은 좋았지만, 평소처럼 수업을 할 수 없어서, 수업 계획을 바꿔야 했다. 오늘 하루 종일 목소리를 잃은 채 보내면서 느낀 몇 가지:

 

- 몇 동료 및 상사들은 내가 쉰 목소리로 말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왜 그런지 전혀 물어보지 않았다. 계속 자신이 하고 싶은 말만 계속하고, 자신과 관련된 일에 대한 질문만 했다. 저 사람은 나에게 개인적 관심이 없다는 걸 알게 되는 게 그리 유쾌하지는 않았다. 나는 상대방이 불편한 상황임에도 전혀 배려를 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다. 반면교사로 삼아야겠다. 그래요, 많이 삐쳤습니다.

- 목을 아끼느라 말을 하지 않으니 사람들과의 대화에 참여할 수 없었다. 내 성격이나 존재감이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나의 색을 나타내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말을 하지 않으니, 내 존재는 마치 투명한 바람같이 무색무취하게 된 것 같다. 평생 말을 할 수 없는 사람들이나, 말 수가 극도로 적은 사람들 모 역시 존재감이 크지 않지만, 그 안에는 그들만의 개성과 고유의 색깔이 감추어져 있겠구나. 조용하다고 해서,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 내가 조용하게 이야기하니까 대부분의 학생들도 조용히 반응한다. 내가 평소에 큰 목소리로 감정적으로 대처할 때 학생들이 그것에 맞춰서 큰 반응을 보였던 몇 장면들이 생각났다. 내 감정을 잘 조절해서 표출해야겠다는 반성을 했다.

- 내가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따뜻한 말을 건네며 걱정해 주는 소수의 동료들이 너무 고맙다. 소중한 사람들에게 앞으로 더 잘하자.

- 앞으로 몇 년을 더 교사생활을 하게 될지 모르겠지만, 이제부터는 내 목과 목소리를 소중히 관리해야겠다는 결심을 해본다. 목소리는 나의 소중한 재산이었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어떻게 해야 하지? 매일 소금물로 가글링 하는 것으로 시작해 볼까? 실내에서 에어컨을 켤 때는 꼭 목에 스카프를 두르고 있어야겠다.

- 갑자기 목소리와 다리를 바꾼 인어공주가 떠오른다. 사랑을 위해 목소리를 버리다니, 난 못할 것 같다.

-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서 혼자 보낸 시간이 평소보다 길었다. 조용히 시간을 보내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 말로 인사할 수 없어서 더 과장되게 큰 미소를 지어 보이려고 노력했다. 내 미소에 나의 호의가 전달되었을까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