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년에 각각 7살과 5살의 조카들에게 생일 선물을 받았다. 동생이 고모 생일이라고 알려줘서 반강제적으로 생산(?)해낸 작품들이지만 그래도 자꾸 들여다보게 된다. 내가 누군가에게 어떻게 생각되는지 알게 되는 일이 생각보다 자주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작은 의미라도 찾아보기 위해 여러 가지 분석을 해본다. 거기다가 난 누군가의 뮤즈가 되고 싶다는 소망을 꽤 오랫동안 품고 살아왔는데, 조카들 덕분에 그 소망이 이루어졌다. 조카들의 짧은 어린 시절 동안, 앞으로 몇 번의 작품 속에 더 등장할 기회가 있으려나?
우선 당시 7살이었던 큰 조카가 그려준 나의 모습이 참 의외이다. 나는 저런 올림머리를 한 적이 없고, 핑크 스커트에 핑크 하이힐을 신은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내 눈은 저렇게 크지도 않고 오히려 작은 편이다. 저건 도대체 누구인 걸까? 자기가 그리고 싶은 대로 그리고는 '고모'라고 적으면 된다고 생각했을 조카의 장난스러운 성격이 귀엽다. 그 옆에 오렌지 원피스를 입은 건 조카 본인인 것 같은데, 역시나 본인의 평소 모습과 전혀 다르다. 아빠와 동생을 대충 그리고 색칠을 하지 않은 건 시간이 없어서였을까? 아니면 귀찮아서? 나와 자신, 그리고 케이크에게는 색칠을 해줬다는 사실만으로 감지덕지이다. 실제로 하지 않은 생일 파티를 상상으로 그려준 것도 고맙고, 생일 케이크의 큰 사이즈가 특히 만족스럽다.


다섯 살 둘째 조카의 카드는 전혀 다른 양상이다. 생일잔치를 하는 모습이 아닌 들판에서 나와 자신, 그리고 내 고양이들이 함께 있는 모습을 그렸다. 이 그림 속의 내 모습은 내 실제 모습과 많이 닮았고 자기 자신도 꽤 비슷하게 그린 것 같다. 푸른 하늘, 구름, 그리고 새 떼들이 날아다니는 모습, 다 마음에 쏙 들긴 하는데, 생일이나 우리의 어떤 추억과도 전혀 상관이 없다. 다행히도 우리 둘은 웃고 있다. 내 고양이들은 집에 손님이 오면 어디론가 도망을 가버려서 조카들은 고양이들을 한 번도 가까이서 본 적이 없음에도 고양이들을 그려줬다는 사실에 고마움을 느낀다. 그림 뒷면에 써준 카드 내용도 별 내용은 아니지만 크고 힘찬 글씨체가 마음에 든다. 여백을 채우려고 같은 내용을 두 번 쓴 정성도 기특하다.
조카들의 눈에 비쳐진 내 모습을 보려다 보니 오히려 두 아이들의 다른 성향을 알게 되었다. 누군가의 가족, 친척이라는 건, 오랜 시간 동안 그 삶의 과정을 지켜볼 수 있는 특권을 갖는 것이다. 이 아이들이 어떻게 자라날지, 어떤 성향을 가진 어른이 될지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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