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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사

[일드] 심은경 주연 군청 영역 群青領域 1편 스포 & 잡담

일 년 정도 일드를 보지 않은 것 같다. 10년 전 일본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후에도 어렵게 배운 일본어를 잊지 않으려고 거의 매일 일드나 애니를 접했는데 점점 재미가 없어졌다. 그러다가 작년 말부터 바쁜 시기를 보내면서 일드의 존재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 애니는 계속 봤기 때문에 일본어는 간신히 유지중 그러던 나를 일드로 돌아오게 해 준 건 심은경이 주연한 '군청 영역'이라는 드라마이다.

 

출처

NHK 일본 국영방송국 심은경 주연 드라마 군청 영역

일단 포스터만 봐서는 내용을 짐작하기 힘들다. 수사물 혹은 범죄물인 줄 알았는데, 예고편을 보니 밴드의 키보디스트 역할이라서 깜짝 놀랐다. 포스터를 자세히 보니 처절한 외로움과 우울이 느껴지는 표정이다. 예술가의 고독에 대한 내용이려나? 궁금증을 자아내는 제목과 포스터에 이끌려 보기 시작했다.

 

1편의 줄거리는 대강 이렇다. (스포有)

'Indigo Area' (직역하면 군청 영역)이라는 인기 밴드의 키보드를 맡고 있는 주니(준희?)는 보컬인 하루키와 연인관계이기도 하다. 밴드는 메이저 데뷔를 하고 3년 만에 아레나 콘서트를 성공시키고, 미국의 대규모 뮤직 페스티벌에 초청을 받을 정도로 엄청난 인기. 잡지 인터뷰 중 주니는 자신은 하루키를 위해 연주한다며 깊은 신뢰집착을 드러낸다. 하지만 사실 얼마 전부터 하루키의 태도가 이상해졌고, 불성실한 태도와 연락두절에 밴드 멤버들과 매니저 모두 곤란해하던 상태. 미국 진출 기념 생방송에서 하루키는 돌연 은퇴를 선언한다. 아무것도 모르던 주니는 하루키에게 연인관계는 끝나도 음악적으로는 아니지 않냐고 붙잡는다. 하루키는 자신을 위해서 연주한다는 위선적인 말 따위는 하지 말라며 결국 자신을 위해서 음악에 빠져 연주한 게 아니냐고 오히려 자신을 이용한 것 아니냐며 되받아 치고 (이것이바로가스 라이팅) 자리를 떠난다. 충격에 연락을 끊고 집에서 괴로워하던 주니는 모든 텔레비전 채널에서 자신들의 이별에 대한 방송이 나오는 것을 보고 바닷가로 도망친다. 하지만 SNS로 그녀가 바닷가에 가는 모든 과정이 인터넷에 올라오고, 결국 주니는 사람들을 피해 절벽으로 도망가게 된다.(그런데 거기에 한 남자가 낚시를 하고 있고 꽤 오래 클로즈 업 된 걸 보니 앞으로 주니와 엮일 인물인 듯) 그리 높지않은 절벽에서 바닷물을 바라보던 주니가 자살을 하려는 줄 알고, 낚시남이 그녀를 멈추려고 뛰어오고, 그걸 보고 당황한 주니는 의도치 않게 바다에 빠지고 만다.

 

드라마를 보면서 들었던 잡생각들

- 신은경을 기용한 NHK, 이 드라마를 선택한 심은경의 심경을 생각해보았다. 심은경은 젊은 배우로서 다양한 역할에 도전할 수 있고 외국에서 활용영역을 넓힐 수 있기에 선택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거기다 심은경을 위해 만들어진 배역같이. 섬세한 감정연기를 요구하고, 한국인이면서, 일본어를 구사하는 역할이 심은경에게 꼭 맞는다. NHK로서도 외국인 배우를 주연으로 내세우면서 화제성을 높일 수 있고, 연기력을 인정받은 심은경이기에 불안요소가 적었으리라.

 

- 하지만, 스타와 사귀던 주인공이 스캔들에 휘말려 뉴스의 중심이 된다는 무슨 웹소설의 도입부 같은 이 전개는 무엇이란 말인가. 거기다 청춘의 고뇌와 방황을 다루는 드라마치고 너무 톤을 무겁게 잡았다. 손발이 오그라드는 대사는 또 어떡하냐고. 그의 목소리를 위해 내 피아노가 존재한다느니, 위선자 같은 말을 하지 말라느니, 90년대 순정만화를 읽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유리가면'이라는 만화가 생각나기도 했다. '피구왕 통키'가 생각나기도 했을 정도다. 사소한 것에 지나치게 심각하게 열변을 토하고 고뇌하는 일본 특유의 심각함이 드라마 전체를 관통해서 몰입에 방해가 된다.

 

-딱 한 번 K-Pop이 언급된다. 영어권 나라의 음악 차트에 집입 할 수 있는 건 K-pop밖에 없다며 대단하지 않냐고 하고, 그래서 주니가 한국에서 훈련을 받아서 실력이 뛰어난 것 같다고 누군가 칭찬(?)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하지만 드라마 설정상 주니는 일본에서 대학을 나오고 대학에서 친구들과 밴드를 시작한 순수한(?) 일본 출신. 세계 진출에 대한 일본의 갈망이 엿보이는 설정이 또 하나 있는데 주니의 남자 친구인 하루키는 세계에서 통하는 음악을 하고 싶다며, 할리우드 영화에 출연한 여배우와 바람을 피우고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 심은경이 멋진 뮤지션으로 나오는 건 좋은데, 여성성이 거의 부각되지 않은 외모라 좀 의아했다. 의도적인 연출? 중성적인 쇼트커트에 옷도 무채색만 입고, 밴드 뮤지션이라고 해도 록스타라고 해도 여성성을 하나도 남기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나? 그래도 피부는 엄청 좋음.

 

- 심은경이 심하게 일본어를 잘한다! 아주 간혹 단어와 단어 사이의 호흡이 살짝 긴 것 빼고는 엄청 자연스러워서 놀랐다. 노력도 했겠지만 언어의 재능이 상당한 듯. 언어의 재능도 연기력의 일환이라고 보는데, 그런 면에서 심은경은 대배우가 맞는 듯.

 

- 인상 깊은 대사 하나. 기억이 가물거려서 대충 써보자면 '모두 어느 누구에게도 닿지 않고 싶어 하는 없는 부분/영역이 있는데 (그래서 군청 영역?) 그 심연의 어두움에도 빛은 들어온다'는 내용. 인생의 바닥을 경험하는 주니가 바닥을 치고 위로 올라가는 치유의 과정을 보여줄 듯.

 

-주니의 엄마가 한국(혹은 일본의 지방?)에서 전화를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엄마의 한국어, 말투, 의상, 집 안의 인테리어가 너무 비 한국적이라 아쉬웠다. 재일교포도 아니고 중국 혹은 북한을 연상시킬 정도로 위화감이 느껴짐.

 

- 극한의 외로움과 좌절을 표현하기에는 타국에서 고군분투하는 외국인 배우가 적합할지도 모르겠다. 거기다 심은경 정도의 연기력을 갖추면 더할 나위 없겠지. 심은경의 우울한 연기가 너무 좋다. 그런 연기를 이 드라마가 아깝지 않게 담아낼 수 있을까? 아직은 모르겠다.

 

- 밴드가 음악을 연주하는 장면은 나쁘지 않았다. 심은경을 포함 밴드 멤버 역을 맡은 배우들이 직접 연주하는 라이브 공연하는 장면의 연출도 좋았고 곡 자체도 기억에 남는다. 아쉬운 게 있다면 요즘은 대세가 아닌 스타일의 전통적인 록 스타일이라서, '이런 곳이 세계에 통할 리가 없잖아'라는 생각이 들어버린다. 설정이 어설프면 드라마에 몰입하지 못하는 체질이 원망스럽다.

 

- 제목에 군청이 들어가서 그런가, 주니의 집 인테리어가 검정에 가까운 군청색이고, 의상도 자세히 보면 검정이 아닌 군청, 그리고 군청과 잘 어울리는 흰색 위주다. 아니, 제목에 이렇게 충실하게 깔맞춤을 할 필요가 있나? 군청, 혹은 인디고가, 예술적이고 정신적으로 특별함을 상징하는 색이라고 알고는 있지만, 좀 더 세련되게 군청이라는 색을 배치할 수 없었을까?

 

- 예고편을 보니, 바다에 빠진 주니는 낚시남에 의해 구조되고 할머니와 사는 그의 집에 머물게 되는 것 같다. 아마도 기억상실? 제발 아니길. 그 사이 밴드 멤버들과 매니저가 주니와 연락이 안 돼서 걱정하는 장면도 살짝 보인다. 항상 틀리는 예상을 해보자면, 기억을 상실한 주니는 낚시남과 함께하는 평범한 일상을 보내며 행복을 느끼면서도 음악에 대한 갈망을 잊지 못하고 기억을 찾아내고, 다시 밴드와 합류해서 하루키 없이도 더 뛰어난 음악을 만들게 된다는 전개가 아닐까? 거기다가 그 낚시남을 보컬로? 진짜 이렇게 되는 건 아니겠지 ㅋㅋ 맞다면 셀프 성지 순례해야지. 로또 되게 해 주세요.

 

드라마를 1편만 보고 관두는 병에 걸려 있는 요즘이다. 과연 이 드라마의 2편을 보게 될 것인가? 아직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