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SW 갤러리에서 열린 마티스 전시회가 3월에 끝이 난다고 해서 서둘러서 다녀온 것이 벌써 지난 주. 더 시간이 지나기 전에 느꼈던 감동을 정리해보려고 한다.
전시회는 줄을 서서 티켓을 사서 들어가야 할 정도로 인기였다. 전시회장 내부도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라는 방송이 나왔을 때는 모든 사람들이 실소를 터트렸다.
많은 사람들의 틈을 비집고 맘에 드는 그림 앞에 머물며 작품에서 품어져 나오는 에너지(?)를 흡수하려고 노력했다. 암스테르담의 고흐 박물관과 루브르에서 몇 시간씩 그림을 보면서 허기나 피로를 느끼지 못했던 경험을 한 후로는 좋은 작품에서는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고 믿게 되었다. 그 에너지를 감동, 경의, 혹은 환희라고 불러도 될 것 같다. 미술에 대해 잘 모르지만, 화가가 그림을 그리는 순간을 상상하고, 그의 시선과 재능이 합쳐져서 캔버스에 펼쳐지는 새로운 세상을 엿볼 수 있다는 건 정말 특별한 즐거움이다.
Slowly I discovered the secret of my art.
It consisted of a mediation on nature, on the expression of a dream
which is always inspired by reality.
나는 서서히 나의 예술의 비밀을 발견했다. 그것은 자연에 대한 명상, 그리고
현실에 기반한 꿈의 표현이었다.
<앙리 마티스>
법대를 졸업하고 뒤늦게 미술에 뛰어든 마티스는, 자신의 혼외자식까지 걷어준 부인 아밀리의 헌신적인 내조로, 남부 프랑스에 여행을 다니면서 창작활동에 몰두한다. 그런 조강지처를 두고 젊은 조수에게 빠져서 노년에 이혼을 당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그의 예술성과 별개로 인간으로서 얄밉게 느껴졌다.
야수파라는 명성을 얻을 정도로 파격적인 스타일로 비판과 관심을 얻었지만 미술로 생계를 유지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마티스는 창가와 창문 밖의 풍경을 즐겨 그렸다고 한다. 이 어항이 있는 작품은 푸른 빛이 특히 인상적인데, 어항 속의 물 색과 창 밖의 호수를 같은 색으로 연결해서 공간의 연장성을 의도했다고 한다. (오디오 가이드에서 들은 듯) 우울하면서도 약간의 희망이 느껴지는 절제된 색의 조합이 마음을 차분하게 한다.
마티스에게 미술은 멈출 수 없는 본능이었다. 노년에 병마와 싸우며 약해진 관절때문에 더이상 붓을 들지 못하게 된 후에도, 가위로 종이를 자르며 계속 새로운 것을 만들었다. 그의 후기 작품을 보면서 노후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노년에 어떤 열정을 가지고 살아가야 할까? 마티스처럼 열정을 가지고 살 수 있을까? 살고 싶다.
마티스는 동물을 좋아해서 개, 비둘기, 고양이 등 많은 반려 동물과 생활했다고 한다. 고양이가 보여서 무작정 사진만 찍고 자세히 보지 않은 그림인데 이제보니 흑백의 액자와 색조가 있는 액자가 나란히 걸려있는 구조가 흥미롭다. 지금은 평범(?)해보이지만 당시에는 엄청 획기적인 색감과 구도였을 듯.
좋게 말하면 미니멀하지만, 솔직히 마티스 작품이 아니면 전시회에 걸릴 일이 없을 작품 ㅋㅋ 아마도 습작이 아니었을까?
마티스의 노년의 열정을 쏟아부은 로자리 채플의 내부 장식이다. 가위로 자른 색종이 모양이 미역같이 보이긴 했지만 아무나 해낼 수 없는 색의 조합인 것은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유치함이 아닌 어린아이의 순수함이 느껴지는 색감을 종교시설의 내부에 들여올 생각을 하다니, 그래서 마티스가 거장인 것일까?
예술과 종교가 맞닿아 있는 곳을 좋아한다. 사그라다 패밀리아 성당도 그렇고, 가보지 못한 로자리 채플도 그렇다. 그저 몇 시간씩 가만히 앉아있고 싶다. 햇볕이 좋은 날 방문해 보고 싶다.
노년의 마티스가 가위질과 색종이로 완성한 이 작품이 좋다. 파란 색종이와 가위로 누드를 표현하겠다는 생각은 느껴진다.
백인이 재즈를 한다는 것은 흑인들의 고통을 간접 경험한다는 의미일까? 해석의 여지가 많은 작품이 명작이라던데, 이 작은 색종이의 조합 속에 여러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
제목을 보지 못하고 그림 앞에 섰는데 그냥 압도당했다. 찬찬히 뜯어보니 음악이 모티프인 것을 알아챘다. 제목은 '왕의 슬픔/ The sorrow of the king'. 마음이 괴로운 사울 왕을 하프로 위로하는 다윗의 이야기를 표현한 것이라고. 이 그림을 보고 나자, 아까 지나쳤던 마티스의 말이 떠올라서, 다시 그 인용구를 찾아서 사진을 찍었다.
아까 내가 느꼈던 그 압도감을 잘 표현한 말이었다. 뭔지 모르고 보기만 해도, 그 작품이 가지고 있는 본질이 내뿜는 존재감, 아름다움, 그리고 예술 속의 진리 혹은 인간이 추구하는 높은 가치의 그 무엇이 느껴지는 작품이 명작인 것이다. 하아, 말로 표현하기 참 어렵네. 마티스는 어떤 작품을 보고 이런 말을 한 것일까 궁금해진다.
자세히 보면 왼쪽에는 하늘을 나는 동물들, 오른쪽에는 바닷속 동물들이 있다. '하늘과 바다'라는 작품. 미역이 참 조화롭게 배치되어 있다. 아, 미역이라는 선입견을 끝내 버리지 못했다 ㅋㅋ
한 작품을 완성하기 전, 준비 작업으로 수많은 스케치를 했던 마티스. 완성된 작품만 보면, 화가가 그 작품 하나만 한 캔버스를 이용해서 완성시켰을 것이라는 착각을 하게 된다. 천재들도 엄청난 노력을 하는데, 평범한 나는 얼마나 노력해야 의미 있는 창조물 하나를 세상에 내보낼 수 있으려나?
많은 사람들 사이을 헤집고 다니며 쉽지 않게 관람한 전시회였지만, 막상 전시회장을 빠져나오려니 아쉽게 느껴졌다. 다시 입구 쪽으로 돌아가서 미쳐 제대로 보지 못한 작품이 있나 살피다가 발견한 작품의 사진을 찍었다. 테이블 위의 원근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어찌 보면 그림을 모르는 아마추어가 그린 그림 같은 작품이다. 하지만 마티스는 일부러 미술의 규칙을 파괴하고 새로운 시도를 한 것이라고 한다. 이 작품 하나만을 보면 그리 특별하지 않을 수 있지만, 이런 시도들이 징검다리가 되어서 다른 작품들에 이어지고, 마티스의 예술 세계라는 하나의 우주를 구성하게 된다. 꼭 모든 작품이 다 명작일 필요도 없다. 계속 그리다 보면, 계속 시도하다 보면 특별하고 뛰어난 작품이 탄생하기도 하는 것이다. 혹시 그렇지 않더라도 그 시도에 의미가 있다. 그 시도의 연속이 인생이고, 그런 시도를 하는 인생 자체가 예술이 아닐까? 너무 의미부여를 했나? 오랜만에 좋은 전시회에서 풍성한 에너지를 얻어서 그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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