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감상

더 글로리 - 그 특이한 헤어 스타일 배우 - 후기/파트2 예상 (스포)

잔인한 학교 폭력 장면이 나온다는 소리를 들고 아예 보지 않을 작정이었던 '더 글로리'. 하지만 가는 인터넷 커뮤니티마다 관련 글이 쏟아지고 대부분 재밌다는 후기여서 할 수 없이 보기 시작했다. 왜 할 수 없었냐고? 이 작품을 보지 않으면 나중에 두고두고 회자될 때 문맥을 이해하지 못할 것 같기 때문이었다. 그만큼 대작이 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대중문화를 즐기는 것도 인생의 큰 즐거움인 나로서는 굵직굵직한 대작들을 다 시청해야만 나중에 그 작품의 영향을 받은 다른 작품들을 알아보고 더 즐길 수가 있다. 아무튼, 1편에 나오는 끔찍했던 장면들을 간신히 보고 나니, 주인공의 복수심의 깊이가 이해가 되었고,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앉은자리에서 8화를 다 마쳤다. 그게 지난주 초였는데 그 여운이 아직까지 남아 있다.

 

이미지 출처

최고로 쫄깃했던 장면

다들 비슷하겠지만 내가 드라마나 영화를 즐기는 방법은 여러 가지이다. 우선 작품을 시청하는 것, 그리고 보는 중간중간 인터넷 반응과 여러 해석을 보며 나의 이해도를 높인다. 그리고 다 본 후에는 여러 커뮤니티, 블로그, 나무위키, 유튜브 등을 검색해서 내가 놓쳤던 부분을 채워 넣는 것이다. 작품이 재밌을수록 보고 나서 검색하는 재미가 크다. 이 방법들로 '더 글로리'를 만끽하고 나서, 벌써 까먹은 내용도 많이 있지만, 내 안에 남아있는 재미의 조각들을 풀어본다.

 

- 극본의 힘: 인터넷에서는 드라마의 성공의 이유를 배우들의 연기력 때문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나는 무조건 극본이라고 본다. 뛰어난 극본에 긴장을 늦추지 않는 연출이 더해져서 8시간 정주행을 가능케 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배우들의 연기도 좋았지만, 솔직히 다른 배우들이 연기했어도 이 드라마는 재밌을 수밖에 없다. 주인공의 서사, 그리고 복수를 계획하고 실행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뜻밖의 변수들이 어우러져서 어떤 결말이 될지 계속 궁금하게 만든다. 김은숙 작가가 이런 작품도 쓸 수 있다니, 계속 감탄하면서 봤다.

 

-변수: 주인공이 복수를 계획하고 실행해 나가는 이야기는 사실 많이 봐왔다. 하지만 '더 글로리'가 뻔한 복수극으로 느껴지지 않는 것은 복수를 실행해가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위기이다. 사실 계획한 대로 복수가 이루어지면 재미가 없지. 중간중간 방해꾼이 나타나고, 실수를 하고, 계획의 허점이 드러나기도 한다. 하지만 그 위기들이 오히려 기회가 된다. 주인공이 늘 그 위기들을 너무 잘 헤쳐나가도 현실감이 없는데, '더 글로리'에서는 주인공의 위기대처능력과 우연의 일치가 적절히 배합되어 있다. 예를 들어, 주인공을 따라가는 낯선 차량을 발견하고, 주인공은 멋진 운전실력으로 도망치려 하지만 오히려 사고를 일으킨다. 따라오던 차량의 불량배들이 금전적 피해보상을 요구하고, 할 수 없이 전화번호를 알려주게 된다. 이 장면에서 가짜 전화번호를 알려줄 방법은 없는지 초초하게 봤던 기억이 난다. 너무 겁 없이 전화번호를 건네준 것 아닌가 불안했지만, 오히려 불량배들의 뒤를 쫓아서 그들의 배후 인물을 알아낼 수 있었다. '위기 --> 변수 --> 기회'.

또 하나, 복수를 위해서, 복수 대상자 다섯 명 중 한 명인 장발남에게 일부러 계획을 알려주고 협력을 구한다. 하지만 장발남은 협조를 하다가 갑자기 독자행동을 하고, 그러던 중 실종이 된다. 드라마 상에서는 녹색 구두를 신은 여성(혹은 남성?)에게 살해당하는 것으로 나온다. 주인공이 의도하지 않았지만, 원래 목적이었던 복수는 달성할 수 있었다. 여기서도 반복되는 '위기 --> 변수--> 기회'의 공식이다. 파트 2에도 또 나올 듯싶다.

 

- 신선한 소재: 이건 개인차가 있겠지만, 나에게는 이 드라마가 도구로서 차용하는 소재들이 전혀 진부하지 않게 다가왔다. 복수의 대상자의 남편에게 접근하기 위해 바둑을 배운다니! '미생'이라는 바둑/인생 드라마가 있긴 했지만, 여주인공이 바둑을 두는 한국 드라마는 처음 아닌가? 바둑 자체에 초점을 둔 게 아니라서 바둑의 매력이 많이 표현되지는 않았지만, 바둑을 두는 여자, 아니, 바둑을 잘 두는 여자가 멋지게 표현된 것은 처음인 것 같다. 나도 바둑을 배우고 싶어 졌을 만큼, 바둑이 여주인공의 카리스마와 지적 능력을 돋보이게 해 줬다. 또 하나는 색약 이상인데, 특정 색깔을 인지하지 못하는 증상이 영화나 드라마에서 중요한 요소로 다뤄진 적은 거의 없지 않았나? 색약에 대한 지식을 복수에 이용하다니 참신하다. K-드라마에서 늘 등장하는 출생의 비밀, 기억 상실증, 불치병, 재벌가의 암투 대신에 바둑과 색약이라니! 파트 2에는 또 어떤 소재가 나올지 궁금하다.

 

- 일드st?- 한드만큼이나 일드를 많이 봐온 내게, '더 글로리'의 첫인상은 '일드스럽다'였다. 어두운 분위기의 주인공, 그리고 그녀가 꾸미는 복수를 둘러싼 미스터리. 로맨스가 대세인 한드보다는 일드에 가깝다는 인상을 받았던 이유는 아마도 잔인한 폭력 장면 때문이었던 것 같다. 학폭은 일드에서도 많이 다루는 소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생각은 점점 옅어져 갔다. 단순히 일드와 한드의 조명, 세트장의 차이 때문이 아니라 등장인물들의 입체적인 묘사 때문인 것 같다. 예를 들어서 주인공은 복수 대상자의 딸에게는 직접적인 해를 가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이 학생 때 받았던 차별과 학대와는 딴판으로 공정하게 대해준다. 일드였다면 아마 주인공은 적의 딸을 물리적으로도 괴롭혔을 것 같다. '더 글로리'의 주인공에게는 철저한 복수심과 약간의 정의감이 공존하지만, 일드의 주인공들은 대부분 복수의 화신이 되어버리고 예측 가능하게 모든 상황에서 복수를 꾀한다. 또, 주인공의 조력자로 사진을 찍어주는 '이모님'은 가정 폭력의 피해자이지만, 가끔 자신의 슬픈 처지를 잊어버리고 명랑한 모습을 보여준다. 이런 캐릭터는 사실 한드에서도 처음 보는 것 같다. 일드였다면 피해자는 그저 피해자로만 묘사되고 한번 피해자는 언제나 우울하고 과거를 극복하지 못한 채 살아가는 것으로 단순하게 그려진다. 이건 한드에서도 많이 볼 수 있는데, 이런 표현법이 너무 단순하고 현실적이지 않다는 것을, '이모님' 캐릭터를 보면서 깨닫게 되었다. 아무튼, 일드랑 비슷할까 봐 걱정했었는데 괜한 노파심이었음.

 

- 그 특이한 헤어스타일의 남교사: 이 배우는 너무 연기를 잘해서 그가 연기하는 악역을 볼 때마다 섬뜩하다. 선역을 맡은 적이 있나 싶다. '더 글로리'에서도 위험하게 보이는 남교사로 등장을 하는데, 나올 때마다 조마조마하다. 그런데 왜 헤어스타일을 그렇게 특이하게 했을까? 작가의 지시, 혹은 동의 하에 정한 스타일이겠지만, 왜? 그의 시대착오적인 발언들 때문에? 아니면, 그의 성정체성에 대한 힌트? 사실 머리스타일이 평범했었어도, 그의 약간 여성적이고 얄미운 말투 때문에 강한 인상을 남겼을 텐데 왜 일부러 레고 머리, 혹은 네모 단발머리를 한 것일까? 단순히 주인공의 강단 있는 성격을 드러내기 위한 지나가는 역할은 아닐 것이다. 파트 2에서 분명히 주인공의 복수의 과정에 휘말리게 될 것 같은 느낌이다. 동성애자인 이사장의 전 애인일까? 근데, 주인공을 이사장의 여자로 오해하고 있는 것으로 봐서는 이사장의 성정체성을 모르는 것도 같다. 아무튼, 주인공을 어떤 식으로든 방해하고, 그의 행동이 오히려 복수의 완성에 기여하지 않을까?

 

- 성형외과: 주인공을 쭉 사모해왔던 성형외과 의사. 그에게도 아픈 가족사가 있고, 복수를 꿈꾸는 대상이 있어서, 주인공의 복수를 돕게 된다는 설정은 꽤 설득력이 있다. 그런데 왜 성형외과일까? 응급의나 외과라면 너무 바빠서 복수를 도울 시간이 없을 것이다. 소아과나 안과라면 색약이 있는 복수대상자#1의 딸과의 접촉점이 생겼을 수도 있겠다. 내과, 이비인후과, 비뇨기과, 정형외과는 복수 대상자들과의 접점을 만들기 쉽지 않겠지. 산부인과는 줄거리상 맞지 않고... 이렇게 쓰고 보니 성형외과일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주인공 몸에 난 상처들을 없애줄 수도 있고, 복수가 끝난 후에는 주인공의 얼굴을 바꿔 줘서 도망가게 해 줄 수도 있다. 페이스 오프!

 

- 파트 2 예상: 주인공의 복수는 꼭 성공을 해야 한다. 설마 작가가 '파리의 연인'의 결말같이 만들지는 않겠지? 그 복수의 과정은 순탄하지 않을 것이다. 많은 변수가 생길 것이고, 그 변수들이 주인공의 복수를 더욱더 완벽하게 해 줄 것이다. 그래야 사이다지!

늘 빗나가는 나의 예상이지만 재미로 남겨본다:

 

복수 대상자#1 박연진 - 딸의 생부가 #4라는 것이 밝혀진 이상 이혼을 당하고, 학폭 스캔들이 알려져서 기상 캐스터를 못하게 된다. 어머니와 점집의 비리가 밝혀져서 어머니는 구속. 재산 몰수. 집안 몰락. 더 이상 금수저가 아니게 됨. 딸의 생부도 망해서 경제적으로도 기댈 곳이 없게 됨. 전남편이 주인공을 사랑하게 되는 모습을 보면서 질투하다가 미쳐버림. 학폭 스캔들 및 다른 죄목으로 무기징역.

 

복수 대상자#2 이사라 - 그녀의 작품이 마약을 투여받은 고용인들에 의한 대작이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화가로서의 입지가 사라지게 됨. 그녀의 아버지의 교회도 비리가 밝혀져서 가문 몰락. 마약 중독 및 학폭으로 징역을 선고받음.

 

복수 대상자#3 최혜정 - 결혼 후 그녀의 깨끗하지 못한 과거가 밝혀져서 이혼. 위자료를 지급하게 되면서 파산. 승무원을 하는 동안 갑질한 것이 알려져서 업계에서 퇴출. 학폭 및 다른 죄목으로 무기징역.

 

복수 대상자#4 전재준 - 딸을 되찾기 위해서 연진을 이혼시키려고 발악을 하다가 연진의 남편에게 경제적 보복을 당함. 골프장 빼앗기고 파산. 딸 때문에 미쳐서 연진의 남편을 죽이려다 오히려 자신이 죽거나, 부상. 학폭 및 다른 죄목으로 징역.

 

복수 대상자#5 손명오 - 이미 사망. 그의 사망이 #1이나 3과 관련이 있어서 그들이 체포되는 이유를 하나 더 만들어 줌.

 

주인공 - 복수를 마치고, 실신을 한다. 일어나 보니 얼굴이 바뀌어있고 기억은 사라졌다. 아무 죄책감 없이 행복한 인생을 시작한다 :-)

 

다 무기징역이면 너무 뻔한가? 김은숙 작가의 상상력이 기대가 된다. 빨리 파트 2 공개해 주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