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히 기다린 것도 아닌데, 공개된 첫날 보게 된 '글래스 어니언'. 사실 전편인 '나이브즈 아웃'을 참 재미있게 본 지라 꼭 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긴 했다. 사전 지식이 전혀 없는 채로, 약간의 기대감을 가지고 보기 시작했다.
여기서부터는 스포일러가 대량으로 포함된 후기:
-줄거리: 일론 머스크를 연상시키는 괴짜 천재 사업가 마일즈(에드워드 노튼)가 몇 명의 친구들에게 상자를 배달시킨다. 상자는 겉으로 보기에 열 수 있는 장치가 보이지 않는데 '매직 아이'로 상자를 여는 버튼을 찾아서 누르자 퍼즐이 나온다. 몇 개의 퍼즐을 풀고 나니 맨 마지막에는 작은 유리 양파 (제목과 동일) 모형 속에 있는 초청장이 나온다. 마일즈의 개인 소유에 살인 사건 추리 게임을 하러 오라는 내용이었다. 그렇게 해서 모인 개성 있는 마일즈의 친구들. 전에는 잘 나갔던 모델이었지만 이제는 트위터에서 망언을 발설하기로 유명한 셀럽 (사진 속 모자녀), 그녀의 비서 펙 (반바지와 선글라스), 마일즈의 아이디어를 과학으로 현실화시키는 과학자 (턱수염 흑인남성), 트위치 역사상 처음으로 백만 구독자 달성한 듀크 (문신남), 듀크의 애인 위스키 (부츠녀), 잘 나가는 정치가 (선캡녀), 그리고 '앤디'라는 정체불명의 불청객 (금발 단발녀), 거기다가 이들과는 전혀 접점이 없어 보이는 탐정이 배를 타고 마일즈의 섬에 도착한다. 마일즈가 예고한 대로 살인 사건 추리 게임을 시작하려는데, 눈치 없게 탐정이 바로 범인을 맞춰버린다. 탐정은 상품을 달라는 농담을 하면서, 지금 상황이, 마일즈가 실제로 살인당하기에 딱 좋게 되어있다고 경고를 하는데, 그러던 중 갑자기 듀크가 술을 마시다가 쓰러져서 사망하고 만다. 여기서부터 우당탕탕 박진감 넘치는 하룻밤이 시작되는데... 결말은 밑에다 쓰겠다.
-배우들 이름은 잘 모르지만 반가운 얼굴들이 몇 있었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2에서 덩치 큰 캐릭터로 나오는 배우가 나와서 내적 친밀감을 느꼈는데 온몸에 문신이 진짜인지 분장인지 궁금할 정도로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다. 영화 초반에 엄마한테 뺨 맞는 마마보이로 나오는데 좀 불쌍했음 ㅠㅠ 거기다가 여자 친구가 바람피우는 장면도 목격하고, 결국에는 술 마시다가 죽는다. 이 영화에서 두 번째로 불쌍한 캐릭터.
-첫 번째로 불쌍한 캐릭터는 단발녀. 정확히는 그녀의 언니다. 마일즈와 공동으로 회사를 창립했던 언니가 회사 지분을 뺏기고 갑자기 자살을 하자, 쌍둥이 동생인 헬렌이 언니가 살인 사건의 피해자라고 생각하고 탐정을 고용한다. 역시 그녀의 예상대로 언니는 살인당한 것이 맞았고 살인범을 찾기 위해서 언니인 척하고 마일즈의 파티에 합류한다. 언니의 이름은 카산드라 (Cassandra)인데 애칭이 앤디 (Andi)라는 점이 특이했다. 처음 보는 매우인 것 같은데 연기를 차분하게 잘했음.
-제목에 양파가 들어가는 만큼, 줄거리도 겹겹이 쌓여있다. 초반에는 등장인물을 소개하는 객관적 시점으로 극이 진행되다가, 중간에는 양파 껍질이 한 겹 벗겨지면서 언니인척 연기를 하는 헬렌이 탐정과 함께 진범을 찾는 과정을 보여준다. 하지만 양파껍질은 더 이상 없고 그 이후에는 좀 싱겁게 극이 진행됐다.
-결말이 맘에 들지 않았다. 스포 할 것임으로 영화를 보지 않았다면 여기서 읽기를 멈추길 바람. 언니의 억울함과 살인자의 범행동기를 밝혀낼 수 있는 증거를 겨우 찾았더니, 너무 허무하게 증거가 사라져 버린다. 법적으로는 어떤 처벌을 내리기가 힘들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헬렌은 언니의 복수를 하기 위해서 별장의 고급 장식품을 하나씩 깨부수더니 급기야 불을 지르고, 섬 전체의 리조트에 불을 내고 만다. 그리고 가장 비싼 그것 (마일즈가 가장 소중하게 여긴 바로 그것!) 마저 태워버리고 만다. 그래서 마일즈는 꿈도 잃고, 재산도 잃고, 파산을 하게 되었지만, 그렇다면 헬렌은? 기물파손죄로 징역을 몇십 년을 살아야 되지 않을까? 그게 무슨 복수야? 속 시원하지도 않고, 바보같이 느껴졌다. 뭔가 마지막에 추리적인 한 방이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는데 그런 것 전혀 없었음.
-마일즈가 투자를 하려던 수소 에너지원 (소금 결정체같이 생긴) 아이디어가 참 맘에 들었다. 실제로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물론 환경에 해가 되지 않는다면 말이다. 극 중에서는 환경에 입힐 피해가 파악이 되지 않아서 실용화되기를 반대하는 무리가 있었다.
-사실 영화 초반이 제일 재밌었던 것 같다. 팬데믹 시국에 몰래 파티를 하거나, 재택근무를 하고, 탐정은 사건이 없어서 지루해서 미쳐가다가 파티에 초청받고 모두 신나 하는 모습에 공감하는 사람이 많았을 듯. 섬으로 가기 전에는 마스크를 하고 만나는데 그중, 망사 마스크를 하는 셀럽녀가 너무 웃겼다. 꼭 그런 사람 있다. 배를 타기 전에는 무슨 주사 총을 입 안에 맞는데, 백신인 걸까? 아무튼, 그걸 맞으면 마스크를 안 써도 된다는 설정이었다. 코로나 시국의 방역수칙을 지켜서 불편러들을 최소화하려던 제작진의 노력이 엿보였다.
-전편에서 등장한 트릭들을 떠올리면서, 보는 내내 범인 맞추는 재미가 있긴 했다. 유명한 배우가 나오면 그가 범인이라는 (지난번엔 크리스 에반즈였지) 공식을 기억하고 있었는데, 역시 이번에도 맞았다 ㅋㅋ 비싼 출연료를 낸 만큼 고도의 연기력을 요하는 범인 역할을 맡겨야 되지 않겠는가? 사실 생각해보면 너무 뻔한 설정에, 범인이 될 수 있는 사람은 정황상 이 사람밖에 없긴 했다.
-중간중간 떡밥이 뿌려진 것이 나중에 회수되는 것을 보는 재미도 좀 있었다. '타이어에 펑크 났네요'라고 헬렌이 탐정에게 말하는 장면이 있는데, 신발 끈이 풀어졌다고 알려주는 뜻이었다. 그런데 사실, 그렇게 허리를 구부리게 해 놓고 비밀 이야기를 나눴던 것이라는 게 나중에 양파 껍질이 벗겨지는 부분에서 다시 나오니 재미있었다. 인상적인 대사를 이렇게 사용하는구나. 시나리오 작가들의 스킬을 하나 배운 느낌이다. 그리고 마일즈가 아끼는 차가 섬의 유리 양파 조형물 속에 진열되어 있는 장면이 나오는데, 왜 차를 운전하지 않고 진열해 놓나 궁금증을 자아내어 놓고는 나중에 그 이유를 보여준다. 그것도 재밌었음.
사실 더 집중해서 봤다면, 더 많은 재미있는 장면들을 놓치지 않았을 텐데, 새해맞이 옷장 정리를 하면서 보느라고 많이 산만했다. 하지만 영화를 멈추지 않고 끝까지 다 봤다는 건 꽤 재밌었다는 뜻이다.
별점: 네 개 주고 싶은데 결말이 아쉬워서 세 개 반 드립니다.
한줄평: 두 겹뿐이었던 양파껍질. 그래도 매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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