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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사

[기독교] 트렌스젠더 및 동성애자를 대하는 기독교인의 자세

출처

Dr Patricia Weerakoon

교회에서 패트리샤 위라쿤이라는 성과학 전문가를 모시고 트랜스젠더 및 동성애자에 관한 세미나를 주최했다. 하와이 대학과 시드니 대학에서 교수생활을 하시다 은퇴하신 분이라고 한다. 지난달부터 결혼, 독신 등 여러 관계의 모양에 대한 설교 시리즈가 진행되고 있는데 그 마지막을 장식하는 행사였다. 부담될 수 있는 주제를 유머를 곁들여서 맛깔나게 설명해 주셔서 강의를 듣고 난 후 명쾌한 기분이 들었다. 기독교인으로서 성경적인 입장은 비교적 간단하다. 그 입장을 표명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힘들어서 그렇지. 내용을 복습할 겸 정리해 본다.

 

- 창세기에는 분명하게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다고 처음부터 확실히 명시되어 있다.

- 생물학적인 성별은 두 가지이고, 범주/스펙트럼이 아니다. 중간은 존재하지 않음.

- 하지만 남성적인 혹은 여성적인 성격이나 행동은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존재하며 그것으로 인해 성별이 영향받지 않는다.

예) 활동적인 여성이라고 해서 성별이 잘못되었거나 바꿔야 할 필요가 없음. 성별은 성별, 성향은 성향임.

      섬세한 남성은 그런 성향일 뿐 성별과는 관계가 없음.

- 인터섹스 (두 성별의 성기가 모두 존재)등의 이상이나 질병은 극소수의 예외일 뿐 제3의 성이 아님.

- 자신의 몸과 성별에 괴리감을 느끼는 것은 정신적인 문제임. 성별만이 아니라 다른 여러 요소가 원인.

- 트랜스젠더의 많은 비율(45% 정도인 듯?) 이 자폐 스펙트럼이나 신경계 질환도 해당됨. 사고의 비유연성이 성별에 대한 고정관념을 벗어나는데 어려움을 초래함.

- 동성에게 성적 매력을 느끼는 것은 감정. 하지만 감정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선택. 공개적으로 동성에게 끌리지만 독신으로 살고 있음을 공표한 기독교 인사들이 몇 있다고 함. 검색해 보니 바로 이런 사람도 나옴.

- 감정은 믿을 만한 것이 못된다. 나의 성별에 대한 나의 감정은 변할 수 있지만 그 감정이 성별을 바꿀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예레미야 17: 9
9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 기독교인으로서 트랜스젠더나 동성애자를 대하는 자세는 사랑이지만 긍정은 아니다. 괜찮다고 하거나 동의한다는 태도를 취하지 않지만 사랑으로 대하고, 위로와 기도를 해준다. 예를 들어 동성결혼은 참석하지 않지만, 같이 식사는 할 수 있다. 교회에서도 규정을 명확하게 해서 트랜스젠더나 동성애자는 리더의 역할에서는 배제해야 한다. 어떤 경우는 차별법에 위반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교회에서 주의해야 할 사항이다. 하지만 성경에 명시되어 있는 사항을 타협한다면 그건 기독교가 아니게 된다.

 

*그 외 개인적인 감상들

- 질의문답 시간에 동성결혼식에 초대된 사람이 질문을 했는데 참 난감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이럴 때는 친구가 많이 없는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학교에서 일하다 보면 간혹 성정체성에 대해서 고민하는 학생들을 보게 되는데, 긍정하지는 않되 애정을 가지고 대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된다.

 

- 트랜스젠더는 성전환 수술과 호르몬제 관련된 의료 기업의 마케팅의 일환으로 사회적 현상이 되는 것은 아닐까? 성전환 수술을 할 수 있게 된 이상, 고객 유치를 해야 하니까 관련 법규를 개정하기 시작하고, 학교 교육과정에 관련 내용을 추가하게 된 것이라는 의심을 거둘 수 없다. 평생 호르몬제를 맞아야 한다던데, 그 약을 파는 회사들은 얼마나 많은 이익을 창출할까? 호르몬제이다 보니 성전환자들에게는 필수품일 것이고 가격이 절대 저렴하지는 않을 것이란 말이지.

 

기독교가 차별적이라고 말한다면 할 말이 없다. 성경대로 사는 것이란 게 세상과 어느 정도 척을 지는 것을 기본으로 깔고 가니까 말이다. 주말에 쉬지 않고 교회에 가고, 술, 담배를 멀리하고, 행동을 조심하고, 용서하고, 사랑하고... 어느 것도 쉬운 게 없지만, 그래서 가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