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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사

일본 애니의 부활? - 오오쿠, 나의 행복한 결혼 몇 부작?, 최애의 아이 (스포주의)

*'나의 행복한 결혼'이 몇부작인지 궁금하다면 맨 밑으로 스크롤 고고

 

거의 매일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살던 시간이 꽤 길었다. 대중적이고 작품성이 있는 지브리 작품들로 시작해서, B급 감성의 매니악한 작품들까지 다양하게 섭렵하다가 일본 드라마, 일본 음악까지 접하게 되고 일본 유학까지 다녀왔다. 이렇게 쓰고 보니 난 뼛속까지 오타쿠였구나. 그래, 나는 친일파보다도 더 인정하기 싫은, 오타쿠였다. 돈이 없어서 DVD나 책을 사거나 굿즈를 모으지는 않았지만, 순수한 애니메이션 시청 시간만 따져보면 누구 못지않을 것이다. 일본 유학 이후, 일본이나 일본어와는 상관없는 생활을 하면서도 거의 매일 애니메이션을 챙겨보다가 몇 년 전부터 열정이 시들해지기 시작했다. 언제부터인가 매주 챙겨보고 싶은 작품이 서서히 줄어들다가 심지어 작년부터는 한 작품도 보지 않게 되었다. 가끔 관심이 생겨서 보기 시작해도 끝까지 다 본 작품은 한 편도 없었던 것 같다.

 

그런데! 2023년 2분기인 4월부터, 오직 나만의 의견이지만 어두웠던 일본 애니메이션계에 다시 부활의 빛이 비쳐오기 시작했다. 그 시작은 바로 '최애의 아이' (推し)이다. 인터넷에서 회자가 되는 걸 여러 번 목격하고도 미루고 미루다가 방금 1회를 보았는데, 오오 이 작품은 엄청나다! 포스터와 제목만 보면,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일본 아이돌에 대한 내용이겠거니 했는데, 1시간 20분의 긴 첫 화에서 난 몇 번이나 뒤통수를 얻어맞는 느낌으로 반전에 반전을 목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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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로 속지 마세요. 엄청난 이야기입니다.

 

아직 1편밖에 보지 않았지만, 이 작품이 왜 인기가 있는지, BTS의 RM도 시청 인증을 할 정도로 화제가 되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스토리의 구성, 발상, 반전은 일본 작품 특유의 '저세상'급 창의력이라고 생각한다. 선과 악의 기준이 다른 문화권과 상이한 일본이기 때문에 가능한 작품이라고 본다. '와비사비'로 대표되는, 죽음에 이르는 쇠퇴의 과정, 죽음 가까이에서 느끼는 상실감 자체에서 아름다움을 느끼는 일본의 미의식이 저변에 깔려있기 때문에, 일본 작품들에게는 삶과 죽음을 자유롭게 넘나들고, 그 애매한 경계를 정의하지 않는 것에 대한 책임감의 존재자체가 없다. 아니면 죄송합니다. 

 

사무라이 영화에서는 열과 성의를 다해 싸우던 사무라이가 허무하게 단칼에 죽음을 맞이한다. 선량한 백성이 억울하게 죽고, 자신을 희생하거나, 명예를 위해 할복하는 선택을 하는 등장인물을 흔히 볼 수 있다. 난 그런 장면을 접할 때마다, 과거 사람들의 고된 삶의 방식에 동정하고, 그 법칙이 현대에도 적용된다는 걸 기억하며 쓸쓸하고 헛헛한 기분이 된다. 그런 기분을 느끼려고 일본 작품을 보는지도 모르겠다. 삶에 대한 슬픔을 인지해야 비로소, 평범한 일상 속의 약간의 기쁨을 감사하게 되는 듯하다. 그런 의미에서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는 두 편의 일본 애니메이션도 잘 만들어진 작품이라고 생각해서 추천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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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높은 퀄리티의 일본 애니메이션을 보게 되어서 눈이 즐거웠다. 내용은 한없이 무거운데, 남성의 인구가 질병으로 여성의 1/4까지 감소하면서 벌어지는 대체 역사물이다. 일본 특유의 감수성이 넘쳐흐른다. 감정을 이입하는 등장인물마다 고난을 겪고, 아파하며, 죽는다. 오로지 살아남는 것은 작품을 감상하는 '나'뿐인 것 같은 느낌까지 든다. 현대에 살고 있는 것만으로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 된다. 선정적인 내용이지만 영상과 음악의 절제미 덕분에 다 보고 나서의 뒷맛이 그리 나쁘지 않다. 넷플릭스의 넉넉한 예산 덕분일까? 사랑해요,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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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순혈 일본인 캐릭터가 금발인지는 묻지 않기로 하자.

바로 어제 시청을 마치고, 이번 주 4회가 너무도 기다리는 작품이 생겼다. '나의 행복한 결혼'. 이 작품 역시 평범한 제목과 포스터에 속으면 안 된다. 알콩달콩 신혼생활을 즐기는 젊은 부부의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보기 시작한 나의 뒤통수는, 또 여러 번 타격을 입고 말았다. 일본식 복식과 서양식 복식이 혼재하는 시대가 배경인 작품인데, 개인적으로 다양한 스타일을 보는 재미가 있어서 좋아하는 시대이면서도, 같은 시간대에 역사적으로 암흑기를 맞이했던 조선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어서 마음 한구석이 불편해지곤 한다. 이것은 오타쿠의 숙명 같은 죄책감이다.  3편까지 보는 내내, 아기자기한 영상과, 답답할 정도로 착한 여주인공을 응원하는 마음에, 딴짓하지 않고 몰입할 수 있었다. 오랜만에 매주 챙겨보는 작품이 생겨서 신나고 설렌다.

 

* '나의 행복한 결혼 몇 부작'이라는 검색어로 블로그 유입이 많이 되는 것 같다.

검색해 본 결과 12부작 예정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