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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사

[독서] Sword Catcher 카산드라 클레어 저 - 감상+뜻밖의 한류

 

 

 

 

 

 

 

 

 

 

 

 

요즘 도서관 앱에서 우연히 Sword Catcher라는 오디오북을 발견하고 매일 듣고 있다. 많고 많은 책 중에 어느 것을 고를지 늘 고민을 하는데 결국에는 표지로 고르게 되고 이 책의 경우에도 그랬다. 책을 겉만 보고 고르지 말라는 영어 속담이 있어서 조금 부끄럽긴 하지만, 표지가 마음에 드는 책이 내용도 마음에 들었던 경험을 몇 번 하고 나서, 그 속담이 현대에는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현대의 책 표지 디자이너들은 책의 본질을 표지에 표현하는 데 있어서 아주 능숙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표지의 강렬한 붉은색과 오밀조밀하면서도 대칭이 되는 디자인이 내 시선을 끌었고, 카산드라 클레어라는 이름이 특히 마음에 들었는데 내 고양이 달빛이 의 영어 이름이 클레어라는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 때문이었다 (이름에 집착하는 나는 고양들에게 한글/영어/한자 이름을 지어주었다). 처음에는 카산드라 클레어가 큰 글씨로 적혀있어서 제목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작가의 이름이었다. 그녀는 '섀도우 헌터'라는 꽤 유명한 베스트셀러 시리즈의 작가였다. 책의 제목은 'Sword Catcher', 직역하면 '칼 받이'쯤 되려나? 왕자 대신 '칼'을 대신 찔려줄 보디가드 역할을 하는 주인공을 나타내는 제목인데 책의 내용을 따라가다 보니 살짝 아쉬운 제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내용은 밑에 자세히 써보겠다.

 

강렬한 붉은 색의 책 표지

 

카산드라 클레어는 필명이라는데 잘 지은 듯

 

현재 시점에서 24시간의 오디오북의 80%를 들었는데, 지금까지의 감상을 끄적여 본다:

 

- 작가가 알고 있는 역사적 인물들, 지명, 고전 소설의 모티브를 버무리고 섞어서 재창조한 샐러드/잡채/짬뽕 문학이라고 할 수 있겠다. 마법이 가능한 가상의 중세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판타지 소설이라 깊은 철학이 있는 순수문학과 비교하는 건 공평하지 않지만, 처음에는 이렇게 대놓고 막 섞어도 되나 싶다가, 계속 진행되는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서 이게 이 작가 스타일이거니 납득이 되었다. 우선 왕자와 비슷한 나이와 외모 때문에 선택된 고아 주인공의 이야기는 '왕자와 거지'와 비슷해서 거저먹는(?) 느낌이 있었다. 왕의 이름은 마커스 오렐리언은 '명상록'의 저자였던 로마 황제 마커스 오렐리우스에서 따왔다. 그리고 실제로 마커스 오렐리우스가 사촌과 같이 이인 통치를 했는데 소설 속 이웃나라도 황제가 두 명이다. 이야기 속에서 차별을 받는 소수 민족인 '아쉬카' 족은 유대인을 연상시키는 요소가 많은데 방금 검색해 보니 역시나 작가가 유대인이다. 이스라엘의 실존 인물인 '유다 마카베오'의 이름을 소설 속 역사적 인물에 차용한 것이 가장 큰 힌트였다. 작가는 꽤 자주 실존 인물의 이름을 그대로 차용하면서, 살짝이라도 바꾸려는 노력도 하지 않는다. 이걸 게으르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솔직하다고 해야 하나, 그것도 아니면, '내가 이거 어디서 따왔는지 맞춰볼 사람~'하고 또 따른 재미를 선사하려는 의도라고 해석해야 하나 잘 모르겠다. 개인적으로는 이 점이 꽤 거슬렸는데 이야기에 몰두하고 있다가 실존 인물이나 다른 이야기를 연상시키는 내용이 나오면 의식의 흐름이 현실로 돌아오게 되기 때문이다. 작가님, 독자들은 현세를 잊고 싶어서 판타지 소설을 읽는 거라고요!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는 재미있다. 전체적으로 크게 자극적인 내용이 없음에도 (후반부에 갑자기 야한 내용이 나와서 좀 당황함) 등장인물들의 다음 행보가 궁금해진다. 24시간이나 되는 긴 호흡의 책이지만 끝이 궁금해서 중간에 멈출 수가 없었다.

 

[여기서부터는 약간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책 속에서 뜻밖의 한류를 발견한 점이 특히 재밌었다. 등장인물 중 '지안'이라는 여성 암살자가 나오는데 책 속이라 외모가 자세히 묘사되기 전까지는 동양인이라는 점을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녀가 '감조선' (캄초선) 출신이고, 그 나라의 수도는 '대성'이다 (작가님 혹시 빅뱅 팬?). 강 씨 집안과 남 씨 집안의 세력 다툼 중에 강 씨 집안이 암살자를 보내서 남 씨 집안의 주요 인물을 살해했는데, 알고 보니 지안의 성은 '강'이었고 바로 그 암살자였다. 작가님은 '나의 아저씨'를 감명 깊게 보고 아이유가 연기한 '지안'이라는 주인공의 이름을 맘에 들어했다고 20000% 확신한다 ㅋㅋ 주인공의 나라의 주변국이 몇 개 소개되는데 그중의 한 나라는 중국을 연상시키고, 또 다른 나라인 '감조선'은 한국을 연상시키는 점이 특히 맘에 들었다. 드디어 한국이 중국과 대등하게 독자적인 개성을 가진 문화로 인지되기 시작했다는 국뽕에 좀 취해도 되겠습니까?

 

  서두에 제목이 아쉽다는 내용을 적었는데, 왜 Sword Catcher라는 제목을 선택했는지에 대한 이유를 납득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작가의 대표작인 '섀도우 헌터'와 비슷하게, 단 두 단어만으로 간결하고 인상적인 제목을 짓고 싶었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칼받이'인 주인공만큼 다른 한 명의 여자 주인공도  아주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 그녀가 받는 성차별은 그녀가 감당해야 할 여러 가지 고난 중 하나이다. 그런 그녀가 이야기 속에서 차별받는 것으로도 모자라서, 제목에서까지 무시당해야 하나 싶다. 물론 작가가 여성이라서 일부러 그런 건 아니겠지만 그녀의 존재가 제목에서 아예 제외된 것이 어쩌면 그녀가 받은 가장 큰 성차별 아닌가? 그녀의 존재가 반전이라서 일부러 숨기느라고 그랬다면 할 말은 없지만, 'Sword Catcher'라는 제목 다음에 짧은 부제라도 있었으면 어땠을까?

 

난 이렇게 재미있는 소설을 쓰지도 못하면서 작가님이 열심히 쓰신 책에 대해 불평하는 것이 민망하지만, 이것도 일종의 애정의 표현이라고 변명하고 싶다. 지난 며칠 동안 일상의 피곤함을 잊게 해 준 고마운 소설이라서, 오래 기억하고 싶은 마음에 감상을 글로 남겨보았다. 작년 말에 출판된 소설이라 그런지 아직 한국에는 출판되지 않았는데, 한류적 요소가 있어서 한국 독자들의 흥미를 끌기에 좋을 것 같다. 벌써 어느 출판사에서 번역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