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관심사

6개월 걸려서 자유형 50 미터 성공!!! - 나의 운동 이야기

제목에 있는 느낌표의 수로 짐작할 수 있겠지만, 난 내가 자유형으로 50미터를 안 쉬고 수영할 수 있다는 사실에 무척 흥분 중이다. 어렸을 때는 수영을 배운 적이 없었고 가족 여행으로 강가 한 번, 바닷가 한 번 가본 게 다였다. 뉴질랜드에서 고등학교에 다닐 때 수영 수업이 있었는데 반 아이들은 다들 깊은 풀에서 수영을 하고 나만 유아용 풀에서 수영을 배웠던 속상한 기억도 있다. 그 후에 몇 번 수영장에 가서 연습을 했지만 도저히 숨을 쉴 수가 없었다. 호흡이 문제였다. 대학교에 진학하고 비싼 학생회비가 아까워서 수영장에 열심히 다녔었는데, 호흡이 안되니 할 수 없이 배영을 연습했다. 레슨을 따로 받을 생각은 못하고, 그냥 물에 떠서 뒤로 열심히 팔을 움직이는 정도였다. 그러다가 수영을 하는 날은 엄청난 폭식으로 이어진다는 사실과, 저질 체력 때문에 수영을 한 날은 극도의 피로감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현실에 부딪혀, 수영과의 인연을 접게 되었다. 어렸을 때부터 달리기도 느리고 잘하는 운동도 없었기에, 그냥 나는 어떤 운동과도 맞지 않는다고 포기했었던 것 같다.

 

그러다가 30대가 되고나서부터 무작정 불어나는 체중에 떠밀려 유튜브로 홈트를 시작했다. 큰 변화가 바로 생긴 것은 아니었지만, 운동을 하면서 체력이 좋아지는 경험을 하니 몸을 움직이는 것에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조금씩 자신감이 붙어서 학교 학생들을 위한 복싱이나 달리기 프로그램에 따라가기 시작하다가 정기적으로 parkrun을 통해 달리는 습관을 들였다. 5 km를 완주하는 것이 점점 덜 힘들어지고 (여전히 쉬워지지는 않는다) 10 km도 5-6번 완주하고 나니, 오히려 20대 때보다 체력이 훨씬 좋아지는 게 느껴졌다. 달리기에 재미를 붙이니 홈트는 덜 하게 되고 자꾸 밖으로 나가고 싶어졌다. 멀리 여행을 갈 형편은 아니라, 기차에 자전거를 싣고 이름만 들어본 역까지 가서, 자전거로 그 동네를 누비는 당일치기 자전거 여행을 해보기 시작했다. 우연히 Blue Mountains 지역에 있는 동네를 자전거로 돌다가 등산로가 있길래 짧은 하이킹을 하게 되었는데, 이제는 그 재미에 빠져서 방학 때만 되면 하이킹 코스를 찾아다닌다.

 

운동에 뒤늦게 눈을 떠서 이것저것 해보면서도, 수영을 다시 시작한다는 생각은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계기를 마련해 준 건 구썸남이었다. 스노클링이 취미인 그가 나중에 같이 가보자고 지나가는 말로 던진 걸 진지하게 받아들인 나는, 바로 수영장으로 향했다.(그렇다, 난 나중에 밥 한 번 먹자는 말을 들으면 언제 시간 되냐고 바로 물어보는 눈치 없는 사람이다 슬프게도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말을 꺼낸 당사자는 대화 내용 자체를 기억하지 못했고 썸도 끝이 났다) 그게 올해 4월이니 이제 딱 6개월이 되었다. 수영장에서 하는 레슨은 아쉽게도 시간대가 맞지 않았는데 오히려 혼자 하는 게 자유롭고 좋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배영은 할 줄 아니까 킥보드를 사서 호흡부터 연습해 보기로 했다. 지금 생각하면 참 무모했지만 스노클링 데이트를 할 생각에 의지가 불탔던 것 같다. 아, 이건 좀 슬프네. 레슨을 받지 못하니, 독학을 할 수밖에 없었는데, 주로 유튜브와 블로그를 많이 참고했다. 만나는 사람마다 수영이야기를 하다 보니까 동료 분이 이런 영상을 보내주시기도 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hC8ZZZhabp4

튀기는 물방울이 미니멀한 우아한 수영법이다

수영장에 가서 발버둥을 치다가 힘이 들면 물속으로 들어가서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수영하는지 관찰하기도 했다. 처음 몇 번은 배영만 하다 오기도 하고, 킥보드를 잡고 발차기만 연습하기도 하다가, 어느 날 다름 사람을 따라 하면서 개헤엄을 치게 되었다. 킥보드 없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게 너무 신기했다. 물론 머리를 수면 위로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목과 어깨가 좀 아파서 오래 할 수는 없는 게 아쉬웠다. 서서히 누가 수영을 잘하고 못하는지 구별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수영을 잘하는 사람들의 팔과 호흡 방법을 따라 해 보기도 했다. 그러다가 물을 믿어보라는 어느 블로그 내용을 읽고 엎드려서 물에 뜬 상태에서 팔을 휘적여 보았는데, 세상에나! 몸이 앞으로 움직였다! 호흡은 여전히 힘들었지만 1-2 미터라도 물속에서 뒤가 아닌 앞으로 움직인다는 사실이 그저 신기하기만 했다. 그렇게 조금씩 하다 보니 5 미터, 10 미터, 조금씩 나의 가동범위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오후, 평소와 다른 낮 시간에 수영을 하러 갔는데, 나의 허우적 거림을 보다 못한 어느 노신사분이 친절하게 내 자세를 봐주셨다. 잊을 수 없는 그분의 가르침 몇 가지:

 

- 팔은 높게 올렸다가 물에 넣을 것

- 몸통을 좌우로 돌리며 수영할 것

- 폐 속에 공기가 있는 걸 의식하고 몸통이 가라앉지 않게 할 것 (등을 좀 올리라고 하신 듯)

- 팔을 최대한 뻗을 것 (우리는 늘 생각보다 조금 더 팔을 뻗을 수 있다는 걸 기억할 것)

- 짧은 구간을 반복해서 왕복하며 연습하면 좋음 (레인 끝까지 안 가도 됨)

 

호흡에 대해서도 뭔가 알려주셨는데 기억이 안 난다. 그래서인지, 그분이 알려주셔서 그날 25 미터까지는 쉬지 않고 수영을 할 수 있게 되었지만, 여전히 멈춘 후에는 아주 숨이 가쁜 상태가 되어 있었다. 주변에 쉬지 않고 왕복하며 수영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어떻게 저런 체력을 가질 수 있는지 신기하기만 했다. 나도 달리기를 아주 못하는 편이 아닌데, 달리기는 5 km도 쉬지 않고 뛰면서 왜 50 미터는 수영을 하지 못하는 건지 의문이 생겼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고, 물속에서 각종 방법을 시도해 보았지만 쉬지 않고 수영할 수 있는 거리는 조금씩 늘어나면서도 숨이 엄청나게 가쁜 것은 변함이 없었다.

 

몇 주 전,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 6개월이 다 되도록 자유형 50 미터도 하지 못한다는 건, 뭐가 잘 못 돼도 한 참 잘 못 되었다는 소리를 들었다. 입으로만 숨을 내쉬다가 코로 숨을 내쉬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하니까, 숨을 한 박자 참고, 다음 팔을 올릴 때 내쉬고, 또 물 밖으로 얼굴을 내밀 때 내쉬어 보라고 알려주었다. 6개월 동안 혼자 수영을 했으니 잘 못된 습관이 굳어졌을 거라면서 꼭 레슨을 받아야 한다고 쓴소리를 해주기도 했다. 개인 레슨을 하는 사람을 찾아봐야 하나 고민이 되었지만 일단 친구가 알려준 방법대로 해보기로 했다. 몇 주전 딱 한 번 죽기 살기로 헤엄쳐서 50 미터를 쉬지 않고 수영했었는데, 그 후에는 다시 할 수 없어서 침울한 상태였다. 이게 내 한계인 것인지 답답했고, 개인 레슨이 유일한 희망처럼 느껴지던 참이었다. 그런데! 한 박자 숨을 참고, 그다음에 숨을 내쉬니 전보다 힘이 덜 드는 것이 느껴졌다. 중간중간 많이 쉬긴 했지만 무려 4번이나 50 미터를 쉬지 않고 헤엄칠 수 있었다!  얼마나 기쁘던지 과장 좀 해서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수영이 뭐라고,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고, 돈을 버는 것도 아님에도, 내가 목표했던, 늘 하고 싶었던 일을 할 수 있게 되는 기쁨은 참 컸다.

 

며칠 후에 다시 수영했을 때는 잘 되지 않더니, 그 며칠 후인 오늘, 훨씬 더 수월하게 50 미터를 5 번 수영했다.  물론 한 번 50미터를 헤엄치고 나서는 배영을 하며 좀 쉬어주어야 한다. 이어서 2번 50미터를 왕복하는 것은 아직 무리이지만 6개월 전의 나를 생각하면 장족의 발전이다. 생각해 보니 수영이 수월하게 된 날들은 공통점이 있었다:

 

- 물을 믿고, 친구가 알려준 호흡법을 착실히 반복했다.

- 마음과 시간의 여유가 있었다. 수영이 안 돼도 재밌게 놀다가 가자는 마음으로 편하게 수영했다.

- 살짝 배가 고픈 상태였다. 평소에는 체력이 달릴까 봐 1-2시간 전에 식사를 하고 수영했는데, 오히려 먹지 않는 편이 나은 것 같다.

- 커피를 마셔서 텐션이 높았다. (평소에 커피를 안 마시고, 한 번 마시면 잠을 못 자는데, 마약같이 각성이 되는 효과가 있는 것 같다 ㅋㅋ)

 

원래 느슨히 잡은 목표가 연말까지 50 미터를 쉬지 않고 수영하는 것이었는데, 친구 덕분에 앞당겨서 달성할 수 있었다. 내가 수영하는 모습을 보지도 않고 몇 마디 조언으로 내 수영실력을 늘려준 친구에게 고맙고, 이름 모를 멋진 노신사분께도 감사를 전하고 싶다. 언젠가 다시 수영장에서 꼭 마주쳤으면 좋겠다. 고작 50 미터 수영했다고 왜 이렇게 요란법석이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내 잔잔한 일상에 이렇게 큰 성취감과 기쁨을 주는 일이 흔치 않아서이다. 나이가 들어도 발전할 수 있고,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고, 더 강해질 수 있다는 사실이 날 흥분하게 한다. 평생 못하던 수영도 할 수 있게 되었으니,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다른 일들도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긴다. 다음엔 또 뭘 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