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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

블루 마운틴 Katoomba Family Hotel - Open Mic 밴드 공연

블로그 외에 다른 SNS는 하지 않고, 10주간의 학기 중에는 사람들도 거의 만나지 않다가 2주의 방학 때 몰아서 만나는 생활을 한 게 거의 10년이 다 돼 간다. 도시 속의 자연인(?)처럼 산다고 해야 할까? 친구도 많지 않고, 혼자서 즐기는 취미 생활이 대부분이다 보니 인간관계의 폭이 상당히 좁았는데, 그게 특별히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고 지내고 있었다. 그러다가 전근을 가게 되면서, 새로운 직장에서는 좀 사교적인 인간이 되어보고자 결심을 했더랬다. 동료들에게 더 마음을 열고, 일상적 수다도 떨어보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자리에는 잠깐이라도 얼굴을 내밀려고 노력을 하고 있다. 다행히도 새로운 직장 동료들이 대부분 좋고 상식적인 사람들이라서 금방 소속감을 느끼게 되었다. 급기야, 친해진 동료들 중 한 명과는 밴드를 결성해서 그분이 작곡한 곡을 기타를 치면서 노래하고 나는 바이올린으로 반주를 하게 되었다. 네 달 동안 일주일에 한 번 1시간 밴드 연습을 하다가 드디어 오늘, 블루 마운틴 근처에 있는 Katoomba Family Hotel의 open mic night에서 세곡을 연주하게 되었다.

 

주중에는 퇴근 후 누군가를 만나는 약속을 거의 하지 않는 나이기에, 수요일 밤에 펍에 가서 친구들과 맥주를 마시고 음악을 듣는 사람들의 일상이 생소하게 느껴지기만 했다. 이렇게 시간적, 정서적 여유를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니! 내가 너무 팍팍하게 살고 있었구나, 생각이 들면서 좀 서글퍼졌다. 돌아보면 지난 10년 가까이, 기간제 교사로서 계약 기간이 끝나갈 쯤에는 안절부절못하며, 직장에서 존재감을 키우기 위해 일을 떠맡고, 집에 와서는 피곤해서 쓰러지는 나날들로 점철된 일상이었다. 가까스로 정규직으로 전환돼서 마음의 여유가 좀 생기려던 차에, 개인적인 우환과 코로나로 인해서 여유다운 여유를 경험해보지 못한 것 같다. 작년에서야 전근을 하고 출퇴근 시간이 대폭 줄어들면서 삶의 여유를 누리기 시작했던 것 같다.

 

아무튼, open mic night이란 게, 아무나 공연을 하고 싶은 사람들이 이름을 적고, 딱 3곡씩만 연주하는 식으로 진행이 된다. 우리는 일곱 번째로 공연을 하게 되었다. 술을 마시고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 앞에서 10여분 하는 공연이지만, 순서가 가까워 올수록 긴장이 되었다. 다들 아마추어 음악인들이지만 모두의 음악 속에 그 사람들의 인생이 녹아들어 가 있는 게 느껴졌다. 최근에 96세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분은 아버지에 관한 자작곡을 불렀는데, 코로나 시기에 돌아가셔서 임종을 유리벽 밖에서 지켜봐야 했던 심정에 관한 노래이다 보니 공감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헝가리 출신의 나이가 지긋하신 분은 헝가리 왈츠곡의 가사를 영어로 번안해서 휘파람과 노래를 부르면서 아코디언을 연주하셨는데, 멋져 보였다. 친구들과 같이 연주를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는, 그들이 연습을 하면서 웃고 이야기하는 장면이 상상이 되어서 괜히 흐뭇했다. 화음을 맞춰서 노래를 하는 듀엣의 음악을 들으면, 그들의 마음도 참 잘 맞겠다 싶어서 그 사이에 존재하는 친밀감이 부럽게 느껴졌다. 많은 사람들이 음악과 함께 하는 삶을 살고 있다는 게 아름답게 느껴졌다. 인간이란 존재는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그게 어느 정도 분량이 차고 넘치면 다른 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어 하는 본성을 가진 것일까?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다들 비슷하게 감동을 받고, 또 나누고 살고 싶어 하는구나. 뜻밖의 장소에서 인류애를 느끼게 되었다.

 

드디어 우리 밴드의 차례가 되었다. 내 동료도 나도 평소에 무대 공포증이 있는 소심쟁이들이지만, 오늘은 꽤 괜찮았다. 우리의 관객이 대부분 다른 연주자들이다 보니 긴장이 덜 되었던 것 같다. 첫 곡은 시드니의 비싼 고속도로 톨비를 비판하는 곡이었는데, 가사 때문에 관객들의 호응이 좋았다. 첫 곡이고 쉽지 않은 곡이라서 둘 다 많이 틀렸지만, 침착하게 위기를 극복하고 끝까지 연주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두 번째 곡은 한산이라는 중국 시인의 시에 멜로디를 붙인 곡인데, 첫 곡에서 긴장이 많이 풀어져서 그런지 그럭저럭 무난하게 연주했던 것 같다. 마지막 곡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서정적인 곡이었는데, 곡에 몰두해서 어떻게 연주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무튼 무대 조명이 깜빡거리고 정신이 없어서, 떨리지 않았다는 점이 정말 다행이었다. 바이올린을 연주할 때 떨리면 활 소리가 고르게 나지 않기 때문에 연주자체가 엉망이 되는데, 다행히 오늘은 큰 사고는 치지 않았다. 동료의 자작곡을 첫 발표하는 기회였기 때문에, 이만하면 큰 폐를 끼치지 않고 괜찮게 마무리한 것 같다. 동료가 만족을 한 것 같아서 한시름 놓았다. 밴드를 결성하면 첫 공연을 하고 해산한 슬픈 트라우마가 몇 번이 있는데, 한 번 더 공연을 하자는 말이 나와서 일단 이 번 밴드는 해산하지 않고 넘어간 것 같다. 연주 후에는 다른 연주자들과 이야기도 하고, 다른 연주도 조금 더 듣다가 집에 돌아왔다. 헝가리 왈츠를 부른 분은 헝가리 집시 음악 악보를 보여주고 싶다며 나와 동료를 집에 초대하고 싶다고 했다. 가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내 인생의 반경이 조금은 넓어진 느낌이다. Katoomba에서 집까지는 한 시간이 넘게 운전을 해야 했지만, 피곤보다는 뿌듯함과 활력으로 마음이 벅차올랐다. 근데 이건 아마 졸음운전을 하지 않으려고 마신 커피 때문일 듯 ㅋㅋ

 

최근에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경험을 하면서 내가 조금씩 달라지고 있는 것을 느낀다. 여기서 다시 예전의 은둔자 생활로 돌아가지 않고, 계속 새로움을 내 삶에 주입하다 보면, 몇 년 후에는 어떤 내가 되어있을까? 이렇게 나이를 들어가면 멋진 할머니가 될 수 있겠다는 희망의 빛이 살짝 비춰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