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드니

Wentworth Falls 당일치기 여행: 완벽한 하루 (2)

30분만 구경하고 파이를 먹으려 가려던 처음 계획을 변경해서 한 시간 정도 더 하이킹을 계속해보기로 했다. 배도 아직 고프지 않았고, 쌀쌀한 날씨였지만 땀이 나지 않아서 걷기에는 좋았다. 구름 낀 하늘도 나쁘지 않았다.

 

도마뱀 조각상 옆에 있던 작은 폭포를 뒤로 하고, 등산 난이도가 '상'이라는 코스로 향했다.
계속 내려가는 길이 이어지면서 그제야 나의 뇌가 작동을 하기 시작했다.
폭포는 밑으로 떨어지는 것이구나. 난 계속 밑으로 내려가야 하는 거구나.
내려가는 길이 이어지면서 앞으로 올라올 일이 점점 걱정되기 시작했지만, 멋진 풍경을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돌 위에 뜬금없는 액자가 있어서 놀랬다. 이 등산 코스를 개척한 공사팀의 사진이었다.
사진을 찍는다는 핑계로 중간 중간 다리를 쉬게 해주었다.
겹겹이 쌓여있는 지층에서 수천년의 세월이 느껴졌다.
솔직히 폭포보다 지층이 더 장관이었다.
반대방향으로 올라오는 사람들의 거친 숨소리가 점점 신경쓰이기 시작했다.
올라갈 걱정하다가, 풍경을 보고 감탄하기를 번갈아 했던 것 같다.
진짜 이래도 되나 싶게 가파른 경사의 계단들이 몇 군데 있었다. 앞 뒤 사람들이 불평하는 것을 들으면서 동질감을 느꼈다.
난 그리고 나중에 이 길을 그대로 올라왔다. 올라가는게 배는 힘들었다. 양 손에 잡을 곳이 있어서 천만 다행이었다.
저 엉거주춤한 자세로 계속 내려감 ㅋㅋㅋ 그래도 내려가는게 더 쉬웠다구. 올라올 때는 사진찍을 여유도 없었다.
드디어 꽤 큰 폭포에 도착했다. 파손된 적이 있다가 복구가 된 모양이었따.
이 폭포는 많이 커서 올려다 보는 재미가 있었다. 너는 폭포다.
하지만 난 폭포보다는 지층에 더 끌림을 느꼈다.
올라가기 전에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가방을 가볍게 하려고 도시락을 먹었다.
이상하게 배가 고프지 않아서 반 정도만 먹었다.

이후에 올라가는 길에는 두 손으로 붙잡으면서 걷느라고 사진을 찍을 여력이 없었다. 체력이 있는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숨이 몰아치고 꽤 힘들었다. 하지만 그게 또 재미가 있었다. 앞 뒤에 사람들이 있어서 속도를 맞춰야 해서 그랬는지 생각보다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이거 할 만한데? 다음에는 3-4시간 코스를 다 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오늘은 여기서 후퇴! 처음부터 너무 무리하면 다음에 또 안 올 것 같았다. 다시 공원 입구까지 올라와서 자전거를 타고 파이 가게가 있는 방향으로 향하는데 이상하게 전혀 배가 고프지 않았다. 깨끗한 공기를 많이 마신 탓일까? 운동량이 적지는 않았을 텐데 과일 도시락 조금 먹은 것만으로도 몸과 마음이 충만한 느낌이었다. 전에도 이런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 암스테르담 반 호고 박물관에 갔을 때, 파리의 루브르 미술관에 갔을 때, 거의 하루 종일 그림을 보면서 전혀 허기를 느끼지 않았었다. 아름다운 것에 둘러싸여서 감탄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은 오히려 에너지를 얻는 것이기 때문이 아닐까? Wentworth Falls의 자연의 아름다움에 내 안이 가득히 채워져서인 것 같다는 결론을 내리고, 파이 가게는 다음에 3-4시간 코스를 다 돌고 나서 먹기로 했다.

 

자전거를 타며 돌아오는 길이 너무 행복했다. 완벽하게 행복했다.
기차에 몸을 싣고 자리에 기대니 살짝 피곤하기는 했다. 하지만 머리는 맑고 기분은 상쾌했다.

 

그렇게 멀지도 않은데, 이렇게 좋은 곳을 이제야 알게 된 것에 아쉬운 마음이 든다. 이 포스팅을 하는 지금도 어제의 행복감의 여운이 남아있다. 일어나고 보니 입술은 부르트고, 두 종아리가 땅긴다. 역시 그 하이킹 코스가 쉽지만은 않았나 보다. 방학이 끝나기 전에 꼭 다시 한번 가서 좀 더 오래 있다가 오고 싶다. 다음에는 파이를 꼭 먹어야지.

 

이미지 출처

293 Great Western Hwy, Wentworth Falls NSW 27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