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상념들

유난히 행복했던 하루 - 왜였지?

시간이 지날수록 희미해지는 기억을 붙잡아 놓으려고 오랜만에 블로그를 찾았다.

지난주 금요일, 퇴근하고 집에 돌아왔을 때 갑작스러운 강한 행복감을 느꼈다. 최근에 이렇게 충만한 감정을 느낀 적이 없어서 좀 놀라웠다.

딱히 생각나는 이유가 없어서, 제대로 분석을 해봐야겠다고 생각만 하고 며칠이 흘렀다. 이제라도 그 이유를 찾아봐야 한다. 그래야 또 그 행복을 반복해 볼 수 있을 테니까!

 

금요일 당일

- 점심을 안 가져갔는데 동료 교사분이 피자를 나눠주셨다. 전날 학교에서 나누어준 사과와 주스도 남아 있어서 점심을 해결했다.

역시 배가 고프지 않은 것이 행복의 기본이다.

- 오전 수업 두 시간 이후로 학교 전체가 오래 달리기에 참여하는 날이어서 수업 준비에 대한 부담이 없었다. 교실에서는 한 시간만 수업함.

일을 안 해서 행복했던 걸까? 요새 수업 준비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기는 했다.

- 새로 입학한 귀여운 한국 학생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국 학생들을 접할 기회가 없어서 신기하기도 하고 한국말로 대화하는 게 즐겁다. 아이들이 참 예의 바르고 착해서 이야기를 할 때마다 기분이 좋아진다. 오랜만에 한국어로 대화를 해서 기분이 좋았던 걸까?

- 오래 달리기를 하는 동안 농구장에서 아이들이 대기하고 있었는데 쓰레기가 많이 있었다. 비닐봉지를 몇 개 챙겨가서 쓰레기를 줍고 재활용할 빈병을 모았는데 몇몇 아이들이 나서서 같이 돕겠다며 도와주었다. 오랜만에 착한 일(?)을 해서 행복을 느꼈나?

- 학교에서 가장 나이가 어린 11-13세 학생들과 함께 같이 오래 달리기에 참여했다. 더 나이가 많은 학생들은 학교를 서너 바퀴 돌아야 하지만 어린 학생들은 두 바퀴만 돌면 되어서 나도 쉽게 뛰겠거니 하고 달렸는데 생각보다 힘들었다. 하지만 완주를 하고 나니 기분이 좋았다. 운동을 해서 느낀 행복감도 그날의 강렬한 행복에 큰 기여를 한 것 같다.

- 수업이 끝나고 학교에 두 시간 정도 남아서 다음 주 월요일 수업을 준비하고, 그 전날 학생들이 시험본 걸 다 채첨 했다. 금요일 오후에 학교에 남아 있는 게 즐거운 일은 아니지만, 주말에 학교일에 대해 생각하기 싫었기 때문에 무조건 다 끝내야 했다. 밀린 일을 다 끝낸 후련함이 행복감을 높여준 것 같기도 하다.

- 퇴근을 하고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향하는데 주말에 대한 기대감에 기분이 좋았던 것 같다. 주말에는 처음으로 초대받은 90세 생신 잔치, 그리고 헨델의 메시아를 부르는 합창단 연습에 참여하기로 되어있었다. 주말에 대한 기대감도 내가 느낀 행복에 한몫을 한 것 같다.

- 집에 오니 귀여운 고양이들이 문 앞에서 날 기다려주고 있었다. 매일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분명히 행복감을 더해주었다.

 

제대로 분석을 하려면 금요일 당일뿐 아니라 그 전날, 또 최근에 변화한 일상도 고려해봐야 한다.

- 목요일 저녁에는 합창단 연습을 하고 늦게 귀가했다. 피곤해서 푹 잤던 것 같다.

- 의사의 권유로 수요일부터 매일 저녁 15분 정도 반신욕을 하기 시작했다. 덕분에 잘 자고 있다.

- 올해 초부터 한국 드라마와 애니를 보지 않고 있다. (유일하게 본 건 The Chosen 시리즈) 2월부터는 한국 팟캐스트도 듣고 있지 않다.

(그런데 이게 내 행복에 크게 기여한 것 같지는 않다. 미디어 소비를 극적으로 줄이면 뭔가 극적인 변화가 나타날 줄 알았는데 지금까지는 미미하다. 아마도 오디오북과 뉴스, 몇몇 블로그는 계속 접하고 있어서 그런 것 같다. 다 끊어봐, 이거?)

 

결론을 내보자면, 내가 느꼈던 행복의 이유는 자잘한 일들의 복합체였던 것 같다.

- 배가 안 고프고 몸 상태가 좋음

- 약간 강도 있는 운동

- 할 일을 다 마친 후련함

- 미래에 대한 즐거운 기대감

- 선행 (쓰레기 줍기)

- 오랜만에 한국어로 대화

- 착한 학생들과의 교류

또 크게 신경 쓰이는 일이나 실수가 없었던 것도 크지 않았나 싶다. 꼭 무슨 일이 일어나서가 아니라, 부정적인 감정을 일으키는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그 강렬한 행복을 매일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패턴과 공식을 알아내면 일상의 평균 행복도를 높일 수 있지 않을까? 계속 기록하고 분석해 볼 만한 주제이다.

 

'상념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힘들 때 도움되는 행동들  (0) 2024.05.14
이대로도 괜찮다  (0) 2024.05.09
행복=체력  (0) 2023.03.20
2023년 새해 목표  (1) 2023.01.01
[행복의 요소] 드물게 행복했던 하루 - 왜였을까?  (0) 2022.1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