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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

블루 마운틴 - Blackheath Perrys Lookdown 하이킹 후기

 

 

 

 

 

 

 

 

 

 

 

 

 

 

 

작년 말에 우연히 Perrys Lookdown이라는 하이킹 코스를 알게 되었다. Katoomba에 있는 the Giant Staircase보다 더 계단수가 많고 가팔라서 꽤 어려운 코스라는 말에 밑도 끝도 없는 도전정신이 일었다. 계속 기회가 없다가 부활절 연휴였던 오늘 드디어 다녀왔다.

 

Blackheath는 유명한 관광지인 Three Sisters가 있는 Katoomba보다 기차로 두 정거장 더 가야 하는 곳이다. Blacktown 역에서 1시간 40분이 걸렸고 하이킹 코스가 시작하는 곳까지 자전거로 30분 정도 달렸다. 운전해서 가면 좀 더 빠르겠지만 돌아오는 길에 기차에서 잘 수 있다는 이유로 기차를 택했다. 피곤한 몸으로 장거리 운전을 하는 건 위험하기도 하고 또 기차 안에서 책 읽는 걸 좋아해서 긴 시간이지만 즐겁게 보낼 수 있다. 블루 마운틴행 기차는 시내 기차와는 실내 디자인이 다른데 뒤에서 두 번째 객차를 타면 자전거나 큰 짐을 싣을 수 있는 공간이 약간 구비되어 있다. 내 접이식 자전거는 꼬깃꼬깃 접어서 구석에 묶어 두었다.

 

자리를 많이 안차지해서 좋은 내 자전거

 

Blackheath 역에 걸린 그림. 역은 예쁜데...

 

Blackheath역에 도착하고 보니 날씨가 참 좋았다. 시골역답게 정감 있는 곳인데 공휴일이라 그런지 역에 직원이 아무도 없고 화장실도 다 잠겨있었다 ㅠㅠ (다행히 하이킹 코스 입구와 마지막 지점에 화장실이 설치되어 있었다)

 

대충 지도를 보니 역에서 Hats Road을 30분 정도 쭉 따라가기만 하면 하이킹 코스 입구가 나오는 것 같았다. 아스팔트 도로인데 공사가 덜 끝난 건지 아니면 특유의 스타일인지 작은 자갈이 얇게 깔려있어서 속도를 많이 내지는 못했지만 비교적 평지여서 자전거 타기에는 수월했다. 파란 하늘에 덥지 않는 가을 날씨. 지난 3개월 동안 가고 싶어 했던 곳을 향하는 내 마음속은 그저 행복이었다.

자전거를 타면서 본 경치에 속이 뻥 뚫렸다.

 

참 반가웠던 화장실. 아주 깔끔한 푸세식이다.
목표는 Perrys Lookdown을 지나 Blue Gum Forest - '아주 가파름'

 

블루 마운틴은 진짜 파랗습니다.
솔직히 블루 마운틴 경치가 비슷해서 새로운 건 없지만 그래도 좋아
끝없이 내려가는 계단이 이어졌다.
사진 좀 찍는다고 했더니 진짜 가만히 있어준 고마운 도마뱀

 

보통 하이킹하면서 야생 동물을 쉽게 접하지 않는데 오늘은 처음으로 뱀을 보았다! 내 앞에서 갑자기 나타났다가 수풀 속으로 사라졌는데 한동안 가슴이 두근거렸다. 뱀에 물렸을 때 응급처지하는 방법을 복습해 놔야겠다.

아직 내려갈 길이 한참 남았다.
드디어 계단 밑에 있는 Blue Gum Forest에 도착.

 

 

 

맨 밑에 도착해서 10분 정도 숲 속을 걸으면 Acasia Flat라는 캠핑장이 나온다. 연휴라서 그런지 꽤 많은 텐트들이 보였다. 내려오다가 만난 분이 강물에 발 담그고 쉴 수 있다고 알려줘서 물소리를 따라서 강가로 향했다.

캠핑을 하러 온 사람들이 꽤 많았다.

 

강이라고 하긴 좀 그렇고 개천?

 

요즘 읽고 있는 습관에 관한 책

 

물이 참 시원하고 깨끗해서 피곤한 발을 담그고 쉬기에 참 좋았다. 도시락도 먹고 책도 좀 읽고 30분 정도 쉬다가 다시 올라가기로 했다. 내려올 때 지나쳤던 사람들의 피곤한 표정에서 오르막길이 힘들 거라는 사실은 각오하고 있었다. 그래도 그 사람들은 큰 백팩을 메고 가서 더 힘든 거고 작은 배낭을 짊어진 나는 그것보다는 덜 힘들 거라는 막연한 희망을 갖고 있긴 했다.

내려갈 때는 1시간, 올라갈 때는 1시간 반 정도 걸린 것 같다.

 

지나가다가 본 캠핑을 온 가족이 있었는데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남매가 부모님과 떨어져서 내 뒤로 올라오고 있었다. 애들은 곧 나를 앞지르더니 이내 빠른 속도로 올라가서 시야에서 사라졌다. 아이들보다 너무 뒤처지지는 않으려고 안간힘을 써서 열심히 올랐는데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체력의 한계를 느꼈다. 가파른 계단이 나오면 두발과 양손을 다 써서 기어가듯이 올라갔다. 요새 체력이 좋아졌다고 생각했는데 착각이었나 싶었다.

내려갈 때는 신났던 발걸음이 올라갈 때는 천근만근이었다
올라가고 또 올라가고
가끔 사진찍는다는 핑계로 멈춰서 쉬어야 했다.
거의 다 올라왔을 때 본 너무 반가웠던 풍경.

 

아이들을 따라잡아보려는 욕심에 너무 무리할 필요는 없다 싶어서 속도를 줄이고 한 걸음 한 걸음에 집중하며 걸었더니 어느새 출발점에 다시 도착할 수 있었다. 먼저 도착한 아이들이 까르르 웃으면서 쉬고 있었는데 하나도 안 피곤해 보였다. 여기 자주 와봤냐고 물어봤더니 오늘이 처음이랜다. 캠핑을 자주 하냐고 물었더니 자주는 아니고 가끔 간다고 했다. 뭐야, 이 괴물 체력의 남매는? 미래에는 멋진 산악인이 되어있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사실 나도 덜 힘들 수 있었는데 자전거를 타고 와서 힘이 빠져서 그렇다고 변명을 늘어놓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다행히도 어른스럽게 참을 수 있었다. 자전거를 타고 기차역으로 돌아가는 길은, 다리에 힘이 빠져서 그런지 많이 힘들었다. 하지만 몸이 힘들려고 하이킹을 온 것 아닌가? (내게 길을 비켜준 분에게 여기 참 힘드네요라고 했더니 대답으로 돌아온 말이다) 어쨌든 하이킹은 무사히 마쳤으니 성공적인 도전이라고 생각하련다. 좋은 공기를 마시며 산속을 누빈 시간이 복잡하게 엉켜있던 스트레스의 실타래를 싹둑 잘라준 느낌이다. 걷는다는 행위가 생각을 단순하게 해 주는 데는 큰 도움이 된다. 하이킹도 중독이 되나? 연휴가 끝나기 전에 한 번 더 갈 수 있다는 생각이 가슴이 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