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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

급번개로 하이킹 - South Lawson Waterfall Circuits

 

 

 

 

 

 

 

 

 

 

 

 

 

 

일요일 오후, 일정이 갑자기 취소가 되어서 수영장에 갈까 말까 고민을 하던 중에 직장 동료에게 메시지가 왔다.

"Do you want to go for a hike now?"

나보다 더 하이킹을 좋아하는 그녀는 주말이면 친구들과 아침 일찍 어디론가 다녀오곤 한다. 뜬금없는 제안이었지만 내 일정이 마침 취소된 것을 알고 있는 듯한 우연이 재밌어서 곧 만나기로 했다. 또 하나의 우연이 겹쳤는데, 아침에 입었던 운동복과 운동화, 배낭이 마침 차 안에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운전을 하고 그녀의 집으로 향하기만 하면 되었다.

 

장소는 South Lawson Waterfall Circuits였는데 가겠다고 대답을 하고 나서야 내가 가본 적이 있는 곳이라는 걸 기억해 냈지만 다행히 나의 형편없는 기억력 덕분에 또 가도 전혀 상관이 없었다. 어렴풋이 몇 개의 작은 폭포를 봤다는 기억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하이킹에서 내가 원하는 건 자연에 둘러싸여서 맑은 공기를 마시고, 몸을 움직이며 머릿속이 개운해지는 경험을 하는 것일 뿐이다. 목적지로 향하면서 그녀가 왜 갑자기 일요일 오후에 하이킹을 가기로 했는지 이유를 들려주었다. 이틀 전 폭우가 내려서 폭포에 물이 많이 찼는데, 친구들이 다녀와서 올린 사진을 보고는 집에 가만히 앉아있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비가 이렇게 많이 온 게 몇 년 만이라 물줄기가 센 폭포를 볼 드문 기회라고 했다. 폭포에 특별한 관심이 없는 나는 그녀의 추진력에 감탄할 뿐이었다. 주로 혼자 하이킹을 다녀서 주위 사람들에게 늘 조심하라는 애정 어린 잔소리를 듣는 나와 다르게, 그녀는 혼자 하이킹을 하지 않는데 오늘 내가 가지 않았어도 오늘은 혼자라도 갔을 것이라고 했다. 아무튼, 1시간 정도 운전을 해서 Lawson Waterfall Circuit 입구에 도착했다. 자세한 정보는 여기를 참조.

 

날씨가 살짝 흐리긴 했지만 많이 쌀쌀하지는 않아서 하이킹하기에는 참 좋았다. 용감한 그녀는 폭포가 나타날 때마다 물줄기 가까이까지 다가가곤 했는데, 겁쟁이에다가 추운 것을 싫어하는 나는 물이 튀기지 않는 위치에서 폭포를 감상하는 것으로 만족했다. 폭우가 내린 지 이틀 후라서 흙바닥이 미끄러운 곳도 있었지만 어려운 코스가 아니라 힘들이지 않고 2시간 10분 정도에 Circuit을 돌았다. 돌면서 폭포는 7-8개 정도 보았던 것 같다. 내 기억 속에 남아있던 아담한 폭포들이 우렁찬 소리를 내며 물줄기를 뿜어대고 있었다. 비가 정말 많이 오긴 했나 보다. 날씨가 더웠다면 폭포 물줄기 좀 맞아보고 했을 텐데, 물이 너무 차가워서 신발과 등을 살짝 적신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폭포애호가(?)인 직장 동료가 만족해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재밌었고, 예정 없는 하이킹을 하게 된 것도 신선해서 기분전환이 되었다. 덕분에 기분 좋게 주말을 마무리하고 월요일 아침을 기분 좋게 시작할 수 있었다. 시간을 확인해 보니 이동시간과 하이킹을 한 시간을 다 합해서 5시간 정도 걸렸다. 솔직히 맘만 먹으면 꼭 휴가기간이 아니어도 주말 오후에 아무 때나 하이킹을 갈 수 있는데 말이지. 내 고정관념과 게으름을 극복해서 앞으로는 좀 더 부지런을 떨어봐야겠다.

 

P.S. 우울증이 수용성이라는 말이 있는데 무슨 연관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폭포를 보는 동한 마음이 치유되는 느낌이 들었다. 무언가 내 안에 좋은 것이 차올라서, 하이킹 내내 특별히 배가 고프지 않았다 (그냥 점심을 많이 먹었기 때문인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