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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

[하이킹] Mermaids Cave in Blackheath - 버섯, 버섯, 버섯

호주에서는 하이킹을 부쉬워킹이라고도 하는데, 지난달에 부쉬워킹 클럽 사람들과 Blackheath에 있는 Mermaids Cave에 다녀온 후기를 남길까 한다. Blackheath역에서 사람들과 만나서 간단히 자기소개를 하고 바로 걷기 시작했다. 블루 마운틴 지역에서는 늘 있는 일이지만 그냥 평범한 동네 길을 걷고 있다 보면 갑자기 등산로 입구가 나오고, 바로 미지(?)의 세계가 펼쳐진다. 사실, 미지까지는 아니지만 주택지 바로 근처에 나무가 빽빽하게 자란 숲이 있다는 게 아직 적응이 잘 안 된다.

 

주택가를 걷다보면 갑자기 등산로가 나타난다.

 

 

이번 하이킹에서 가이드로 봉사하시는 분은, 다른 하이킹 프로그램과는 달리 여유 있게, 쉬운 하이킹 코스를 가서 한두 시간 자연에서 자유시간을 가질 수 있게 하는 특이하면서도 아주 내 취향인 일정을 잡는 분이다. 주택가를 걷다가 갑자기 그분이 나무 밑에 있는 무언가를 발견하고는 우리에게 설명을 해주셨다. 우리라고 함은 나와 6명의 백인 여성분들이었는데, 다들 은퇴를 하셔서 시간 여유가 있는 분들 같았다. 나의 취미활동은 대부분 은퇴하신 분들과 공유하게 되는 요즘이다. 나도 은퇴만 하면 딱인데 말이지. 아무튼, 그분이 발견하고 약간 흥분된 목소리로 설명하기 시작한 것은 다름 아닌 버섯이었다.

 

이 버섯으로부터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무언가에 뜯겨 먹힌 듯한 이 버섯은 찾기 힘든 것인데 특정 나무밑에서만 자란다는 정도만 기억이 나는데, 그분의 열정적인 목소리가 내 안에서 호기심을 자아내었다. 그분은 자기는 버섯에 살짝 미쳐있다고 하시며, 나중에 목적지에 도착하고 나서 자신은 버섯도감을 보며 버섯 그림을 그릴 것이라고 하셨다. 그러면서 야생에 있는 버섯에 대해서 줄줄이 정보를 읊어주셨는데, 뭔가에 홀린 듯 계속 듣게 되었다.

지금도 기억나는 몇 가지:

 

- 야생 버섯을 따는 것은 불법이다. 버섯 채취자 면허가 있어서야 딸 수 있다.

- 절대 야생버섯을 맨손으로 만져서는 안 된다. 모든 버섯은 다 독버섯이라고 간주할 것. 조금만 손에 묻어도 설사하거나 급사하는 종류도 있음.

- 도마뱀들이 버섯을 먹기도 한다

- 가끔 식용버섯이 있기도 한데, 딴 당일 바로 먹어야 하고 그다음 날 색이 변해있을 때 먹으면 절대로 안된다.

- 무슨 우유 버섯이라는 종류는 엄청 크고 식감이 고기 같아서 한 개만 따도 두 사람이 실컷 먹을 수 있다.

- 하지만 야생에서 딴 버섯은 되도록 안 먹는 게 좋음.

- 숲 속에서 식용 버섯이 나는 곳은 사람들이 보통 비밀로 하고 가족들만 정보를 공유한다고 함. 너무 많이 채취할까 봐 그러는 듯.

- 희귀한 버섯을 발견하고 인터넷에 사진을 올릴 경우, 절대 정확한 장소를 공유하지 않는 것이 암묵적인 룰이라고 함. 이것도 환경보호 차원인 듯.

- 버섯의 밑을 보면 물고기 아가미 (gill)같이 생긴 종류도 있고, 스펀지처럼 생긴 종류도 있다. 치과에서 쓰는 거울을 쓰면 보기가 쉽다.

- 버섯의 포자를 종이에 담아서 그다음 날 확인하면 녹색이나 보라색으로 변해있는데 종류마다 다르다고 한다.

 

출처

대충 이런 느낌으로 버섯 밑을 보는 듯

 

이 버섯의 밑은 스폰지같이 생겼다.

 

가이드 분은 걷다가 신기한 버섯이 부러져있는 것을 발견하곤 나중에 그림을 그리려는 건지 비닐봉지로 바로 채집했다. 등산도 시작하지 않았는데 난 버섯에 대한 호기심에 가득 차서 땅을 쳐다보면서 버섯이 어디 있나 찾기 시작했다. 버섯은 생각보다 눈에 띄지 않았다. 목적지로 향하는 길도 상당히 가팔라서 버섯만 찾으며 걸을 수도 없었다.

 

급경사가 좀 있는 곳이 몇 군데 있었다.
내가 발견한 첫 버섯! 밑이 스폰지 모양이다.

 

걷다가 우연히 반쯤 부러진 버섯을 발견하고 가이드 분에게 보여드렸다. 그분은 내가 버섯에 흥미를 갖게 된 것에 상당히 흡족해하시며 자세히 설명을 해주셨다. 버섯은 부러져서 벌써 초록색으로 변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또 다른 버섯도 발견!

 

이 때는 무슨 산삼 발견한 듯 흥분했더랬지

 

부서진 독버섯이어도 마냥 신기하게만 느껴졌다. 그렇게 계속 버섯을 찾으며 걷다 보니 꽤 금방 목적지인 Mermaids Cave 등산로 입구에 도착하게 되었다.

 

도로가 있어서 여기까지 차로 바로 올 수도 있음 ㅋㅋ

 

인어 동굴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바로 비밀스러운 풍경이 펼쳐졌다. 이때까지만 해도 동굴이라고 하면 내 머릿속에는 좁은 입구가 있고 그 안에 방 같은 공간이 있거나 터널이 있어서 어둠 속으로 계속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했었다.

여기가 주택가에서 걸어서 1시간 거리라니

 

계속 밑으로 내려가는 길이 나왔다

 

가파른 계단을 내려가서 동굴에 도착했다

 

이런 곳이 주택가에서 1시간 거리에 있다니! 게다가 아무도 없었다

 

 

Mermaids Cave는 내가 예상했던 방같이 생긴 동굴이 아니라 큰 암석의 일부가 움푹 파여서 사방이 돌로 둘러싸인 공간이었다.

가이드분이 Mad Max 3을 여기서 촬영했다고 하는데 영화 속에서는 사람들이 모이는 광장 같은 곳으로 사용된 듯했다. 하지만 가이드분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이 영화를 보지 않아서 모두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둘러봤다.

 

출처

매드 맥스 3편의 세트장을 지은 곳이라고 한다

 

일단 목적지에 도착했으니 이제 자유시간을 가질 차례였다. 1시간 반 후쯤은 12시에 다시 동굴 앞에서 모이기로 하고 우리 일행은 주변을 뿔뿔이 흩어졌다. 난 당연히(?) 버섯을 찾기 위해 숲 속을 헤매기 시작했다.

 

나무들이 키가 엄청 컸다. 몇 살일까?

 

울창한 숲 속을 헤매는 동안 길을 잃을까 봐 조금 걱정이 되었는데 버섯을 발견할 때마다 그 걱정이 점점 옅어져 갔다.

각도를 바꿔서 사진을 찍으면서 버섯 밑의 모양도 확인해 보고, 버섯의 귀여움에 점점 빠져들기 시작했다.

버섯이 참 좋은 피사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어떤 각도로 찍어도 귀여워

 

잘 살펴보니 작은 버섯들이 여기저기 있었다
숲 속에 떨어진 새 깃털을 줍는 것은 불법이라고 한다. 새들이 둥지를 지을 때 필요한 재료이기 때문에 그냥 두는게 좋다고

 

꽤 다양한 버섯들을 발견했는데 그중에서 제일 신기했던 것은 산호초같이 무더기로 자라난 버섯들이었다. 나중에 가이드분께 물어보니 야광버섯이라고 했다. 밤에 볼 수 없는 게 아쉬웠다.

 

밤에 빛을 내는 야광버섯! 왠지 맛있을 것 같지만 독버섯이다

 

나무에 자라는 고드름같은 버섯. 하나인건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숲 속을 헤매다가 앉아서 좀 쉬고 보니 약속된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동굴로 돌아가려고 하는데 아무리 가도 동굴이 나오지 않았다. 다행히 전에 신기하게 생겨서 사진을 찍었던 나무를 다시 지나치게 되어서 겨우 길을 찾을 수 있었다.

나무야 고마워

 

다행히 약속된 시간에 일행과 합류할 수 있었다. 가이드분은 전에 말한 대로 버섯 그림을 그리고 있었는데 꽤 잘 그리셨다. 시작한 지 몇 년 되지 않았다고 하는데 꼭 몇십 년 식물만 그린 것 같은 솜씨였다. 나 말고도 버섯을 찾으며 시간을 보낸 분들이 몇 명 있어서인지 버섯애호가인 가이드분은 상당히 기뻐하시는 눈치였다. 버섯교의 신도들이 늘어난 것을 좋아하는 교주 같은 느낌이랄까? 버섯도감을 보여주시면서 버섯에 관한 강의를 어디서 들을 수 있는지 정보를 알려주셨다. 상당히 기분이 좋으신 듯했다 ㅋㅋ

버섯도감을 인터넷에서 다운받을 수 있다.

 

이런 지형도 Cave라고 부르기도 하는구나

 

 

돌아가는 길은 가파랐지만 멀지 않아서 괜찮았다.

 

등산로에서 다시 기차역으로 걸어가는 길에 가이드분의 이야기를 더 들을 수 있었다. 일에 지쳐서 일 년만 안식년을 갖자고 했던 것이 지금은 5년째로 계속 연장 중이시라고 한다. 그렇게 할 수 있는 경제력이 부러웠다. 우연히 식물 그리기 워크숍에 갔다가 자신이 그림을 꽤 잘 그린다는 걸 알게 되고 버섯 그리기를 시작하셨다고 한다. 어찌어찌 이야기는 사물과 자연을 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개인차가 있고 특별하다는 주제로 넘어갔는데, 가족과 노르웨이에서 오로라를 보게 되었는데 자신의 눈에만 보이지 않아서 자신이 특수한 종류의 색맹인 것을 알게 되었다는 신기한 이야기도 듣게 되었다. 오로라가 찍힌 비디오에서는 오로라가 보였는데 자신에게는 회색으로 보여서 혹시 몰래카메라인가 의심할 정도였다고. 어쩌면 이분의 눈에는 버섯들이 다른 사람들의 눈에서보다 더 특별하고 귀엽게 보이는지도 모르겠다. 그분과 보낸 몇 시간 동안 버섯에 대한 열정에 전염되어 버린 나는 그 후로 간 몇 차례의 하이킹에서도 버섯만 찾아다니게 되어버렸다. 이상 버섯교에 입교한 신도의 간증문이었습니다.

 

 

P.S. 버섯도감은 여기서 다운로드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