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말부터 'The Chosen'이라는 미드를 재미있게 보고 있다. 제목을 번역하면 '선택받은 자(들)' 정도 되려나. 내용은 무려 예수님의 마지막 3년을 성경과 기타 자료를 바탕으로 극화한 것! 아무리 어렸을 때부터 교회를 다녀서 성경에 대한 지식이 어느 정도 있다고 해도, 예수님에 대한 미드가 과연 재미있을까? 처음 누군가 추천해 주었을 때는 솔직히 그리 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예수님, 죄송합니다! 그런데 몇 번 정도 다른 경로로 재밌다는 감상을 접하고 나서야 시청하기 시작했는데, 예상외로 빠져들고 말았다. 성경 속의 인물들의 인간적인 모습, 의외의 설정과 성경 속의 이야기가 맞물려서 반전을 만들어내는 극의 진행이 흥미진진했다. 무엇보다 성스럽고 어려운 대상이었을 것만 같은 예수님이 상당히 친근하고 소탈하게 묘사되어서 신선했다. 이 미드는 넷플릭스에 첫 시즌이 공개되고, 2-3 시즌은 무료로 여기서 볼 수 있다.
출처 - The Chosen Season 1 Episode 5
출처 - The Chosen Season 1 Episode 5
여러 가지 재밌는 포인트가 있지만 내 눈을 사로잡은 것은 예수님의 가방이다. 예수님이 여러 지방을 제자들과 여행하는 장면이 자주 나오는데 다른 제자들은 천으로 된 가방을 가지고 다니는 반면, 예수님은 등에 조금 더 특별한 가방을 메고 다닌다.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걸까? 왜 저런 멋진 가죽가방을 예수님만 가지고 다니시는 거지?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예수님 가방 사고 싶다는 글만 있고 그 가방에 대한 사연은 찾아볼 수 없다. 아, 그 가방을 제작한 공방에서 가방 및 다른 소품들을 무료로 제작해서 감독님이 감동해서 울었다는 내용의 비디오는 있더라.
이 가죽 가방에서 알 수 있듯이, 전혀 예상치 못한 설정, 등장인물의 관계도, 수준 높은 연출과 촬영으로 종교적인 드라마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고 그저 재미있어서 계속 보게 된다. 예수님의 가방 다음으로 날 놀라게 한 것은 세리 마태. 마태복음의 첫 부분에 보면 누가 누구를 낳고, 또 그가 누구를 낳고 가 계속 반복되어서 지루한 부분이 있는데, 그것을 기록한 마태가 사실은 고기능 자페 스펙트럼이었다는 설정이 날 놀라게 했다. 물론 극 중에 그가 아스퍼거스 증후군을 갖고 있다고 직접적으로 언급되진 않지만 (당연히 당시에 그런 병명이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그의 반복되는 행동, 사회성 결여, 공감능력의 부재가 현대에서는 딱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사람을 연상시킨다. 사소한 디테일까지 놓치지 않고 다른 사람의 감정에 구애받지 않으니 사실대로 본 것만 기록하는 마태이기 때문에 그런 마태복음이 써졌다는 드라마의 해석이 참 그럴듯하고, 이런 상상을 한 작가진이 정말 대단하다는 말 밖에 할 수 없다.
아무튼, 요즘 시즌 4가 나오기를 눈 빠지게 기다리는 중인데, 미국에서 영화관에서 개봉을 한 후 무료로 풀릴 예정이라고 하니 시간이 좀 더 걸릴 것 같다. 폭력과 선정성이 넘치는 많은 드라마들 중에서 사막 속의 오아시스같이 마음 편하게 볼 수 있는 드라마를 찾아서 참 좋다. 다 보고 나면 성경을 더 읽어보고 싶은 마음마저 생기는 신기한 드라마. 성경은 읽기 귀찮지만 내용이 궁금한 사람이나, 나처럼 무늬만 크리스천인 사람들에게 강력 추천한다.
*추가 - 시즌 5의 메이킹 이미지가 떴는데 예수님의 가방이 크로스백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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