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꼭 영화관에서 보고 싶은 영화가 생겨서 부모님까지 끌고 영화관을 향했다. 일면식도 없지만 한국계 감독이라는 이유로 일종의 '응원'을 핑계 삼아서 '트위스터스'를 보고 왔다. 자연재해나 세계 종말류의 영화를 좋아하는데, 큰 화면에서 대형 스피커에서 나오는 음향효과에 압도당하는 느낌이 좋기 때문이다. 영화가 2시간 정도 된다는 것 외의 정보는 찾아보지 않고 갔는데, 과연 어떤 이야기로 2시간을 채워갈지 궁금증이 앞섰다.
간단한 줄거리: 박사과정을 밟던 케이트는 자신의 이론을 실험해 보기 위해 친구들의 도움을 받으며 토네이도 한가운데에 차를 몰고 들어간다. 토네이도가 예상보다 큰 규모로 변하면서 케이트 일행은 큰 사고를 당하고 인명피해를 겪는다. 그 충격으로 고향을 떠나서 뉴욕에 이주한 케이트에게 과거의 사고 당시 일행이었던 하비가 찾아와서 새로운 프로젝트를 같이 하자고 부탁하고 케이트는 5년 만에 다시 토네이도의 주위를 맴돌게 되면서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토네이도 길들이기를 시도한다.
좋았던 점들 몇 가지:
- 여자 주인공이 매력적이다. 처음 보는 배우인데, 역할이 이공계 날씨변태 천재인 만큼, 지적인 분위기의 배우를 캐스팅하려 고심한 것 같다. 지적이면서도 미인이라 주인공을 둘러싼 미묘한 삼각관계가 외모만으로도 설득이 된다. 물론 자신의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고 토네이도로부터 사람들을 구하려는 용감하고 영리한 캐릭터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이긴 하다.
- 남자 중 인공이 입체적이라 좋다. 그저 마초적이기만 한 유튜버가 아니라 열정과 인류애를 가지고 자신의 삶을 즐기는 삶의 방식이 개성적이었다. 처음에는 얄미웠는데 나중에는 그를 점점 멋지게 돋보이게 하는 극의 전개가 재미있었다.
- 남자 주인공이 타고 다니는 특수한 트럭이 사실 영화의 숨겨진 주인공이었다. 바닥에 드릴을 뚫어서 차가 뒤집히지 않게 고정하는 아이디어가 신기했다. 진짜 사용되고 있는 장치인지 궁금하다.
- 토네이도가 불어올 때 시민들을 대피시키고 모르는 사람끼리도 서로 돕는 모습에서 인류애를 느꼈다. (하지만 꼭 차에서 나오라고 해도 안 나와서 차와 통째로 바람에 날려가는 사람들이 꼭 나온다 ㅠㅠ)
- 전문적인 기상 용어가 많이 나와서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큰 불편 없이 영화의 흐름을 이해할 수 있게 편집이 잘 되었다. 기상학에 흥미가 생겨서 앞으로 좀 더 검색해보고 싶을 정도다. 내가 어렸을 때 이 영화를 봤다면 전공이 바뀌었을지도 모르겠다.
- 여기서부터는 스포일러:
영화의 클라이맥스이자 마지막 토네이도가 나오는 장면에서 시민들은 낡은 영화관으로 대피를 한다. 영화관에는 대피소가 없어서 모두 관객석 의자를 붙잡고 바람에 휩쓸리지 않도록 안간힘을 쓰지만 낡은 의자들은 송두리째 뽑혀나가고 영화관 벽은 점점 허물어진다. 꽤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운 결말을 맞게 된다. 하지만 케이트의 무모한 용기 덕분에 토네이도가 사라지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붕이 날아간 영화관에서 간신히 살아남는다. 이 부분은 현재 영화 산업이 국면 한 현실을 상징하는 것 같아서 흥미로웠다. 넷플릭스와 다른 OTT의 등장으로 기존의 낡은 영화시장은 허물어지고 큰 피해를 입지만, 어찌어찌 끝까지 버티어내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다는 희망적인 은유인 것 같이 보였다. 그게 아니면 사람들이 대피하는 장소가 하필 영과 관일 필요가 없었을 듯.
- 두 시간이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퇴근 후 피곤한 몸을 이끌고 영화관에 향했음에도, 영화에 대한 기대감 때문에 오랜만에 기분 좋은 긴장감을 느꼈다. 영화 중간중간에 깜짝 놀라는 장면이 많이 나와서 몇 번이나 나도 모르게 소리를 내며 몸을 움찔거렸다. 내가 원래 이렇게 잘 놀라는 편이었나 싶을 정도였다.
- 여기서부터는 결말 스포일러:
처음에는 얄밉게 느껴지던 토네이도 사냥꾼인 타일러의 조력으로 케이트는 자신이 전에 연구하던 이론을 다시 실험해 보기 위해 토네이도를 쫓기 시작한다. 그러던 중 토네이도가 작은 마을을 향하게 되자, 그들은 실험을 포기하고 사람들을 대피시키기 위해 마을로 간다. 낡은 영화관으로 사람들을 대피시키던 중 케이트는 사라지는데 알고 보니 혼자서 트럭을 몰고 토네이도를 향했던 것. 트럭은 토네이도의 위력에 당하지 못하고 뒤집히게 되지만 다행히 케이트의 실험용 화학물질들이 예상대로 작동을 해서 습기를 흡수하고 토네이도를 약화시켜서 인명피해를 줄이게 된다. 며칠 후 케이트는 다시 뉴욕으로 돌아가는데 친구였던 하비가 다시 돌아오라고 말하지만 정확 안 대답을 하지 않는다. 마침 타일러도 불법주차를 하고 공항으로 들어서는데 돌아올 거냐는 타일러의 질문에 케이트는 '느낌이 들면 쫓아야죠'라고 말한다. 대충 '나 좋아하면 잡아라'라는 뜻인 듯? 결국 타일러는 비행기를 타려는 케이트를 쫓아가고 둘은 미소를 교환한다. 해피엔딩을 암시하며 영화는 끝이 난다.
- 영화에 약간의 로맨스가 있으면서도 그걸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 절묘한 균형감이 좋았다. 청춘, 열정, 인류애, 야망, 학구열 등, 여러 주제를 부담스럽지 않게 잘 버무려 놓았다.
- 멋진 여성 캐릭터들이 나온 점이 맘에 들었다. 특히 드론 조종하는 여자가 호탕하고 멋졌다. 그밖에 조연들도 각자 개성이 뚜렷해서 좋았음.
아쉬웠던 점들 몇 가지:
- 영화관의 문제인 것 같은데 음향이 생각보다 낮아서 배우들의 대사가 답답하게 들렸다. 좀 더 음량이 높았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다. 어쩌면 영화관의 앞자리에 앉아서 스피커와의 거리가 멀었는지도 모르겠다.
- 바람 소리의 음향을 마치 괴물이나 큰 동물의 울음소리와 비슷하게 변조한 것 같은데, 그 정도가 좀 과해서 인위적으로 들렸다. 바람을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같이 표현하고 싶은 마음은 알겠지만 그게 꼭 진짜 괴물이 낼만한 소리일 필요는 없지 않나?
- 음악의 편집이 캐릭터의 감정에 너무 가깝게 따라가서 아쉬웠다. 방금 전까지는 남자 주인공의 기분을 표현하는 컨트리 뮤직이었다가 토네이도가 가까이 다가오자 급하게 오케스트라의 현악기가 서정적인 음악을 연주한다. 할리우드 재난영화이긴 하지만 일종의 통일감이 느껴지는 세련된 OST를 기대한 것이 내 잘못이었을까? 물론 시각적인 부분이 음악의 아쉬움을 채워줘서 전체적인 재미는 부족하지 않았다.
영화를 같이 본 아빠는 크게 만족하셨고, 엄마는 별 감흥은 없으셨지만 그럭저럭 영화관 나들이가 즐거우셨던 것 같다. 나는 오랜만에 큰 화면에서 2시간 동안 현실도피를 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 이런 류의 재난 영화는 다 보고 나면 평범한 일상이 소중하게 여겨지는 의외의 장점이 있다. 이렇게 또 한동안 일상을 유지할 에너지를 얻어간다.
*검색 유입어 중에 '트위스터스의 뜻'이 보여서 덧붙여본다. 전편이 Twister/회오리바람 (단수) 이었으니 후속작인 2편은 Twisters/회오리바람들(복수)로 지은 듯. 극 중에 쌍둥이(?) 토네이도가 잠깐 나오기도 한다. 제목 때문에 그 쌍둥이 토네이도가 최종 보스인 줄 알았지만 아니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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