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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

Moonlight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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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기간 동안 '김혜리의 필름클럽'이라는 팟캐스트를 꽤 많이 들었다. 그전에도 간간히 듣긴 했는데, 이번에는 집안일을 하면서 몇 에피소드를 연거푸 듣다 보니 약간 중독상태까지 이르렀다. 그렇게 연속재생으로 듣고 있다가 갑자기 일시정지 버튼을 누르게 되었는데, 바로 'Moonlight'라는 영화가 보고 싶어 졌기 때문이었다. 다른 영화들에 대해서 들을 때는 줄거리 묘사와 해설만으로도 마치 영화를 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는데, 이 영화만은 꼭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내 고양이의 이름이 'Moonlight'라는 점이 작용을 한 것 같고, (나는 집에서는 달빛이라고 부르지만, 영어로 대화할 때는 Moonlight라고 부름), 호주 방송국인 SBS on Demand무료로 볼 수 있어서이기도 하다. 다행히 마침 3주 동안 볼 수 있는 기간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오래전 포스터를 처음 보았을 때 내가 상상했던 줄거리와는 확연히 다른 내용에 궁금증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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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는 위키피디아

 

어렴풋이 오스카상을 수상한 작품이라는 것만 알았지만 이상하게도 당시에는 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었다. 그 이유는 아마도 흑인이 주인공인 영화에서 다루는 무거운 주제들 때문이리라. 마음이 힘들 때는 밝고 가벼운 영화들만 찾게 되는데 아마도 이 영화가 개봉을 했을 2016년 즈음의 난 그리 행복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마약중독자인 어머니의 보살핌을 받지 못하며 살고 있는 Chiron은 우연히 마약거래상인 Juan의 친절을 접하게 되고 정서적으로 의지하게 된다. 왜소한 외모 때문에 또래에게 괴롭힘을 받는 힘든 일상 속에서 Juan과 절친 Kevin은 그가 작은 안정을 느낄 수 있는 유일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안타까운 상황들 때문에 Chiron은 궁지에 내몰리게 되고 아무에게도 마음을 열지 않는 외로운 성인으로 성장한다. 그러다가 다시 Kevin과 만나게 되며 그의 삶에 작은 빛이 들어선다.

 

몇 가지 느낀 점:

- 강렬한 포스터에서 예상했던 것보다 줄거리가 잔잔해서 놀랐다. 아니면 자극적인 영화들에 너무 익숙해져서 여러 가지 면으로 절제된 이 영화가 심심하게 느껴졌던 것일 수도 있다. 대사도 많지 않고, 많은 사건들이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주인공의 감정들은 깊고, 아프게 다가온다.

- 포스터를 이제야 자세히 보니, 주인공을 연기한 세 배우의 얼굴들이 모여서 하나의 얼굴을 이루고 있다. 어떻게 이렇게 닮은 배우들을 구한 건지 신기하다.

- 2016년에 개봉했을 때 이 영화를 보았으면 어떤 느낌이었을까? 당시와는 다르게 여러 성정체성이 인정되고 있는 현재에 이 영화를 보았기 때문에 주인공의 심리적 갈등을 충분히 공감하지 못한 것 같다.

- 김혜리 기자님이 감독과 원작자의 성장 배경을 재미있게 풀어줘서, 오히려 그쪽에 더 흥미가 갔다. 게다가 아카데미 작품상중 인플레이션을 감안했을 때 최저 예산으로 수상을 했다고 하니, 굉장히 효율적인 영화임은 틀림이 없다. 여러 평론가들이 극찬을 했기도 하다. 하지만 난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 이건 단지 나의 영화적 이해도가 낮아서이거나, 혹은 개봉당시에 보지 않았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 제목이 'Moonlight'인 이유가 Juan의 대사에 등장한다. 어떤 할머니가 흑인은 달빛 아래서 보면 파랗다고, 달빛 아래서는 검지 않다고 말해줬다고 한다. 약간의 희망의 빛이 있다면, 검은 피부가 의미하는 인생의 고난들이 희석된다는 의미일까?

 

소소한 결심:

- 영화는 가능하면 개봉하고 빠른 시일 내로 보자. 그때에만 느낄 수 있는 감동이 있다. 시절이 변하면 다른 감동을 맛볼 수 있으므로 일단 보고 나중에 또 보자.

- 영화 팟캐스트로 해석만 듣고 정작 영화는 안 보는 것이 과연 괜찮은 것인지 고민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