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사는 곳으로 독립을 한지도 어느새 4년이 다 되어간다. 이사를 오기 전부터 나의 인테리어 방침은 두 가지로 정해져 있었다.
- 미니멀리즘: 가구를 최소한으로 놓고 색도 2-3가지로 제한한다.
- 플랜테리어: 큰 유리가 있는 거실에 식물원을 만든다.
그렇다. 나의 꿈은 원대했다. 그건 곧 내가 식물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지금 사는 집은 호주의 평균집 치고는 작은 편인데 부엌 뒤로 세탁실과 거실이 나중에 증축되었다. 새로 생긴 거실은 보통의 벽이 아닌 담장용 패널인데, 전기 공사가 여의치 않았는지 에어컨이나 천장에 다는 선풍기가 달려있지 않다. 그 말인즉슨, 여름에는 완전 찜통이다. 하지만 좋게 생각하면 열대우림 같은 식물원을 만들기에는 적당한 환경이기도 하다.
집에 식물원이 있으면 얼마나 멋질까? 마침 엄마가 상당한 개수의 화분을 보유하고 계셔서 본가에 갈 때마다 한 두 개씩 화분을 받아서 집에 가져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집 안에 초록색이 점점 늘어나는 게 참 뿌듯했다. 플랜테리어야말로 자연친화적인 최고의 인테리어라고 찬양(?)하며 비어있는 벽들이 크고 작은 식물들로 가득 찰 그날을 꿈꾸며 지냈다. 그런데, 화분의 개수가 늘어나면서, 여기저기 시드는 화분이 생기기 시작하니, 식물을 관리하는데 드는 시간이 점점 늘어가기 시작했다. 화분에 물을 주는 습관이 정착하기까지 나 때문에 목말라했을 화분들에게 정말 미안할 따름이다. 바쁜 일상 속에서 며칠 화분에 물을 주는 것을 잊고 지내면 갈색으로 끝이 타들어간 잎들이 눈에 띄고, 직사광선에 너무 가깝거나, 또는 너무 멀어서 시들은 화분들에게 최적의 장소를 찾아주기 위해 여기로 옮겼다가 또 저기로 옮겨보는 시행착오도 겪었다. 그러다가 깨달았다. 아, 식물원은 도저히 무리겠구나. 식물이 가득한 공간을 관리할 시간과 체력이 내게는 없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요즘은 화분의 개수를 10개로 제한해서,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최대한의 식물들을, 최소한의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식물생활을 연명해나가고 있다. 저녁때 흙에 물기가 있는지 확인하고, 말라있으면 물을 주는데, 이것도 가끔은 잊어버리고 그다음 날 아침에 주기도 한다. 자동 급수 시스템을 설치하지 않는 이상 화분 10개가 나의 한계치임을 매일 절감하고 있다.
시드니에서 코로나로 록다운을 두 번이나 겪는 동안, 화단에 토마토를 심었었다. 생각보다 잘 자라서, 여름 내내 매일 토마토를 먹을 수 있었던 좋은 기억이 있다. 작년에는 햇볕이 잘 들지 않는 곳에 심어서 그런지 거의 수확을 못했었기에, 올해 다시 도전에 보려고 벼르는 중이다. 내가 키운 야채가 씨앗에서 모종으로 무럭무럭 자라고, 또 열매까지 맺는 그 과정을 하루하루 지켜보는 기쁨이 상당히 크다. 그 기쁨이란 게, 단순히 기분만 좋은 게 아니라, 자연의 신비를 경험하는 종교적인 체험에 가깝다. 출산경험이 없는 내가 유일하게 맛볼 수 있는, 생명을 창조하는 느낌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키운 채소만으로 자급자족을 하고 싶다는 막연한 꿈이 있는데, 그렇게 되려면 아마 하루에 몇 시간은 밭일에 투자를 해야 할 것이다. 지극히 게으른 지금의 나에겐 불가능한 일이다. 매년 한 가지씩 가짓수를 늘려가면 언젠가는 가능하게 될까? 어떤 작은 기쁨일지라도, 끊임없는 노력이 들어간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비록 지금은 노력과 체력을 최소한으로 소비하고 있지만, 점점 아주 조금씩 부지런해져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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