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들은 술을, 커피를, 담배를 끊으려고 해도 끊지 못하고, 난 일본 애니메이션을 보는 것을 끊지 못하고 있다. 노력도 해보고, 얼마동안은 재미있는 작품이 없기도 했지만 어느새 다시 이틀에 한 번은 애니를 찾아보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하, 이러다 진짜 할머니가 돼도 애니를 보겠다는 나의 오랜 꿈(?)이 이루어질 기세이다. 요새 보고 있는 애니 몇 편을 기록해 둔다.
1. 푸른 상자 (아오노 하코/Blue Box)
제목의 의미는 아직 이해하고 있지 못하는 '아오노 하코'. 고등학교 1학년 남학생이 2학년 선배를 짝사랑하는 이야기인데, 남학생은 배드민턴, 선배는 농구에 진심이다. 둘 다 전국고교대항전에 나가보려고 열심히 노력하는데, 둘의 어머니가 고교 동창인 인연으로, 남학생의 집에 여학생이 하숙을 하게 되면서 둘은 급속도로 가까워진다. 처음에는 짝사랑인 줄 알았는데 점점 미요한 기류가 흐르고, 둘의 사이를 응원하던 남학생의 소꿉친구인 체조선수 여학생이 자신이 질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되며 본격 삼각관계가 시작된다. 스포츠에 열심인 학생들을 보는 게 신선하기도 하고 (수험생활에 찌든 한국 학생들과 너무 비교된다),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이 절제되고 순수해서 치유받는 느낌이 든다. 같은 학교에 세 명이나 스포츠 유망주가 있고 또 그들이 삼각관계라는 게 비현실적이긴 하지만, 앞으로의 전개가 기대되어서 매주 찾아보고 있다.
2. 내세에는 남남이 좋겠어 (来世は他人がいい)
아무 사전정보 없이 그림체가 특이해서 보기 시작했는데 내용도 특이하다. 야쿠자 집안끼리의 사정으로 정략 약혼(?)을 해서 1년을 버텨야 하는 상황이다. 처음에는 남자가 여자를 극도록 싫어하다가 갑자기 여자가 자신의 신장(?)을 팔아서 돈을 마련하는 패기를 보이자 여자에게 반하게 된다. 하지만 남자는 뼛속까지 야쿠자이고 여자관계도 복잡하고 (고등학생인데) 여자는 남자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크게 상관하지 않고 1년만 버티고 고향으로 돌아갈 생각만 한다. 하지만 꾸준히 그녀를 배려하는 그의 모습에 여자는 서서히 마음을 열게 되는데, 아마도 앞으로 좋아하게 될 것 같다. 집안이 집안인만큼 험한 일에 연루되기도 하고, 주변인물들도 평범하지 않아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예상하기 힘들다. 여주인공의 시원시원한 성격과 칸사이 억양이 매력적이어서 챙겨보는 중.
3. 결혼한다는 게, 정말인가요 (結婚するって、本当ですか)
여행사에 근무하는 남녀 주인공들은 극도로 내성적이지만 성실하게 일하고 자기만의 생활을 즐기며 살고 있다. 그러던 중 미혼인 사원은 1년 후에 알래스카 오지에 발령을 받게 된다는 공지가 나오고, 두 사람은 발령을 받지 않기 위해 위장 결혼 발표를 한다. 주변인들을 속이기 위해서 가짜 데이트를 하면서 가짜 연애사를 만들고, 남자의 고향까지 내려가게 되는데, 점점 서로에게 끌리게 된다는 뻔한 이야기. 사실 처음에는 서로 부끄러워하는 주인공들이 귀여워서 보다가, 점점 대담해지는 모습에 좀 흥미를 잃긴 했다. 하지만 둘의 거짓말이 언제 들통날지 아슬아슬한 긴장감이 있어서 마지막까지 보긴 할 것 같다.
이렇게 쓰다 보니 깨달은 몇 가지:
- 주인공들 이름이 생각이 안 난다! 너무 대충 보는 건가?
- 현재 시점 반 정도 본 것 같은데 과연 이 세작품을 끝까지 다 볼 것인가. 나중에 업데이트해 보자.
- 지금까지도 인생 애니라고 생각하는 작품들은 주제가와 엔딩곡도 다 듣는 편인데, 이번 분기에는 귀에 꽂히는 주제가가 없어서 아쉽다.
- 세 편다 연애물이네. 현실에서의 결핍을 애니에서 충족시키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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