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와보니 고양이 한 마리가 집 앞에 앉아있다. 내가 키우는 달빛이인가하고 자세히 보니 옆집 고양이 루시이다.
루시는 옆집 아줌마의 아들이 키우다가 못 키우게 돼서 아줌마가 맡게 된 고양이이다. 옆집 아줌마를 엄청 좋아해서 아줌마가 집 앞에 앉아있으면 같이 앉아있고, 아줌마가 차를 타면 배웅을 해준다. 처음에는 아줌마를 졸졸 좇아 다니는 게 너무 부러워서 어쩜 저런 고양이가 있나 감탄을 했었다. 게다가 내가 아줌마랑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 내 옆에 와서 친한 척을 하고 내가 만져도 가만히 있는다. 아주 귀엽고 가는 목소리로 야옹하고 말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아줌마가 없을 때 단둘이 마주치면 마치 딴 고양이가 돼버린다. 내가 아는 척을 하면 하악하며 뱀소리를 내고, 손을 내밀었다가 할퀸 적도 있다. 이런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니 그 후에는 루시가 무서워서 피해 다니고 있다. 자기가 서열이 더 높다고 생각하는 걸까? 요즘에는 우리 집 앞이 마치 자기 집인 양 도도하게 앉아있는다. 우리 집 고양이 두 마리랑도 사이가 안 좋은지 같이 노는 걸 본 적이 없고 가끔 먼 거리에서 서로를 노려보는 장면을 목격한다. 게다가 뒷 문이 열려있는 틈을 타서 우리 집 안에 들어와서 고양이 밥을 훔쳐먹는 것도 여러 번 봤다. 하지만 이걸 옆 집에 하소연한다고 될 일이 아니라, 루시만 보면 너무 얄밉다.
옆집 고양이랑 친하게 지내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 집 고양이들이랑 친구도 하고, 얼마나 동화책 같은 설정인가? 하지만 현실은 녹녹지 않다. 내가 가라고 손짓을 해도 꿈쩍도 하지 않고, 나를 사납게 노려본다. 얼마 전에 길고양이한테 심하게 물리고 난 후로는 내가 키우는 고양이들을 포함해서, 모든 고양이들이 날 공격할 수도 있다는 약간의 공포심을 지니고 산다. 아까도 루시가 나한테 뛰어들어서 날 할퀴는 상상을 했다. 이런 게 트라우마라는 건가? 아무튼 집 앞에 앉아있는 루시의 사진을 여러 장 찍으며 생각했다. 네가 오늘의 블로그 글감이 되어줘야겠다. 나의 소심한 복수가 완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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