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내 집 장만을 하면서, 내가 옮길 수 있는 물건만 들이기로 결심을 했었다. 유학시절, 큰 중고 가구와 가전을 샀다가 적지 않은 비용을 들여서 처리를 했던 기억 때문일까? 누군가에게 의지하지 않고 물건을 옮길 수 있는 지의 여부는, 혼자 사는 나에게 중요한 사항이다. 말도 안 된다며 후회할 짓 하지 말라던 부모님의 만류가 있었지만 최소한 처음에는 내 맘대로 해보고 싶은 마음이 컸다. 처음에는 고생하더라도 적응하면 될 것 같았고, 정말 힘들다면 나중에 구입하면 될 일이었다. 그래서 세탁기는 사지 않고 손빨래를 하기로 결정했고 10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없이 살고 있다. 소형 세탁기를 구입하려는 생각이 있긴 하지만, 아마도 손빨래가 힘들어질 내년 겨울에나 사게 될 것 같다.
하지만 냉장고는 세탁기처럼 쉽게 결정할 수가 없었다. 외식이 비싼 시드니에서, 대출금을 갚으면서 살려면 집밥이 필수이기 때문이다. 가능하면 최고로 작은 냉장고, 내가 옮길 수 있는 냉장고를 구입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들고 차에 싣을 수 있는 무게는 12-14kg 정도이다. 14kg인 접이식 자전거를 차에 싣을 때, 약간 힘이 달리기 때문에 그 이상은 무리이다. 하지만 이 정도 무게의 냉장고는 정말 작은, 음료수나 화장품용 냉장고뿐이었다. 하는 수 없이 최소한의 냉장과 냉동 기능이 있는 냉장고를 선택해야 했다. 그중에 제일 가벼운 냉장고라면 밑에 깔개를 깔거나, 트롤리를 이용하면 움직일 수는 있겠지. 아쉬웠지만, 냉장고가 없을 때 발생하는 불편과 추가적 지출을 생각하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러다가 발견한 게 어느 바 프리지 (bar fridge)였다. 주방용은 아니고, 바나 라운지에서 술이나 음료수 용으로 나온 작은 사이즈의 냉장고였다. 리뷰를 보니 혼자 사는 사람들이 꽤 구입한 듯했다. 플라스틱 액세서리가 내구성이 떨어져서 잘 부서진다는 내용도 있었지만, 무게가 28kg로 검색해본 것 중에서 가장 가벼웠다. 냉장 128리터, 냉동 22리터로, 솔직히 더 작았으면 싶었지만, 가격과 무게를 고려해서 구입하기로 결정했다. 에너지 효율성은 투 도어가 낫다는데, 투 도어 바 프리지는 찾기 힘들었고, 싱글 도어가 디자인이 깔끔해서 맘에 들었다.
가로 52센티, 폭 54센티에 높이는 114센티이다. 나보다 키가 작은 냉장고라서 참 좋다. 밑에 깔개를 넣고 밀면 움직일 수도 있지만, 냉장고 위치를 바꿀 일이 없다 보니 나중에 처분할 때 집 앞에 갖다 놓을 때는 트롤리를 쓰던지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가능하다면 내 체력을 키워서 이런 것도 번쩍번쩍 들 수 있었으면 좋겠지만...
냉장고가 작아서 좋은 점 몇 가지:
- 냉동실이 작아서 냉동 음식을 넣고서 잊어버릴 염려가 없다.
- 냉동실 자리가 없어서 아이스크림을 구비해 놓을 수가 없으니 다이어트에 좋음-.-;;
- 냉장고 청소하기가 편하다.
- 식재료 파악하기가 수월하다 (하지만 다 먹지 못하고 썩혀버린 채소가 아예 없지는 않다 ㅠㅠ 이건 부지런함의 문제)
- 전기세가 (아마도) 적게 든다.
- 엄마가 반찬을 많이 주시려고 할 때, 거절하기 쉽다. (감사하지만 너무 많이 주심 ㅠㅠ)
냉장고가 작아서 안 좋은 점:
- 작은 냉장고는 에너지 효율성이 떨어진다. (에너지 효율성 별 다섯 중 세 개뿐)
- 아이스크림을 쟁여 놓을 수가 없다 ㅠㅠ
- 가격 대비 용량이 적다. (비슷한 가격에 더 용량이 크고 무거운 냉장고도 많음)
하루에 한두 번 요리를 하다 보니, 작은 냉장고라도 꽉 찰만큼 식재료가 있으면 다 먹지 못하게 된다. 이제는 요령이 생겨서 과일이나 야채도 약간 부족한 듯 사놓고 상하기 전에 다 먹어치운다. '냉장고 파먹기'가 생활화되어서, 냉장고가 꽤 비워져 있기 전까지 쇼핑을 하지 않는다. 장 보러 가는 걸 귀찮아하는 나로선 여러모로 좋은 선택인 듯. 11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후회 없이 잘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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