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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노을 (1)

일월 말, 이 집에 이삿짐을 옮겨주시던 아빠가 고양이를 봤다고 하셨다. 이년 전 먼 여행을 떠난 오스카와 같은 젖소 무늬의 턱시도 고양이라고 신기해하셨다. 아빠가 멀리서 찍은 사진만 보고 실제로는 보지 못했지만, 마당 한구석에 매일 고양이 밥을 가져다 놓기 시작했다. 오스카를 보낸 후에도 차마 버리지 못했던 고양이 사료를 주고 싶었다. 매일 밥그릇은 깨끗하게 비워져 있어서 고양이가 다녀갔다는 사실만 확인할 수 있었지만 그래도 좋았다. 오스카의 밥그릇에 밥을 담아주던 일상이 다시 돌아온 것 같아 마음이 찡했다. 그렇게 몇 개월이 지나 오스카가 남긴 사료가 다 떨어지고 나서도 고양이 사료를 계속 사기 시작했다. 어디 사는 고양이일까? 한두 번쯤 턱시도 고양이가 뒷집 마당에 있는 것을 본 것 같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마당에 앉아있는 고양이를 보았다. 턱시도 고양이가 아닌 다른 고양이어서 깜짝 놀랐고, 고양이가 너무 편해 보여서 한 번 더 놀랐다. 지금까지 밥을 먹던 게 너였니? 사진 찍은 날짜를 확인해보니 우리의 첫 만남은 6월 7일 저녁이었다. 해가 뉘엿뉘엿 지는 저녁, 서쪽 하늘이 보이는 마당에 고양이가 앉아있었다. 고양이를 더 가까이 보고 싶어 져서 밥그릇을 뒷마당 문이 있는 쪽으로 옮겨 보았다.

 

고양이가 도망갈까 봐 계단 위에서 밥을 먹는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았다. 오스카를 보내고, 텅 비었던 가슴 한편에 다른 고양이가 문을 두드렸다. 이렇게 매일 저녁마다 밥을 먹으러 오는 고양이를 '노을'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물론 그게 자기 이름인 줄은 꿈에도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