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이가 데려온 새끼 고양이는 노을이를 닮아서 아주 경계심이 많았다. 이제는 사회적 거리두기의 반경이 2미터에서 1.5미터 정도로 줄어든 노을이에 비해, 새끼 고양이는 나와 눈만 마주쳐도 화들짝 놀라서 계단 밑으로 총알같이 사라졌다. 하도 도망을 많이 가서 운동량이 너무 많은 건 아닌지 걱정이 될 정도. 하지만 노을이가 곁에 있으면 안심이 되는지 집 안 구경도 하고 밥도 잘 먹었다. 내가 없는 편이 맘 놓고 밥을 먹는 것 같아서 몇 번 자리를 비켜줬지만 , 계속 이러다간 영영 친해질 수 없을 것 같아서 내 얼굴을 자주 보여주기로 했다. 내가 자신을 해하지 않는 존재라는 걸 인식시켜주고 싶었다.
새끼 고양이는 노을이에 비교해서 확연히 길고양이 티가 났다. 노을이는 이웃에 주인이 있지 않을까 싶게 꽤 깔끔한 편인데, 새끼는 꼬질꼬질하고 많이 작다. 노을이와 늘 함께 있는 걸로 봐서 새끼인 것 같은데 노을이가 주인이 있다면 새끼 고양이도 함께 키우겠지?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녀석의 눈빛에는 경계심이 가득하다. 늘 허기지고, 무언가 결핍되어 보인다. 내 착각이면 좋으련만. 그러던 어느 오후, 난 또 한 번 놀라고 말았다.
노을이가 다른 새끼 고양이를 데리고 온 것이다! 햇살이와 비슷한 또래인 듯했지만 색깔은 전혀 달랐다. 노을이의 남편이 턱시도 고양이인가 싶었다. 역시나 얘도 경계심이 많은 녀석이었다.
다행히도 매탈남 동영상처럼 6마리는 아니구나. 두.. 두 마리 정도는 괜찮아. 사료비를 감당할 수 있어. 날 보고 도망가다가도 다시 돌아와서 허겁지겁 밥을 먹는 모습을 보면 안쓰러워서 사료를 자꾸 퍼주게 된다. 며칠은 굶은 것처럼 숨도 안 쉬고 밥을 먹는다.
이 녀석은 특이하게도 오른발로 사료를 앞으로 가져다가 먹는다. 발을 쓰는 고양이는 처음 보는데 똑똑한 건가? 정신없이 먹다가도 나의 시선이 느껴지면 또다시 줄행랑을 친다.
노을이의 새끼들에게 햇살과 달빛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노을이 질 무렵 나타난 노을이. 낮에 찾아온 햇살이. 밤에는 잘 안 보이는 달빛이. 나를 보면 도망가기 바쁘지만 그나마 록다운 중에 나를 방문해주는 유일한 생명체들이다. 어지간해선 외출을 하지 않는데, 고양이 사료가 떨어지면 어쩔 수 없이 쇼핑을 해야 한다. 사료가 떨어졌다고 어떻게 설명을 하냐고. 혹시나 내가 주는 사료가 하루에 먹는 유일한 끼니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하루라도 건너뛸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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