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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노을 (7) - 반전

햇살이와 달빛이는 영양상태가 좋아 보이지 않아서 개월 수를 짐작하기 힘들다. 아마도 크기에 비해서 개월 수가 많을 같다. 어쩌면 4-5개월? 그렇다면 어미가 또 새끼를 낳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는 의미이다. 노을이의 배는 꽤 불룩해 보이고, 여전히 밥도 많이 먹는다. 내가 밥을 주고 있긴 하지만, 노을이가 꽤 깔끔한 상태인 걸 보면 주인이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유난히 불룩해 보이는 노을이의 배

비록 만진 적도 없고, 내게 살갑게 다가오지는 않지만, 나를 어느 정도 신뢰하고 있기는 한 것 같다. 내가 자신을 해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정도는 있지 않을까?

 

배를 보여주기 시작한 노을이

최근 들어서 밥을 먹으러 오는 노을이가 나만 보면 계단 위에서 뒹굴며 배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계단 위에서 뒹굴면 밑으로 떨어지기도 하는데 그 모습이 우스우면서도 귀엽다. 나한테 재롱떠는 것 맞지? 노을이가 할 줄 아는 유일한 애정표현이 뒹구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감격스러웠다.

 

애정표현 맞지?

 

점점 내 곁이 편해보이는 노을이

길고양이가 배를 보여주면 무슨 의미인지 폭풍 검색한 결과, 가장 약한 부분인 배를 보여주는 건 공격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는 뜻이라고 했다. 내 노력을 알아주는구나. 그래, 아줌마는 널 해치지 않는다고. 몇 달 며 칠이 걸렸지만 내 마음이 통했다는 사실이 뭉클했다. 이런 노을이가 우리 집에 새끼를 낳는다면, 어찌 키우지 않을 수 있으랴. 할 수 없지, 뭐. 체념을 하며 노을이와 더 친해지만을 바라고 있었던 어느 날. 여느 때처럼 배를 보여주며 뒹구는 노을이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그. 것. 을 보고 말았다. 응? 어?? 너???

 

왜 지금까지 못 본 건지 의아할 정도로 크고 튼실한 그것이었다. 충격에 한동안 말문이 막혔다. 배 나온 건 뭐야? 새끼 데리고 다니는 건? 임신한 것 아니었어? 너 수컷이었니??? 충격이 가시고 나니, 이성을 되찾았다. 그래, 잘 된 거야. 우리 집에 새끼를 낳고 키워달라고 할 일은 없을 테니까. 하지만 보통 암컷이 새끼 데리고 다니는 것 아닌가? 얘가 햇살이랑 달빛이 아빠는 맞아? 달빛이랑은 너무 안 닮긴 했다. 혹시 그냥 동네 건달(?)처럼 어린애들 데리고 다니는 고양이 아저씨인 거야? 배 나온 고양이 아저씨? 나 혼자 한 착각이지만, 새끼를 데리고 다니며 음식 동냥을 하는 가련한 싱글맘(?)의 이미지가 너무 강렬해서, 배신감마저 든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턱이 없는 노을이는 여전히 매일 우리 집에 와서 맛있게 밥을 먹고 사라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