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이가 노을이를 따라 우리 집 급식소에 매일 발도장을 찍은 지도 꽤 많은 시간이 지났다. 여전히 나만 보면 줄행랑을 치고, 어느 날은 급한 마음에 계단 맨 위에서 뛰어내리기도 했다. 내가 문을 열어 놓은 날 햇살이가 들어와 집안을 구경하다가, 나를 보고는 도망을 간다는 게 유리문에 정면으로 부딪힌 적도 있다. 부딪히는 소리가 꽤 컸는데도 멈추지 않고 밖으로 나가버려서 마음이 좋지 않았다. 내가 왜 이리 무서운 건지, 아직도 날 믿지 못하는 건가? ''아줌마, 무서운 사람 아니야. 그냥 너 예뻐서 밥 주는 거야.'' 아무리 말을 해줘도 알아들을 턱이 없으니, 이거 어떻게 해야 조금은 친해질 수 있을까?
하지만 아주 조금은 햇살이가 우리 집을 편하게 느끼기 시작한 것 같다. 밥을 먹고 혼자서 구석에 놓인 화분 옆에 앉아서 꾸벅꾸벅 조는 모습도 몇 번 봤고, 텃밭에 볼일을 보기 시작했다. 이건 싫다 ㅠㅠ 텃밭에 들어가서 흙을 파는 모습을 볼 때마다, '안 돼!'라고 소리치며 햇살이를 쫓아내는데, 아마도 나의 이 행동은 햇살이에게 공포스럽게 느껴지겠지. 하지만, 텃밭에 토마토 모종을 심었단 말이야. 고양이 똥은 식용 식물의 거름으로는 부적합해서 어쩔 수가 없다고. 고양이가 싫어하는 냄새가 난다는 비싼 유기농 사료를 사서 뿌려도 보았지만 그것도 잠시뿐, 햇살이는 그 냄새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텃밭을 화장실로 사용하고 있다. 가끔 삽으로 똥을 골라내곤 하는데, 빨리 다른 방책을 구해야 한다.
아무튼, 텃밭의 똥만 제외하고, 햇살이의 모든 행동은 귀여움 그 자체이다. 자신에게 밥을 주는 소리 지르고 덩치가 큰 생명체인 나를 과연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햇살이도 나의 정체가 궁금한지, 가끔 날 관찰하곤 한다.
마당에서 잡초를 뽑다가 문득 시선이 느껴져서 돌아봤더니, 햇살이가 멀리서 나를 쳐다보고 있던 적이 몇 번 있었다. 내가 뭘 하는지 궁금한 걸까? 아니면 빨리 마당에서 나가라고 시위하는 중인지도ㅋㅋ
유난히 햇살이에게 애착이 가는 이유는 햇살이의 귀여움 때문만은 아니다. 며칠 전 노을이가 햇살이에게 붕가붕가를 시전 하는 모습을 보고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아니, 새끼 고양이인데! 자기 새끼인데! 요새 인터넷에서 본 입에 담을 수 없는 악행을 저지른 소위 아버지라는 작자들에 대한 뉴스를 봐서 그런지, 아무리 동물적 본능이라고 해도 마음이 너무 안 좋았다. 검색을 해보니 가끔 있는 일이고, 그럴 때는 박수를 치거나 해서 주의를 주는 게 좋다고 했다. 처음에는 급한 마음에 소리를 치며 노을이를 내쫓았는데, 영문을 모르는 햇살이도 같이 도망가고 말았다. 새끼 고양이라고는 해도 3-4개월만 지나면 임신할 수도 있다고도 한다. 그것도 문제지만, 노을이가 뭘 하는지도 모르고 아빠라고 믿고 쫓아다니는 순진한 햇살이가 가여웠다. 그 후에 한 번 더 목격을 했는데, 노을이가 한 발로 햇살이의 등을 누르고 움직이지 못하게 하려는 게 보였다. 손뼉을 치면서 소리를 지르니 멈추기는 했지만 영문을 모르는 노을이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 모습을 귀엽게 볼 수가 없었어ㅠㅠ 노을이든 햇살이든 중성화를 시켜야 하는데, 주인이 있는지도 모르겠고, 더 근원적인 문제는 내가 아직 얘네들을 잡을 수가 없으니 데리고 병원에 갈 수도 없다는 것이다. 다 큰 노을이는 어쩔 수 없다고 치고, 햇살이는 아직 어리니까, 나랑 더 친해지면 집에서 키울 수 있지 않을까? 내가 햇살이를 지켜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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