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새벽 5시 반 정도에 눈을 뜨면 벌떡 일어난다. 오늘도 고양이들이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까? 꽤 쌀쌀하지만 이불을 박차고 뒷문으로 향하면, 문 앞에 옹기종기 앉아있는 세 마리의 고양이들이 보인다. 얼른 사료를 주고, 물을 갈아준다. 챱챱챱... 정신없이 밥 먹는 소리를 잠시 듣다가 생각에 잠긴다. 얘네는 내가 일어날 시간을 어떻게 아는 거지? 올 때까지 기다리는 건가? 아니면 집 밑에서 잠자다가 내 발걸음을 듣고 얼른 뒷 문으로 뛰어오는 건가? 가끔은 두 마리나 한 마리만 날 기다릴 때도 있다. 그럴 때면 얘네들이 따로 집이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결석한 그다음 날은 어김없이 다시 찾아와서 며칠 굶은 것처럼 정신없이 밥을 먹는다. 출석률이 제일 좋은 건 검은색 턱시도에 콧수염이 있고, 하얀 양말을 신은 달빛이다. 세 마리 중에서 제일 경계심이 많아서, 밥을 먹는 동안에도 내가 좀 쓰다듬으면 기겁을 하고 소스라치게 놀라며 도망간다. 매일같이 밥을 준지도 반년 정도 된 것 같은데 도무지 친해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제일 먼저 급식(?)을 타러 오기 시작한 싱글 대디(?) 노을이는 요새는 내가 밥을 주면 머리를 내 손으로 드밀고 만져달라고 한다. 하지만 밥 먹고 배 부르면 무조건 도망가버리니 친해진 건지, 아닌지 모르겠다. 집 앞에서 마주쳐도 줄행랑을 쳐서 솔직히 좀 서운하다. 노을이를 많이 닮은 삼색이 햇살이는 노을이처럼 밥을 먹을 때는 내가 쓰다듬는 걸 허락해주지만, 배가 부르면 냉정하게 돌아선다. 밥 주는 걸 그만둘까도 생각하는 중이다. 영원히 친해지지 않을 것 같은 평행선들이다. 그러다가도, 이렇게 하루 몇 번 짧게 밥을 주고, 쓰다듬어 주는 일과가 내 일상에 작은 활력을 가져다주는 것 같아, 아직은 부지런히 사료와 캔을 사다 나르고 있다.
요 며칠은 계속 비가 오고 있다. 뒷 문을 살짝 열어놓고 바닥에 깔개를 깔아놓으니 고양이들이 비를 피해 들어온다. 문을 열어놓고 멀리 가있으면 고양이들이 집 안에 들어와서 웅크리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하지만 내가 너무 갑자기 다가가면 또 쏜살같이 도망가버린다. 제일 경계심이 많으면서도 집 안에 제일 많이 들어오는 녀석은 달빛이다. 식탁 의자에 앉아 있기도 하고, 집 안을 한 바퀴 돌아본 적도 있을 만큼 탐험심이 있다. 그러던 달빛이가 오늘은 윗 사진처럼 '떡실신'을 했다. 경계심을 풀지 않고 웅크리며 식빵을 구으면서도 늘 눈을 뜨며 날 감시하던 달빛이가 저렇게 푹 자는 모습은 처음이다. 그 옆에 햇살이가 달빛이 곁에 붙어 앉아 있다. 햇살이는 늘 문 옆에 앉아서 언제라도 도망갈 준비를 하고 있다. 바람이 들어와서 추울 텐데도, 그 편이 마음이 놓이나 보다. 집 안에 고양이들을 들이는 게 맞는 건지 모르겠다. 집 안을 자신들의 영역이라고 생각하게 되면 나에게 경계심을 풀어줄까? 고양이들이 나를 따르게 된다고 해도, 세 마리나 거두어들일 자신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현재로서는 무료 급식소 운영자와 이용자의 관계일 뿐, 아직 키우는 건 아니다. 아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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