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고양이

노을 (2) - 넌 도대체 어디사니?

노을이는 어느 날부터인가 매일 하루에 몇 번씩 찾아오기 시작했다. 아침에 뒷문 앞에 사료를 놓아두고 재택근무를 시작하면 점심때 즈음에는 밥그릇이 깨끗하게 비워져 있었다. 그러다가 내가 이른 저녁 요리를 시작하면 도마 위에 칼 소리를 듣고 오는 건지, 노을이가 어느새 뒷 문 앞에 앉아서 밥을 먹고 있다. 싹 비우고 가면 혹시 또 올까 해서 사료를 더 놓아둔다. 그러면 또 어느샌가 와서 먹고 있기를 반복. 이러다 보니 사료 사두었던 게 똑 떨어졌다. 록 다운중이고 외출하는 것도 꺼려하는 중이라 웬만하면 장을 보기가 싫지만, 고양이 사료가 떨어졌을 땐 어쩔 수가 없었다. 내일 노을이가 왔을 때 밥이 없으면 얼마나 실망할까? 혹시 하루 종일 내가 주는 사료 외에 다른 것을 못 먹는 건 아닌가? 길고양이인지 이웃집 고양이인지 알 길이 없지만 허겁지겁 밥을 먹는 모습이 하루 종일 굶은 것 같아 보였다.

 

오래된 목조 집이라 집 밑에 텅 빈 공간이 있는데, 노을이가 그 속으로 들어가는 광경을 몇 번 목격했다. 나도 모르게 지하실에 세입자가 있었던 건가? 포복을 하다시피 해서 들어갈 수 있는 한계점까지 집 밑을 뒤져봤지만 고양이가 살고 있다는 흔적은 눈에 띄지 않았다. 그럼 얘는 도대체 어디 사는 거야?

 

침대 대신 바닥에 이불을 깔고 자는데, 새벽 2시인가, 고양이들이 아웅 대는 소리가 들렸다. 노을이가 자는 곳에 다른 고양이가 칩입해 들어온 건가? 잠옷 바람으로 핸드폰 손전등을 켜고 집 밑으로 다가갔다.

 

노을이와 다른 고양이

걱정했던 바와는 달리 두 고양이는 싸우지는 않고있었다. 가까운 거리에 앉아있는 걸 보니 사이가 나쁘지는 않은 듯했다. 날 보고 도망가지도 않아서 더 자세히 보려고 플래시를 터트려서 사진을 찍어보았다.

 

노을이와 고등어

노을이는 많이 졸려보였다. 옆에 고양이는 아빠가 보셨다는 턱시도는 분명히 아닌 듯했다. 아마도 회색이나 갈색무늬인 듯했다. 고등어 무늬라고 하던가? 이 고양이를 본건 이날이 처음이자 마지막. 아무튼 노을이가 이 시간에 집 밑에 있는 걸 보면 주인이 없는 것 같아 보였다. 이 날 이후로 수시로 집 밑을 살폈는데 눈에 띄지 않는 날도 있어서 매일 집 밑에서 사는 건 또 아닌 것 같았다.

 

노을이의 상황을 추측해 보자면:

 

추측 1: 이웃사람이 키우는 외출냥이. 집에 자유롭게 드나들고 밤이라고 집안에서 재우지 않는 방임형 주인이 있다.

추측 2: 길고양이. 이 지역대에서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밥을 얻어먹으며 살고 있다.

추측 3: 길고양이. 우리 집 밑 구석에 살며 내가 주는 사료 외에는 사냥을 하며 먹고 산다.

'고양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노을 (6) - 고양이가 있는 풍경... 그리고  (0) 2021.09.29
노을 (5) - 햇살과 달빛  (0) 2021.09.29
노을 (4) - 나를 따라와 봐  (0) 2021.09.29
노을 (3) - 집 안에 들어오다  (0) 2021.09.29
노을 (1)  (0) 2021.0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