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마운틴 - Mt Victoria역 근처 Mt Piddington의 Ferris Cave Circuit
4월 말, 휴가가 끝나가는 것이 아쉬운 마음에 평소보다 좀 멀리 Mt Victoria역까지 기차를 탔다. Blacktown역에서 한 시간 반이 넘게 걸리고 기차도 한 시간에 한 번 밖에 없는 곳인데 역 바로 근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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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rris Cave Circuit을 생각보다 빨리 끝내고 바로 옆에서 시작할 수 있는 Cox's Cave Circuit과 Toll House로 향했다. 뭐 대단한 경치를 기대한 것은 아니었다. 호주의 동굴은 그저 큰 돌이 있고 비를 간신히 피할 수 있는 공간도 포함한다는 걸 알게 된 후 '동굴'에 대한 기대치가 많이 낮아졌기 때문이다.
폭포 앞에서 좀 쉬고 싶었는데 부러진 테이블만 있어서 아쉬웠다. 생각지도 못한 폭포를 봐서 횡재한 느낌이었다.
Toll House를 향해 가고 있었는데 도착해 보니 큰 도로변이었다. 아마도 옛날에 고속도로 톨게이트가 있었나 본데 지금은 건물도 없고 그냥 공터였다. 바로 돌아서 Cox's Cave로 향했다. 이정표에 1 km, 편도 30분, 난이도가 어렵다고 쓰여있었구나. 이걸 이제 봤네.
오던 길을 따라가다가 Cox's Cave로 향하는 길로 방향을 틀었는데 작은 동굴이 나타났다. 안에 들어가면 깜깜한 진짜 동굴이었다. 궁금해서 들어가 보았는데 생각보다 구멍이 작았다.
내가 검색이 많이 부족했던 것일까? Mt Piddington 하이킹 코스를 검색했을 때 사다리 얘기는 한 번도 못 봤는데. 하지만 난 여기까지 한 시간 반이나 걸려서 왔고, 또 궁금한 건 못 참는다. 무, 무섭지만 난 올라가야만 했다. 항상 사다리를 오를 때 주의하라고 잔소리를 하시는 아빠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사다리를 흔들어보니 꽤 견고해서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다행히 주변에 아무도 없어서 아주 천천히 사다리를 올라갔다. 한 발 한 발 오르는데 진짜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나 자신의 용감함 무모함과 작은 성취감에 도취되는 것도 잠시, 여기를 내려갈 생각을 하니 막막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그건 이따가 생각하자. 여기까지 올라왔으니 동굴은 보고 가야지.
한 참 동굴을 구경하고 있는데 밑에서 사람 소리가 났다. 여기를 올라오려는 모양이었다. 누군가가 기다리는 동안 사다리를 내려오기는 싫어서 한참 눈치를 살폈는데 그 사람들도 내가 내려오는 걸 기다리는 것 같았다. 하는 수 없이 등 뒤의 따가운 시선을 느끼며 아주 천천히 사다리를 내려왔다. 다음 사다리에 발을 내려놓으려고 밑을 확인할 때마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좋게 말하면 스릴 만점 대모험. 사실을 말하면 심장에 아주 안 좋았다. 다행히 무사히 착륙.
사다리에서 내려오고 나서는 오늘 할 하이킹은 다 한 느낌이었지만 또다시 한 시간 반 기차를 타고 집으로 가야 하기에 아직 갈 일이 멀었다. 등산로 초입에 묶어둔 자전거를 타고 역까지 돌아가는 길이 이번에는 내리막길이라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돌아가는 길에 블루 마운틴 지역에서 가장 높은 지점이라는 곳을 지나쳤다. 평범한 주택가에 표식이 되어있는 정도였는데, 내가 사진을 찍으니까 근처에 서 있던 주민들이 날 쳐다봤다. 사진을 왜 찍고 있는지 의아해하는 듯했다. 그것도 그럴 것이 간판을 빼면 너무나도 평범한 곳이었다. 이름이 One Tree Hill이라서 작은 동산에 나무 한그루가 심어져 있나 했는데 그런 건 전혀 없고 나무가 여기저기 많이 자라고 있었다. 별 기대를 안했기 때문에 딱히 실망하지는 않았다. 나무가 많으면 좋지 뭐.
블루 마운틴 지역을 꽤 다니다 보니 풍경이 비슷해 보이는 곳도 많고, 끝없이 펼쳐지는 나무들과 절경을 처음 보았던 때만큼의 벅차오르는 큰 감동은 이제 잘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Cox's Cave처럼 의외의 모험을 하게 되는 경우도 있고, 지도에서만 보던 곳을 직접 다녀왔다는 성취감도 느낄 수 있다. 무엇보다도 기차를 타고 하이킹을 하고 다시 집에 돌아오는 반나절의 여정이 내게는 딱 좋은 길이의 나들이가 되어준다. 고양이의 밥을 챙겨줘야 하는 집사로서 일박 이상을 하는 여행은 마음이 편할 수가 없다. 큰 기대를 갖지 않고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항상 좋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별 기대 없이 길을 나섰다가 제법 스릴 있는 시간을 보낸 이 하루가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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