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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

[일본 영화] 보통의 카스미 そばかす I am what I am (2022)

영화 속에서 자주 나오는 마주 앉아 이야기하는 장면 중 하나

 

 

일본 문화가 잘 알려지지 않은 국가에게만 무료로 일본 영화를 공개하는 일본 정부가 운영하는 사이트가 있다. 호주, 유럽, 동남아시아의 몇 개국에서만 접속할 수 있는 JFF Theatre에서 오래간만에 영화 한 편을 보았다. 영화 한 편을 끈기 있게 처음부터 끝까지 시청한 것이 도대체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요즘은 도통 시간이 없어서, 집안일을 하면서 오디오북을 듣는 것으로 드라마나 영화 시청을 대신하고 있었다. 그러다 모처럼 여유 있는 토요일 오후, 밖에는 비가 오고, 영화나 봐볼까 하다가 클릭하게 된 게 바로 이 영화. 지금 막 보고 나서 느낀 점들을 두서없이 써본다.

 

- 일본 제목은 '소바카스'인데 한국에는 보통의 '카스미', 영어로는 'I am what I am'이라고 각각 완전 다른 느낌의 제목이 달렸다. 소바카스는 주근깨라는 뜻인데, 주인공 얼굴에 주근깨는 없지만 이름이 소바타 카스미라서 발음이 소바카스랑 비슷해서 지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얼굴에 주근깨가 있었다면 화장으로 일부러 가리지 않았을 카스미의 성격을 상징하는 단어라고 짐작해 본다.

 

- 'I am what I am'이라고 영어 제목을 붙인 이유가 궁금해진다. '나는 나야'라는 뜻이라 너무 직관적이어서 아쉽다. 영어 성경에서 하나님이 자기 자신을 'I am who I AM'이라고 부르는 장면이 생각난다. 신적인 존재를 그 존재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인다는 성경적 의미와 비슷하게, 카스미의 존재 그 자체를 받아들이는 그녀의 인생 여정을 나타내는 제목이긴 한데, 제목과는 달리 영화의 내용이 엄숙하거나 거창한 내용은 아니라 위화감이 느껴지는 것 같다.

 

- 한국 드라마 특징 중에, 찬 물을 컵에 부어서 벌컥벌컥 들이키는 장면이 있다. 이것을 의식하고 다른 나라의 영화나 드라마를 보기 시작한 지 꽤 되었는데, 정말 물 마시는 장면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 이 영화에서는 두 명이 테이블이라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마주 앉아서 이야기를 하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이건 일본 영화의 특징인 걸까 싶게 정말 많이 나온다. 인간관계에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일본 문화의 미덕인 걸까? 아니면 도시 생활에서 카페나 식당에 가는 행위가 타인과 가장 손쉽게 시간을 공유하는 방법이기 때문에? 하지만 공원을 걷거나, 차 안에서 운전을 하면서, 아니면 같이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대화를 하는 장면을 넣을 법도 한데, 주야장천 두 사람이 마주 보는 장면을 옆에서 카메라가 지켜보는 구도를 사용한 이유는 무엇일까? 반복된 연출이 지루해서 아쉬웠다.

 

- 영화의 키워드 중 하나가 LGBTQ+이고 영화의 간략한 줄거리에 여자 동창생과 재회한다는 내용이 언급되어서 레즈비언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고 무성애자로서 살아가는 이야기였다. 남들이 가지고 있는 욕망이 없이 살아가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아마도 출세나 물욕이 없는 사람을 보는 것처럼, 이해가 되지 않는 신기한 존재로 생각될 것 같다. 주변에 무성애자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사람을 만나보지 못했는데, 사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 결여된 것으로 정체성을 규정지을 필요가 있을까 싶다. 물론 신체적 장애가 있어서 신체의 한 부분이나 능력이 결여되어 있다면 그 사실을 알려야 할 필요가 생길 경우가 많을 것이다. 하지만, 가치관이나 성적지향처럼 일상생활에서 두드러지지 않는 부분을 굳이 알리고 이해받을 필요가 있을까? 자연스럽게 대화 중에서 이야기가 나왔을 때 거짓말을 하거나 대답을 꺼려할 필요까지는 없겠지만, 궁금해하지 않는 사람에게 말해줄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요즘 주변인들의 TMI에 지친 상태라서 이렇게 생각하게 된 건지도 모르겠다. 안물안궁

 

- 일본 영화 특유의 담담하고 잔잔한 흐름을 좋아하는 편인데, 이 영화도 그런 분위기이다. 인생을 크게 바꾸는 사건 사고는 일어나지 않는다. 직장에서 용기를 내어서 소신발언을 해도 다행히 해고되지는 않고, 가족들에게 큰 소리로 자신의 성정체성을 고백해도 다들 다음 날에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생활한다. 구렁이 담 넘어가듯 흐지부지 되는 것 같기도 하지만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이런 애매모호함은 나쁘지 않다.

 

- 주인공이 첼로를 전공했는데 잘 풀리지 않아서 전혀 다른 분야로 전직을 한다. 과거에는 음악에 대해 큰 열정을 가졌었다는 설정인데, 그 부분이 잘 묘사되지 않아서 참 아쉽다. 나 역시도 음악을 전공했지만 전혀 다른 일을 하고 있는 처지로서, 음악에 대해서는 사랑하던 애인과 헤어졌거나 이혼을 한 것 같은 고통과 애증을 갖고 있는데, 감독은 아마 그런 경험을 해보지 않은 듯하다. 영화를 전공해서 이런 영화도 만들고 감독으로 잘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모를 수밖에 없겠지. 그리고 주인공이 첼로를 연주하는 부분이 나오기는 하는데,  손가락이 움직이는 모습은 꽤 연습한 티가 나지만, 음악을 연주하는 연주자의 표정과 팔의 모습까지는 연기하지 못한 부분이 너무 아쉽다. 본인이 직접 연주했다는 사실은 대단하지만 연주 소리는 너무 별로였다. 그래서 첼로 전공을 못 살렸다는 뜻인 건가?

 

- 주인공의 가족이 꽤 사이가 좋다는 설정이라서 같이 식사하는 부분이 많이 나오는데, 왜 이렇게 어색하지? 과장된 것 같은 느낌은 내가 연기를 잘 모르기 때문일까? 밥 먹는 장면이 이렇게 많이 나올 필요가 있나 싶었다. 가족의 식사 장면 이외에도 친구나 직장동료들과 만날 때도 카페나 식당이 배경이었다. 지극히 일상의 장면만을 담는 것이 감독의 의도라면 할 말이 없지만, 영화를 볼 때 기대되는 특별한 풍광이나 배경의 부재가 크게 느껴졌다. 일본 영화에서 특별한 것을 기대하면 안 되는데 잊고 있었다.

 

- 사실, 그리 특별하게 생각되지 않은 영화에 대한 감상을 늘어놓을 필요가 있을지 잠시 주저되었지만, 오랜만에 영화를 본 기념으로, 나에게 몇 가지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 것을 기억하고자 글을 남긴다. 별점을 남기자면 5점 만점에 둘이나 셋?

 

- 내가 일본에 있었을 때 일본 예능계를 주름잡았던 마에다 아츠코가 출연해서 반가웠다. 사실 이름은 기억나지 않아서 검색해 봄

그녀가 맡은 역할이 일본 영화에서만 나올 수 있는 배역이라 그녀의 연기도 지극히 일본풍으로 느껴졌다. 사람들 앞에서 따지고, 소리를 지르고, 교훈을 주려고 하는 일본 특유의 대사와 연기라 그리 특별하진 않았지만 그녀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 나 왜 이리 시니컬하게 독설을 퍼붓는 걸까? 생각해 보면 그리 나쁜 영화는 아닌데, 스트레스가 많이 쌓인 상태라 이런저런 단점만 보이나 보다. 정신 상태가 좀 좋았을 때 보았으면 좀 더 긍정적인 감상을 남길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감독님, 무료로 본 주제에 좋은 말도 못 해서 미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