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직장에서 일을 하는데, 문득, 평소보다 마음이 편하고 여유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정말 오랜만에, 학생들에게 줄 격려상을 여러 장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번 학기에는 아팠기도 했고 수업 준비에 쫓기다 보니 단 한 번도 학생들에게 상을 주지 않았다는 걸 상장을 만들면서 깨달았다. 자전거를 타고 퇴근해서 집에 와서 밥솥의 취사버튼을 누루고 또 오랜만에 20분 정도 조깅을 하러 나갔다. 요즘 춥기도 하고, 매일 늦게 퇴근해서 조깅을 할 생각도 못했는데, 오늘은 아직 해가 지지 않은 시간에 퇴근을 하니, 조깅에까지 생각이 미쳤다.
5월 초부터 시름시름 아프기 시작해서 병가를 두 번씩 5일이나 내고, 6월 말인 이제야 100% 예전 체력으로 회복이 된 것 같다. 이번 학기는 수업 시간표가 역대급으로 꽉 차있어서 수업준비만으로도 하루가 꽉 차는 느낌이었다. 지난 주말 성적표를 쓰고, 밀린 시험지 채점을 다 해놓고 이제 한숨 돌릴 수 있어서 그런가, 낯선 여유를 느끼고 있다. 이것이 행복인가? 행복의 정의는 개인차가 있기 때문에 모두를 대변할 수는 없겠다. 하지만 스트레스에 쉽게 무너져내리는 나에게 몸과, 마음, 그리고 시간의 여유가 나의 행복의 기본 요소인 걸까? 끄적거리며 생각을 정리해 본다:
이번 학기가 역대 최악인 이유
- 수업준비가 많이 필요 없는 체육 시간 대신 한 과목을 더 가르쳐야 했다. 거의 매일 수업 마치고 3시간 정도 학교에 남아 수업준비를 했다.
집에 일을 가지고 오기 싫어서 학교에 남아서 일을 했는데, 그게 더 날 피곤하게 했던 것 같다. 집에서 일하면서 중간중간에 고양이랑도 놀고 간식도 먹고 했으면 조금 더 유쾌하게 저녁시간을 보냈을지도 모르겠다.
- 직장에서 인간관계 문제가 있었다. 내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그 일을 곱씹고, 그 대상들과 마주치는 순간들의 어색함이 내 스트레스를 증가시켰다. 나중에 되새김질할 부정적인 일을 되도록 만들지 않아야 평온한 저녁시간을 보낼 수 있다.
- 코로나에 걸렸다. 단순히 감기라고 생각하던 나의 컨디션 난조는 코로나와 그 후유증으로 꽤 오랜 시간 나를 괴롭게 했다. 아파서 뭘 할 의욕도 나지 않았고, 기대했던 콘서트도 가지 못했고, 거의 매일 운동하던 루틴도 깨지고 말았다.
- 아파서 운동을 하지 못한 것이 생활에 활력이 없어진 것이 크게 작용한 것 같다. 수영은 두 달 넘게 하지 못했다. 수영하는 법을 다 까먹은 건 아닌지 불안할 정도이다. 일주일에 두어 번 하던 5킬로미터 달리기를 멈춘 것은 물론 하이킹이나 긴 산책도 하지 못했다. 내가 하지 못한 이 모든 야외활동들이 나의 낮은 행복지수의 원인인 듯하다.
오늘 오랜만에 행복했던 이유
- 효율적인 시간 사용: 수업이 한 시간 빈 틈을 타서, 학교 내의 조용한 구석에 숨어서(?) 수업 준비를 했다. 온라인으로 시험지를 조금 더 빨리 만드는 방법을 검색해서 시도해 봤는데 꽤 효율적이다. 앞으로 시간이 절약될 것 같다. 평소 교무실에 있으면 동료 교사분들과 잡담을 하느라 일을 하지 못하는데, 오늘은 한 시간을 알차게 사용했다.
- 영양 보충: 점심때 사과를 조금 먹었다. 평소에는 시간이 없기도 하고 간헐적 단식을 핑계로 점심은 건너뛰는데 오늘은 일부러 챙겨 먹었다. 더 행복해질 수 있다면 한두 시간 빨리 먹는 것도 나쁘지 않다.
- 긍정적인 교류: 동료들과 짤막하지만 정다운 대화를 나누었다. 오래 이야기하면 부정적인 이야기가 나오기 마련이라, 이렇게 짧게 교류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물론 깊이 있는 사귐은 되지 않겠지만 직장 동료에게 우정을 기대하는 것도 무리이지 않나 싶다.
- 건강: 아픈 곳이 없어서 그런지 추운 날씨임에도 자전거로 출퇴근할 의욕과 체력이 있었다.
- 시간적 여유: 더 이상 아픈 곳이 없고 체력이 회복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지만, 실감하지 못하고 있었다. 역시 시간이 있어야, 내가 행복한지, 어떤지 꼼꼼히 확인할 여력이 생긴다. 이렇게 블로그에 의식의 흐름을 끄적이면서 자신을 돌아보고, 현재 상태를 조목조목 확인하는 시간이 내 행복에는 불가결이다.
- 심적 여유: 밀려있던 성적표와 시험지 채점을 거의 다 끝내서 마음이 편했다. 미리미리 일을 해놓는 것이 나의 행복에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나의 행복 = 스트레스의 부재 =심적 여유.
위의 공식대로라면 스트레스를 최소화하면 내 행복이 극대화된다는 말이다. 이 말은 곧, 행복을 위해서 능동적인 노력을 하는 것만큼이나, 스트레스의 요인을 줄이는 것만으로 행복지수를 올릴 수 있다는 뜻이다. 머릿속에 걸리적거리는 문제들이 없이 텅 비어있다면 얼마나 평온할까? 현재 내게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것들은 다음과 같다:
- 낮은 수면의 질과 수면 부족: 새벽에 자꾸 깨고 아침에 일어나기 힘듦
- 늘어나는 뱃살: 스트레스를 핑계로 자꾸 단 것, 과자를 먹게 된다.
- 주택담보대출 상환: 절약과 저축에 대한 강박
- 집 나간 고양이: 며칠에 한 번씩 돌아오기는 하지만 안 보이면 서운하다.
- 수업 아이디어 고갈: 더 효과적으로 재미있게 수업하고 싶은 의욕만 앞서고 시도는 안 하고 있다.
- 동화 공모전 준비: 써 놓은 글이 이제는 별로라고 생각될까 봐 다시 읽기를 미루고 있다
- 사거나 빌려놓고 읽지 않고 있는 책들: 시각적 스트레스!
- 인간관계: 직장에서의 처세술, 친구 관계의 변화
내일도 오늘처럼 행복하고 싶다. 내일의 행복을 위해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한 궁리를 좀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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